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민의 사이언스&테크놀로지] 골칫덩이 녹조로 '인공석유' 만들 수 있을까

2022. 9. 20.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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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녹조 논란이 거세다. 하천 녹조 생성이 심화되면서 수돗물 오염 등의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녹조가 생기는 원인은 하천의 ‘부영양화’다. 영양염(질소나 인 등) 농도가 자연 상태일 때보다 더 높은, 쉽게 이야기해 강이나 하천에 ‘비료 성분’이 과도하게 녹아든 상태를 이야기한다. 음식물, 축산 분뇨 등 유기물 쓰레기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강, 하천 등의 민물에서 부영양화가 일어나면 조류(미세 수중생물)가 크게 증가하게 된다. 특히 녹색이나 남색빛을 띠는 녹조류나 남조류가 빠르게 성장한다. 매생이도 녹조류의 한 종류다. 이런 조류가 섞여들게 되면서 물이 녹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바다에선 녹조가 아니라 적조(Red Tide)가 일어난다. 원인은 민물과 마찬가지로 부영양화다. 물속의 풍부해진 영양소를 먹고 식물성 플랑크톤(조류를 포함한 다양한 바닷속 미생물)이 급속도로 자라나게 된다. 이를 바다 바깥에서 보면 붉은빛으로 보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만약 부영양화가 일어난 하천의 물을 바다로 그대로 흘려보내면 어떻게 될까. 하천에서는 미처 녹조가 생겨나지 못했다 해도 대신 바다에서 적조가 생겨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차세대 ‘바이오매스’ 자원으로 급부상

충남 부여군의 금강하구둑으로부터 15km 떨어진 지점에서 녹조를 촬영한 사진. 하천에 자연적으로 발생한 녹조는 환경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최근엔 녹조, 적조 등 미세조류의 유용성분을 활용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국민일보DB

그런데 과학계에선 ‘녹조나 적조를 친환경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녹조 또는 적조를 포함하는 수중 광합성 생물, 즉 ‘미세조류’엔 적잖은 기름 성분이 포함돼 있는데, 여기서 기름을 추출해 성분 조정을 거치면 석유제품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동물이나 식물의 찌꺼기에서 연료를 뽑아내는 방법은 과거부터 잘 알려져 있던 기술이다. 향유고래의 기름도 양초를 만들기에 적합한 밀랍성 물질이었다. 이처럼 생명체에서 뽑아낸 연료를 ‘바이오매스’라고 부른다.

바이오매스 기술도 시대에 따라 발전해 왔다. 1세대 바이오매스는 주로 사탕수수나 옥수수 같은 식량이 원료였다. 하지만 이 방식은 기아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음식으로 자동차 연료를 만든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2세대 바이오매스는 폐목재나 톱밥 등에서 셀룰로스를 분해해 알코올로 만든다. 하지만 효율이 떨어져 상용화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3세대 바이오매스 소재로 미세조류, 이른바 녹조나 적조가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성장이 빠른 데다 기름 함량도 많아 사업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세조류로 만든 연료는 일반 휘발유나 항공유 등과 성분에서 큰 차이가 없고 미세조류를 기르는 과정에서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까지 흡수하기 때문에 친환경에너지로 불린다. 물론 미세조류로 만든 인공석유를 연료로 사용하면 보통의 석유와 마찬가지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다만 미세조류를 기르는 과정에서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게 되므로 넓은 시각에선 지구 전체의 탄소가스 농도가 증가하지 않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추출한 기름은 성분 조정을 거치게 되면 기존 석유와 사실상 같은 물질이 되므로, 당장이라도 내연기관 차량이나 선박·항공기 등에 넣어 사용할 수 있다. 주유소 등 기존의 석유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무엇보다 미세조류 바이오매스는 연료 제조 과정에 쓰이는 에너지를 크게 절약할 수 있어 대량의 에너지가 추가로 필요한 ‘이퓨얼’ 등 다른 대체에너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미세조류가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태양빛만 있으면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놓기 때문에 에너지를 거의 들이지 않고도 지구 대기를 깨끗이 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다 자라난 미세조류를 모아 기름을 짜내기만 하면 약간의 성분 조정을 거쳐 즉시 연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생명과학 총동원… 다양한 분야에 쓸모

KAIST 연구진이 녹조를 인공배양하고 있는 모습. 전승민 제공

흔히 ‘미세조류로 인공석유를 만든다’고 하면 하천이나 바다에 떠 있는 녹조나 적조를 걷어 오는 것 아니냐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방법은 이와 전혀 다르다. 주로 태양빛이 강한 사막 등의 장소에 인공의 배양시설을 만들고, 그곳에서 미세조류를 대량으로 길러내는 방식이 주로 검토되고 있다.

이 배양시설엔 다양한 첨단기술이 총동원된다. 미세조류가 가장 잘 자라도록 성분이 조정된 배양액을 개발해야 하고, 또 적절한 농도로 공급해야 한다. 또 미세조류 자체도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를 유전자 편집기술을 이용해 새롭게 개발하려는 시도도 있다. 증식이 빠르고 기름 성분을 많이 함유한 새로운 종류를 인공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다. 효율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다. 만약 필요하다면 휘발유를 생산하는 품종, 경유(디젤)를 생산하는 품종 등으로 나눠 개발할 수도 있다.

미세조류는 대단히 쓸모가 많다. 가장 먼저 화학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석유를 짜낼 수 있다는 말은 그 성분을 조정해 플라스틱 등의 생산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성공한 사례도 있다. 2017년 영국의 한 회사는 ‘울트라 III 에코’라는 이름이 붙은 신발을 만들었는데, 중국 타이(太)호에 잔뜩 끼었던 녹조를 원료로 사용했다. 녹조에서 뽑아낸 기름을 처리해 신발 등을 만들 때 사용하는 EVA(에틸렌초산비닐)를 대체하는 물질을 만들어낸 것이다.

전기라고 못 만들 리 없다. 녹조에서 직접 전기를 뽑아내는 기술을 개발한 연구진이 국내에 실제로 존재한다. 2016년 연세대 연구진은 녹조류의 광합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를 가로채는 기술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터리얼스’에 게재한 바 있다.

환경오염 물질인 녹조나 적조가 하천, 바다 등에 생겨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선 하천의 부영양화를 줄여 최대한 녹조나 적조가 생겨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미세조류 그 자체는 이론적으로 대단히 쓸모가 많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해 지구 대기를 깨끗이 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석유 및 화학제품을 공급해 줄 수 있는 미세조류 바이오매스 기술이 완전히 실용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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