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키워줘야 자녀들 먹고사는 문제 해결돼 [김세직의 이코노믹스]

2022. 9. 2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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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짜 교육개혁'인가
상상력 키우는 훈련이 교육개혁
암기하느라 천금 같은 시간 낭비
사회에 나오면 취업 절벽에 좌절
단순 암기와 모방형 교육 멈춰야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 세상에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 아들딸이/ 잘되라고 / 행복하라고’. 1960년대 히트한 '아빠의 청춘'이란 유행가의 한 구절이다. 1960년대 이래 30년간 대한민국이 이뤄낸 기적적인 경제성장은 자녀들에게만은 더 좋은 교육을 해주어 더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던 부모님들의 간절한 자식 사랑에 힘입었다. 자신의 꿈나무인 아들딸들에게 최고의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맹모삼천의 마음은 요즈음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만 5세 입학 정책에 대한 학부모들의 강렬한 의사 표시도 이를 증명해 준다.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빛의 제국’. 어둠과 밝음을 동시에 그려낸 창의적 그림이다. [사진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자녀들에게 최상의 교육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한국 교육제도를 환골탈태해야 한다. 아무거나 바꾼다고 다 개혁이 아니다. 무엇을 바꾸느냐에 따라서 봉황을 그릴 수도 닭을 그릴 수도 있다. 교육위원회 하나 만든다고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환골과 탈태가 개악이 아니라 진짜 개혁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교육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부터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한국 교육의 아킬레스건 ‘모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우리 교육의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너무나 명백하다. 바로 시대착오적인 모방형 교육이다. 현재 우리 교육은 기본적으로 남들이 만든 지식을 열심히 외우고 모방하는 교육이다. 그런데 동료 교수들과 국민 1500명에 대해 실시한 서베이에 따르면 이런 모방형 교육에 따라 학교에서 배운 지식 중 절반 혹은 그 이상이 사회에 나와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답한 국민이 3분의 2에 달했다. 절반은 쓸모없는 지식 외우는 공부에 우리 꿈나무들이 천금 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를 외친 공자님같이 공부 자체가 즐거운 경우도 존재하지만, 공부는 큰 스트레스다. 그래도 오늘의 고통을 참고 공부하는 이유는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다양한 지식을 달달 외우면 미래에 높은 소득을 제공하는 좋은 일자리를 얻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로 열심히 공부했던 우리 꿈나무 중 상당수가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할 때가 되면 그 기대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취업 절벽에 번번이 좌절하며 ‘이생망’ ‘헬조선’을 되뇌고 나서야 그동안 유용한 지식인 줄 알고 학교에서 공부한 것 중 절반 이상이 쓸모없는 지식임을 깨닫고 허무하고 허탈해한다. ‘5년 1% 하락의 법칙’에 따라 향후 한국의 장기성장률이 0%대에 접근하며 위기에 빠지면 허탈해하는 젊은이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우리 자녀들을 좌절시키는 이런 시대착오적 교육 시스템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아직도 존재하는가. 필자를 포함한 어른들은 그리고 나라와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자녀 인생을 바꿀 창조형 수업 방법
이제 모방형 교육을 멈추고 자녀들에게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해야 한다. 이 시대 최고의 자산은 창의적 아이디어다. 창의적 아이디어 하나의 가치는 가히 천문학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의 아이디어는 지난해 말 그 가치가 우리 5000만 국민이 1년동안 번 돈인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이 넘는 1조 달러를 넘어서기까지 했다.
이렇게 천문학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능력, 즉 창의성을 키워주는 교육을 우리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교육은 그동안 창의성을 말로만 강조했지 정작 학교에서는 창의성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민의 창의적 능력은 키워주지도 않은 채 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만 세계 1위 수준으로 증가시킨 결과 장기성장률은 계속 추락해 0%대를 향해 가고 R&D 패러독스까지 발생했다. 창의성 교육이 제대로 안 이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창의성 교육을 하고 싶어도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5년간 필자는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 심포지엄식 수업, 상호주관적 창의성 평가를 세 가지 핵심요소로 하는 ‘창조형 수업 방법’을 개발하고 실제 수업에 적용해 왔다. 이 수업 방법은 특히 열린 문제에 대해 자신만의 창의적인 답안을 제시해보라는 과제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특히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화시키는 창의적인 방법을 상상해보는 열린 문제들을 많이 이용한다.
