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의 한반도평화워치] 대북정책 둘러싼 신화 깨야 자유민주적 통일도 가능
사고 전환 필요한 남북관계
윤석열 정부 이전 보수 정부와 진보 정부가 각각 세 차례 집권했다. 김영삼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실천, 김대중 정부는 평화·화해·협력 실현을 통한 남북 관계 개선, 노무현 정부는 평화 증진과 공동 번영 등을 각기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는 상생과 공영의 남북 관계 발전, 박근혜 정부는 남북 관계 발전, 한반도 평화 정착, 통일 기반 구축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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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용정책이 북한의 변화 이끈다는 건 환상…북핵만 공고해져
쿠데타나 주민저항 볼 수 없는 북한서 정권 붕괴론은 헛된 기대
민족동질성 회복 정책은 수령 지배 체화한 북한 주민에 안 먹혀
‘중국역할론’은 북한 편향적 태도 보이는 현실 애써 외면한 생각
」
정상회담이란 거대한 쇼
직전 문재인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과 항구적 평화 정착, 지속 가능한 남북 관계 발전, 한반도 신경제공동체 구현을 제시했다. 그러나 진척된 것은 없이 정상회담의 거대한 쇼 흔적만 남았다. 그 이전 정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대 정부 모두 임기 말 성과를 평가하면서 자화자찬하고 목표 달성의 실패를 북한 탓으로 돌렸다.
사실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대북 정책 목표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한반도(북한) 비핵화, 화해·협력, 신뢰 구축, 평화체제 구축, 경협, 인도적 지원, 통일 기반 조성 등 과제에서 대부분 유사하다. 다만 보수 정부가 북한의 변화 견인을 중시한 데 반해 진보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남북 관계 정상화와 평화의 한반도를 목표로 세우고 북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통일 준비, 북한 변화 유도, 인도적 문제 해결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그리고 8·15를 계기로 북한을 비핵화로 이끌기 위한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은 ‘허망한 꿈’이라며 거부했다. 김여정은 핵은 국체라며 남·북한이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이어 김정은은 지난 9일 ‘담대한 정치적 결단’을 했다면서 핵무력정책을 법제화하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가 불가역적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에 휘둘리는 교류와 협력
우리 사회에서 통일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는 우려가 있으나, 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독일 통일 2년 전 서독의 한 여론조사에서 통일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본 응답자는 0.5% 미만이었다. 그런데 동독이 민주화하면서 짧은 기간에 통일할 수 있었다. 남북 관계가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평화 통일의 실현은 언감생심이다. 진정 자유민주적 질서로의 통일을 바란다면 그동안의 대북·통일 정책에서 잘못된 신화가 먼저 깨져야 한다.
첫째, 포용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신화다. 포용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서 본격화됐다. 북한이 어려우니 인도적·경제적으로 돕고 교류·협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면 북한이 변하고 남북 관계가 발전할 것이란 발상이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상황에서도 이러한 기조가 견지됐다. 보수 정부도 정도 차이는 있었으나 교류·협력을 지속하려 애썼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류·협력은 상호적이고 호혜적이 아닌 북한의 선호에 따른 방식이었다. 대규모 식량 차관 등을 제공했으나 북한은 갚지 않고 있다. 금강산 관광도 남북 주민이 서로 이해하는 일상의 관광이 아니었다.
국가·정권이 한몸인 북한 체제
포용정책은 유럽공동체를 이론화한 기능주의 접근을 모방했으나 관여(engagement) 정책의 잘못된 해석·적용이었다. 특히 북한 체제의 속성과 정치문화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관여는 상대방의 행동 변화를 목표로 협력·경쟁·대결을 조합해 집행하는 전략이다. 전략과 방법·수단이 잘 조율되어야 한다. 원칙은 신뢰하되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포용정책은 북한을 무조건 껴안는 것으로 변질하고, 그 자체로 목적이 됐다. 또 ‘보고 싶은 북한’의 인식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과는 핵보유국 북한이다. 북한의 변화를 이끌려면 유엔 회원국으로서 북한을 대하고 그것에 맞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라.
둘째, 독재자의 유고, 경제 쇠퇴 등으로 인해 북한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북한 붕괴론’ 신화다. 김일성·김정일의 사망에도 북한 체제와 국가는 굳건하게 지속했다. 지난 30년의 경제 난국에도 북한 체제는 지탱하고 있다. 또다시 삼중고(코로나19, 자연재해, 경제 제재) 같은 요인을 들어 북한 붕괴론이 제기됐다.
