[김동호의 시시각각] 보호무역주의 본능 드러낸 미국
미국의 ‘바이 아메리칸’(미국 제품 구매) 정책이 우리 국민·정부·기업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 지급하는 7500달러(약 1050만원)의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한국산 전기차가 빠지면서다. 미국은 북미산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지급한다. 미국은 한국전쟁 때부터 우리의 굳건한 혈맹이다. 지금도 주한 미군이 안보를 돕고 자유무역협정(FTA)에 이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한국이 가입하기로 하면서 양국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 와중에 미국이 한국의 뒤통수를 쳤다.
그런데 미국은 원래 그런 나라였다. 미국은 자국 중심주의의 뿌리가 깊다. 정치학에서는 고립주의라고 한다. 다른 나라의 일에 관여하지도, 개입하지도 않는 게 원칙이다. 오직 국익이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관여하는 국제주의는 제2차 대전 이후의 예외적인 상황이다. 미국은 유럽이 나치 독일에 유린당하고 있을 때도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었다. 일본이 진주만을 침공하고 나서야 응전에 나섰다.
미국 100년 전부터 국익 우선주의
한국도 전략물자 국내 생산 늘리고
노동 및 규제 개혁으로 뒷받침해야
경제적 접근법도 다르지 않다. 존스법이라 불리며 1920년 시행된 상선법은 미국 보호무역주의의 뿌리를 보여 준다. 공화당 상원의원 웨슬리 존스의 주도로 통과된 이 법안은 미국 내 항구를 이용하는 선박은 미국에서 만들고, 지분과 선원의 75% 이상이 ‘아메리칸’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명분은 안보와 경제였다. 유사시 외국 선박으로 무기와 병사를 실어나를 수 없지 않느냐는 논리였다. 동시에 고용 효과를 고려했다.
지금 바이든 대통령이 줄줄이 도입하는 경제 법안의 도입 논리가 존스법과 다를 게 없다. 민주당·공화당이 정책 방향의 벽을 넘어 초당적이라는 점에서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확고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바이오산업 행정명령’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앞으로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아니면 미국에서 발을 붙이기 어려워진다.
물론 성과는 미지수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내부에서도 존스법의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반대론자들은 역효과가 적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문제는 경쟁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외국 기업의 경쟁이 배제된 만큼 독점 상태의 미국 내 조선사가 선박 가격을 올리게 된다. 그 결과 물류 업체들이 연안 해운을 기피하고 철도나 트럭을 사용하게 되면서 오히려 선박이 크게 줄어들게 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논란은 논란일 뿐이다. 미국은 중국의 도전에 직면하면서 지난 30년 신자유주의 바람을 타고 ‘워싱턴 컨센서스’(국제 표준)라고 내세웠던 자유무역주의를 거둬들이고 있다. 패권을 위협당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미국 본연의 보호무역주의 DNA가 되살아났다는 얘기다. 반도체·배터리·전기차·바이오 등 핵심 전략물자는 모두 미국 땅에서 생산하려고 한다.
문제는 미국의 이익 앞에 한국도 예외가 되기 어렵다는 현실이다. 이런 미국의 본질을 꿰뚫어 본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검토됐던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워싱턴에 3년 체류하면서 쓴 『워싱턴에서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책 제목부터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워싱턴에서 보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실제보다 과장됐다는 얘기다. 더구나 일본은 치밀한 외교술로 워싱턴 깊숙이 파고들고 있어 겉도는 한국과 대비된다.
결정적인 것은 미국은 국익 앞에 보수도 진보도 없다는 대목이다. 특히 미 정부와 기업의 협력은 우리의 상식을 초월한다고 이 책에 기록돼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을 만나 만면의 미소를 짓거나 등을 두드려 주는 스킨십을 보여줬지만, 그의 머릿속 생각은 미국의 국익뿐이었다.
이제라도 이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도 전략물자는 최대한 국내에서 생산하고, 노동 및 규제 개혁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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