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 논설위원이 간다] 한국 경제의 고질 고치는 '비정상의 정상화'로 강달러 넘자

서경호 2022. 9. 20.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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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러 시대, 쿠오바디스 금통위


서경호 논설위원
“아직 강달러는 초기 단계다. 당분간 고금리 시대가 이어지고 국제경제의 취약성은 커질 것이다.”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19일자 기사 ‘세계 경제의 문제가 된 달러가치 상승(Dollar’s Rise Spells Trouble for Global Economics)’ 에서 한 말이다. 라잔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인도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국제경제 분야의 석학이다. 인도중앙은행 총재 시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과 강달러가 미국 외 나머지 국가에 충격을 주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세계은행, 신흥국 연쇄위기 경고
스리랑카 이어 세르비아도 IMF행

금통위 내달 기준금리 고민 커져
50bp 인상이 오히려 쉬운 결정

한·미 통화스와프에 헛심 쓰지 말고
전기요금 올려서 무역적자 줄여야

내년 만기 신흥국 달러부채 830억 달러

라잔 교수는 신흥국 경제의 스트레스가 커질 것이고 통제하기 힘들 것으로 봤다. 미국발(發) 고금리와 강달러로 신흥국 국가와 기업들이 갚아야 할 달러 표시 부채의 부담이 늘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내년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신흥국 정부의 달러 표시 부채는 830억 달러(약 115조3700억원)에 달한다. 지난주 세계은행은 글로벌 경제가 경기 침체를 향해 가고 있으며 신흥국과 개도국에서 ‘연쇄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실제로 IMF가 바빠졌다.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스리랑카와 파키스탄에 이어 세르비아가 지난주 IMF에 손을 내밀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6개 회원국으로부터 20건의 지원 요청이 있었다. IMF는 코로나19와 강달러 충격에 어려움을 겪는 90여 개 회원국에 2020년 이후 현재까지 2680억 달러를 지원했다.

아직까지 한국은 나름 선방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을 많이 쌓았고, 거시경제도 비교적 순항했으며 해외 순채권국이라는 위상도 도움이 됐다. 블룸버그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들이 외환보유액 등 덕분에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고 19일 보도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원화가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미국발 고금리와 강달러 탓이 크지만 최근엔 다른 통화보다 더 많이 하락했다. 8월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과 반도체 경기 하락, 중국 경제 침체 등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 1400원대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어떻게 해야 할까. 환율 안정을 위해 원론적으로 세 가지 해법이 있다. 첫째, 외환보유액 활용. 이럴 때 쓰려고 힘들게 모아둔 것이니 외환시장에 과도한 쏠림이 있을 때 개입할 수 있다.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를 참고해서 최근처럼 주요국 통화보다 원화가치 하락폭이 유독 클 때는 그 차이를 줄이는 데 외환보유액을 쓸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강달러 추세 자체를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시장을 거스르는 만용은 자칫 국제 환투기 세력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한·미 기준금리 인상 전망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미국연방준비제도(Fed)]

둘째, 기준금리 인상. 금리를 올리면 원화가치 하락세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 강도가 세졌다. 이번 주 22일(한국시간) 세 번 연속으로 0.75%포인트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리되면 미국 기준금리는 3.00∼3.25%가 되고 금리 상단이 한국(2.50%)보다 0.75%포인트 높아진다. 미국 선물시장에선 미국 기준금리가 올해 연말 4.2%, 내년 3월 4.5%까지 오를 것으로 본다. 내외금리차가 크게 벌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우리도 부지런히 금리를 올려야 한다. 다만, 통화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은 있다. 지금과 같은 강달러 상황에선 원화 약세를 막는 효과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통화정책을 물가 잡는 데 써야지 애먼 데 쓴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원화 약세 용인이 가장 비용 적어

셋째, 원화 평가절하 용인. 변동환율제 취지에 맞게 그냥 놔두는 거다. 과거 위기처럼 달러 가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달러 조달도 착착 되는 만큼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변수는 가능하면 존중하자고 할 수 있다.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조동철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이런 입장에 가깝다. 수입물가를 올리고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원화 약세를 용인하는 건 외환당국 입장에서도 마뜩잖은 선택이다. 하지만 다른 방안보다 국민경제가 부담해야 할 경제적 비용은 가장 작다. 우리 국민이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1400이라는 숫자에 지나친 공포감을 갖지 않는다면 정책 당국의 선택지가 넓어진다. 물론 ‘당국이 손 놓고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여론을 설득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다.

