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예술] 진화하는 그라피티 아트

2022. 9. 2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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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미술사학자·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그라피티는 1960년대 말 미국 흑인 인권운동 흐름 속에서 백인 중심의 고급미술에 대항해 시작된 스트리트 아트다. 초창기 작가들은 경찰의 눈을 피해 익명으로 지하철이나 건물 외벽에 포스터나 스티커·벽화 등에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 제작했다. 1980~90년대 힙합문화 유행과 맞물려 대중화에 성공한 그라피티는 스타 작가를 배출했고 길거리를 벗어나 갤러리와 미술관 진입에 성공한다. 오늘날은 스티커와 포스터 문양을 의류나 장난감으로 상품화하면서 서브 컬처에서 벗어나 미학적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1970년 출생한 스트리트 아티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이며 성공한 사업가이자 디자이너이기도 한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의 작업은 미국 그라피티 아트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행동하라!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라(Eyes Open, Minds Open)’ 전시(롯데뮤지엄)에 진열된 140여장의 포스터와 벽화, 작가가 디자인한 스케이트보드와 펑크 록 뮤지션의 앨범 재킷은 주류문화와 끊임없이 충돌하며 살아온 백인 예술가의 삶의 궤적이자 지난 30년간 미국 그라피티 아트의 역사이기도 하다.

「 길거리에서 꽃핀 강렬한 예술
미국작가 페어리의 ‘행동하라!’
주류와 비주류 경계 무너뜨려

셰퍼드 페어리의 ‘희망’. 종이 위에 스텐실, 실크스크린, 콜라주, 2008. [사진 2022 COURTESY OF SHEPARD FAIREY OBEY GIANT ART INC.]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페어리는 1988년 명문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 입학하지만 정작 그의 관심은 학교 밖의 거리였다. 당시 서민들의 사랑을 받던 거인 프로 레슬러 앙드레 루시모프의 얼굴을 프린트한 작은 스티커를 거리에 붙이자, 스티커는 스케이트보더 커뮤니티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고, 페어리는 거리 예술이 갖는 소통의 힘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1990년 프로비던스시 시장 후보의 대형 포스터를 루시모프의 얼굴로 도배해 경찰 조사를 받는가 하면, 루시모프 이미지에 영화 ‘화성인 지구 침공’ 속 대사에서 따온 ‘복종하라(Obey)’는 텍스트를 결합해 ‘오베이 자이언트 (Obey Giant)’ 도상을 도처에 붙여 권력에 순종하도록 길들여진 현대인의 의식 세계를 조롱했다.

페어리는 조지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2004년에는 ‘반전, 반 부시’ 포스터를 제작했고, 이후에도 인권운동가 안젤라 데이비스와 제시 잭슨 목사, 밥 말리 등 자신에게 영감을 준 인물을 붉은 바탕에 검은 윤곽이 강조된 사회주의 프로퍼갠더 포스터 양식으로 제작하며 거리 작업을 이어갔다.

그의 이름을 결정적으로 세상에 알린 것은 2008년 대통령 선거용으로 제작한 버락 오바마의 초상화 ‘희망’이었다. ‘희망’은 시사주간 타임의 표지화로 선정됐을 뿐 아니라 국립초상화박물관이 이를 사들임으로써 그를 제도권과 연결시켜 주었다. 이듬해 사설 갤러리가 아닌 공공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이 보스톤에서 열렸으며, 불법이 아닌 공공미술로서 페어리가 그린 넬슨 만델라 벽화가 요하네스버그의 9층 건물을 장식하게 된다.

거인 이미지를 로고로 사용해 2001년 그가 설립한 의류회사 ‘오베이’가 세계적 의류 브랜드로 성장하고, 전시장에 걸린 그의 그림이 명성을 얻자 상업성에 대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어리는 2007년부터 ‘오베이’ 의류의 일부 품목을 비영리단체를 위해 디자인하고 수익금 전액을 수단 다르푸르 내전 희생자, 알래스카 야생동물 구조단을 비롯해 수많은 환경과 인권단체에 기부함으로써 자본의 논리에 잠식당하지 않고자 노력한다.

또한 트럼프 정부의 인종주의 정책을 비판해 제작한 모슬렘 여성들의 초상화 시리즈에서는 초기의 강렬한 색채와 두꺼운 윤곽선 대신, 건물 외벽 인양 벽지와 신문지가 겹겹이 콜라주 된 바탕 위에 면밀하고 회화적인 선묘로 인물들의 윤곽을 그려냄으로써 서민의 삶이 묻어나는 거리미술 특유의 미학을 잃지 않으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가고 있다. 2015년에는 디트로이트의 건물 14채를 그라피티로 훼손한 혐의로 체포되는 등 미술관과 거리, 고급문화와 하위문화의 경계를 허물려는 작가의 시도는 여전히 계속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예술의 장이란 힘의 장이자 이를 변용하거나 유지할 수 있는 투쟁의 장임을 주장했다.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그라피티는 주류와 비주류, 주변과 중심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면서, 때로는 협조하고 때로는 충돌하며 그 간격을 좁혀가고 있다. 상업화와 자본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예술의 실천적 행위를 통해 인간의 의식을 전환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 한 그라피티의 저항정신은 현재진행형이며, 그 진화의 끝은 아직 열려 있다.

이주현 미술사학자·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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