마그리트 그림 보여주고 창의성 측정
예를 들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을 보여주고 “이 그림에 나오는 낮과 밤의 공존 같은 비현실적 상황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를 제시하라”는 과제를 준다. 혹은 “1년 내내 섭씨 30도가 넘는 '불나라'가 있다. 이 나라에서 얼음을 화폐로 도입하는 효율적인 방법은?” 같은 열린 문제를 제시한다.
혹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화폐를 상상해 제시하고, 또 이를 화폐로 도입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하시오”와 같은 문제를 낸다. 만약에 비트코인의 아이디어가 나온 2008년 이전에 우리 자녀 중 누군가가 이 열린 문제에 대해 열심히 생각했다면 가상 인물 사토시 나카모토보다 먼저 가상화폐를 만들어 세계 제1의 부자가 돼 인생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가상화폐 비트코인도 창의성에서 나와
창조형 수업은 이렇게 학생들이 아직 현실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상상해내고 이어서 그것을 현실에 구현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훈련을 함으로써 발명품을 생각해내는 것과 동일한 창조의 과정을 훈련하는 아이디어 발명 수업이다. 물론 기존 지식 중에도 꼭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이 있다. 따라서 창조형 수업에서 기존 지식에 대한 강의는 핵심 지식에 한정해 반으로 줄이고 나머지 절반의 시간은 열린 문제에 대한 아이디어 발표와 토론으로 구성한다.
필자의 ‘창조형 수업’을 실제 수강한 학생들의 서베이에 따르면, 이러한 수업 방법이 항상 90% 이상, 즉 대부분의 학생에게 있어 창의성을 키우는데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방법을 따르면 우리 자녀들 누구나 창의력이라는 이 시대 최고의 생존 무기를 얻을 수 있게 된다는 증명이다.
이제 더는 우리 자녀들이 창의력이란 생존 무기도 없이 사회에 나와 좌절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자녀 사랑의 뜨거운 교육열로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학부모님들에 의해 창조형 수업 도입을 포함한 ‘진짜 교육개혁’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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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라’에 얼음을 화폐로 도입하는 효율적인 방법은?
지난해 필자가 쓴 ‘모방과 창조’에서 제시한 이 열린 문제는 돈(화폐)으로 이용되는 얼음이 녹아 없어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다. 이 문제는 경제학 지식 없는 초등학생을 포함, 누구라도 창의적인 답을 낼 수 있는 문제로 자녀들의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식탁에서 가족들이 함께 풀어봐도 좋은 문제다.
한 가지 답은 얼음 화폐를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다니며 물건 살 때마다 꺼내서 지불하는 방법이다. 이는 얼음 녹는 것을 방지하는 용기를 쓰자는 논리적인 답변이다. 단, 이 답은 많은 사람이 쉽게 생각할 수 있기에 덜 독창적인 답안이다.
보다 창의적인 답은 어떤 것일까. 창의적인 답안은 기본적으로 남들과 다른 답안이다. 필자의 수업을 들은 한 학생이 제시했던 창의적 답안은 ‘더워도 녹지 않는 얼음’을 개발해 화폐로 이용한다는 아이디어였다. 더우면 얼음이 녹는다는 고정관념을 깬 답안으로 다른 학생들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였다.
속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작은 용기에 얼음을 넣어 돈으로 유통하자는 창의적 아이디어도 있었다. 물론 얼음은 녹겠지만, 용기 안에 얼음이 들어있다고 모든 사람이 믿기만 하면 돈으로 이용될 수 있고, 용기가 불투명해 얼음이 녹았는지를 확인할 방법도 없다는 독창적 답안이었다.
또 다른 독창적 답안은 기존에 사용하던 지폐를 이름만 바꾸어 얼음이라고 부르고 얼음을 달러처럼 화폐 단위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구성원들이 화폐로 믿기만 하면 굳이 얼음이라는 ‘실물’이 필요 없이 얼음이라는 ‘이름’만 있어도 된다는 창의적 아이디어였다.
창의성은 누구나 타고난다. 이런 열린 문제에 대해 처음에는 덜 창의적인 답안이 떠오르겠지만, 열심히 훈련하다 보면 누구나 보다 창의적인 답안을 생각해 낼 수 있게 된다. “1년 내내 영하인 ‘얼음 나라’에 얼음을 화폐로 도입하는 창의적인 방법은?”에 대해서도 자녀들과 함께 창의적인 답안을 상상해보자.
나의 자녀가 한국 경제를 살릴 ‘잠재적 스티브 잡스’, ‘잠재적 빌 게이츠’인데 모르고 지나치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자.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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