현실에선 세 가지 방안이 적절히 조합된다. 이제까지 정부 대응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강달러 추세를 거스르지 않고(원화 약세 용인), 대규모 달러 매도에 나선 지난주 15~16일처럼 필요할 때는 시장에 개입했다.

다음달 기준금리를 결정해야 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제까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포워드 가이던스(금리 정책방향 사전 제시)는 25bp(1bp=0.01%포인트) 인상이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긴축 강도를 높이고 있는 만큼 50bp 인상 전망 가능성이 커지는 분위기다.

25bp 인상시 여론 불만 감내해야

25bp 인상안은 일단 25bp를 올리고 향후 더 큰 폭의 금리 인상을 예고하는 방식으로 예상된다. 통화정책 여력을 아낄 수 있는 게 장점이나 원화 약세에 적극 대응하기를 원하는 여론과 정치권의 불만을 감내해야 한다.

반대로 50bp 인상안은 고물가와 고환율에 힘들어하는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한은 내부에서도 동조가 많을 것 같다. 성장 우선의 정부에 휘둘려온 과거 한은의 아픈 추억 탓에 한은 내부에선 매파적(긴축 선호) 선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50bp를 올리면 연말에도 50bp를 또 올려야 할 가능성이 크다. 하반기에 월별로 경상수지 적자가 불거지거나 중국의 경제 봉쇄와 부동산 시장 침체로 위안화 약세가 지속될 우려가 많아서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 원화를 중국 위안화의 대리(proxy) 통화로 본다. 위안화가 흔들리면 원화도 불안하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지난 12일 각국 중앙은행이 ‘조율되지 않은(uncoordinated)’ 금리 인상에 나서는 바람에 세계 경제가 역사적인 침체 위기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금리 결정하면서 다른 중앙은행과 상의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른 나라 중앙은행의 결정이 자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잘 판단하라는 의미다. 미국 등 선진국의 긴축은 세계 경제 침체를 가속화할 것이고 무역국가 한국도 타격받을 것이다. 이를 함께 감안해야 물가를 잡고 원화가치 쏠림을 막으면서 경기에도 덜 충격을 주는 적절한 금리 인상 수준을 찾을 수 있다.

50bp 인상 땐 내년 경기에 부담

한국은행은 최근 수정 경제전망에서 내년 경제성장률을 2.1%로 봤다. 하지만 ‘플러스만 기록해도 선방’이라는 우울한 분석까지 나온 상태다(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 경제가 안 좋아 기업 실적이 나빠지면 해외로 빠져나가는 외국인 자금이 늘어날 수 있다.

다음 달 금통위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알 수 없다. 미국이 1%포인트를 올리면 큰 고민 없이 50bp 인상으로 따라갈 것이다. 문제는 75bp 인상인데, 여론 분위기로 볼 때 25bp 인상쪽이 이창용 총재로서는 오히려 힘든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참에 한은이 좀 나서라’는 여론과 한은 내부를 설득해야 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사족 하나. 원화가치가 떨어지고 외환시장이 불안해질 때마다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자는 주장이 단골로 나온다. 다가오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꼭 성사시키라는 주문까지 있다. 하지만 한·미 통화스와프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2008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직후엔 원화가치가 크게 올랐지만 20여일 뒤 원래 수준으로 돌아갔다. 미국이 통화스와프를 할 때는 여러 나라와 동시에 한다. 2008년과 2020년에도 그랬다. 양자 회담에서 논의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은 한국의 ‘통화스와프 열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달러 유동성에 문제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통화스와프 얘기를 자꾸 꺼내는지 의아해한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한국에 달러가 부족해지는 진짜 위기가 오면 통화스와프는 벼락같이 올 것이다.

맥락 없는 통화스와프 체결 주장으로 헛심 쓰는 대신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서 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이 전기요금 현실화다. 올해 상반기 무역수지 감소의 75%인 210억 달러가 지난해 상반기보다 60% 넘게 오른 유가 탓이었다. 전기요금 부담 능력이 있는 대량 전력소비처부터 단계적으로 요금을 올리면 당장 무역수지와 원화가치 방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강달러 시대를 우리 경제의 고질을 고치는 ‘비정상의 정상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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