북한의 독재자 유고나 경제 난관이 체제와 국가·정권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으나 쉽게 붕괴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현 체제에서 군부 쿠데타나 대규모 주민 저항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만큼 체제와 국가·정권이 강하게 뿌리 내린 권위주의 체제는 찾기 어렵다. 물론 북한의 정세 변동과 북한으로 인한 한반도 위기에 항상 철저한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남북 관계 발전과 북한 변화를 위한 정책은 북한 체제와 정권의 본질을 향한 냉엄한 접근에서 나와야 한다.
셋째, 북한이 같은 민족이므로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신화다. 무엇이 회복해야 할 민족 동질성인가. 같은 혈통, 공유하는 언어와 문화, 전통과 관습인가. 아니면 이념과 체제, 사고 체계와 생활 양식인가. 분단 장기화로 이념과 체제의 차이에 따른 사고 체계와 생활 양식의 변화가 발생했다.
중국이 말하는 한반도 평화의 실체
개인의 존엄성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 남한의 정체성과 개인이 전체의 한낱 도구인 집단주의에 기반한 사회주의 북한의 정체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북한 주민의 사회화는 집단주의 기풍과 수령 유일 지배를 체화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본질을 간과하고 언어·역사·문화관습의 공통성에 주안점을 두는 정책은 북한 변화나 남·북한 간격 좁히기와는 거리가 멀다.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통일전선 전술에 이용되기도 쉽다.
더욱이 한국의 문화와 인구·사회 구조는 크게 변하고 있다. 한류의 세계적 확산은 우리의 국력 향상,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개방성과 한국적 문화와 융합하는 역량의 결과다. 북한의 폐쇄적 사회·문화는 결국 도태된다. 또 혈통과 인종, 문화적으로 다양한 한국인이 증가하고 있다. 2021년 다문화가정은 약 38만5000가구다. 복합 한국인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혈통적 민족과 언어, 역사와 문화, 전통 등을 존중하고 지키되 그것을 넘어 자유·인권·민주주의가 한반도 전체로 확산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새로운 국민 정체성을 형성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통일 미래상의 전제다.
넷째, 북한의 변화나 비핵화를 위한 과정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에 관한 신화다. 여기에서 ‘건설적 역할’의 함의는 북한의 개방·개혁 고무와 핵개발 차단 및 비핵화로의 영향력 발휘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확산금지조약(NPT) 핵심 국가로 북한의 동맹국이다.
그러나 중국은 그에 부응하는 책임 있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 마지못해 동참하기도 했으나 경제 지원의 뒷문을 열어 놓았다.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북한 편향적 태도를 견지했다. 북한 비핵화를 말하나 항상 한반도 평화와 안정(속내는 중국에 유리한 환경 조성)이 우선이다.
국민 합의한다며 여론몰이 나서
시진핑은 미·북 정상회담이 합의되자 7년 동안 만나지 않던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였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 불법적 경제 압박을 가했으며 ‘3불 1한’을 강요하고 있다. 평화공존과 우의·협력을 외치면서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전근대적인 종주권 행사의 양태를 보인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북한은 중국의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자산이다. 북핵·북한 문제 해결에서 중국은 국제적 상수 요인이나 한국은 과거의 조선이 아니다.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한다면, 그 역할이 우리의 국익에 맞도록 당당한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전략을 짜내야 한다.
다섯째, 국민 합의에 기반한 대북 정책을 추진한다는 신화다. 역대 정부마다 국민 합의를 대북 정책의 주요 기조로 내세웠다. 국내 정치적으로도 국민통합을 과제로 설정했다. 그러나 대북 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오히려 심해졌으며 국내 정치적 분열도 마찬가지다. 정권이 교체되면 반대 측은 무조건 비판과 거부의 논리로 무장하고 시위를 벌였으며 지금도 그렇다.
자유민주주의 정체에서 자유롭게 의사를 표시하고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편에 무조건 반대하는 극렬한 분열 양상은 정책 실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종전선언 추진처럼 여론몰이하며 국민 합의를 강제하기도 했다. 현실적이지 않은 국민 합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면서 총의를 모아가는 것이 선진 정치문화다. 대북 정책도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면서 총의를 모으고 이를 토대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잘못된 신화를 깰 때 상상할 수 없던 전략과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리셋 코리아 통일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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