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의 사람사진] 제주 들녘이 세상의 중심/ '4·3 화가' 강요배의 30년
강요배 화가와 제주 들녘을 걸은 게 25여년 전이다. 아무 말 없이 걷다 들녘을 배경으로 고작 사진 몇장 찍었다.
그리고선 마을 어귀 식당에 들어가 물회와 막걸리를 시켰다. 여기서도 그는 별말이 없이 창밖 들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물회 한 숟갈에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서도 시선은 들녘이었다.
오롯이 그 기억만 남은 터에 2년 전 그를 다시 만났다. 그가 첫 산문집 『풍경의 깊이: 강요배 예술 산문』을 펴낸 게 계기였다.
책의 첫 글에 시선이 머물렀다.
'나의 자호는 노야(老野), 늙은 들판이다'였다.
다음 장의 첫 그림 또한 제목이 ‘노야, 2011’이었다.
25년 전 하염없이 바라보던 들녘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강 작가가 제주 들녘으로 돌아간 건 1992년이었다.
그가 마흔 살이던 해였다.
A : “그곳이 가장 자유롭고 편한 곳이어서 간 겁니다. 그때가 한참 한국 사회가 세계화 얘기로 떠들썩할 때였죠. 다들 해외로 나갈 때 거꾸로 난 시골로 간 거죠. 제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삼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1980년대 말부터 '제주 민중 항쟁 사건' 연작 그림을 그렸고,
'4·3의 화가'로 불리던 그에게 제주는 어떤 의미일까.
A :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사회와 역사의 맥락을 공부했죠. 지금 고향의 역사를 탐구하는 일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찾은 제주 풍경은 그에게 뭇 삶의 터전으로 다가왔다.
A : “그 공간에 스쳐 간 시간과 사연과 내력이 지층처럼 겹쳐서 보였습니다. 호박, 옥수수, 진달래, 보리밭 등 사소한 것들이 내겐 굉장히 재미있어진 겁니다."
지난달 26일부터 서울 학고재 갤러리에서 그가 그린 제주가 전시되고 있다.
전시장 벽면에 '따스하게 벗처럼 살면 어디든 중심이 되는 법이다'라 쓰여 있었다. 삶이 묵은 늙은 들판으로 그가 돌아간 이유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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