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아트&디자인] 방혜자 '빛이 내게로 왔다'
“빛이 내게로 왔습니다.” 4년 전 전화 인터뷰에서 그가 들려준 말이 기도문처럼 들렸습니다. 50여년간 어찌 그리 빛 그림을 그려오셨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는 “생명과 평화의 메시지를 세상에 바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왔다”고도 했습니다. 지난 15일 85세를 일기로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난 ‘빛의 화가’ 방혜자 화백 이야기입니다. 지난 3~4월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그의 도불 60주년 기념 특별전(3월 2일~4월 29일)이 열렸을 때만 해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별이었습니다.
2018년 그의 작품이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종교참사회의실 스테인드글라스 설치작으로 선정됐을 때 작가의 소감을 들은 게 엊그제 일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인터뷰가 잊히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빛에 대한 유년의 기억을 얘기한 대목입니다. “어릴 때 개울가에 앉아 바라본 물결과 그 위에 일렁이는 햇살이 평생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한 이 장면이 한 편의 영상시(映像詩)처럼 제 뇌리에 각인됐습니다.
방 화백은 대학 재학시절에 그린 첫 작품 ‘서울풍경’(1958)에도 어두운 화면 한가운데 한 줄기 빛을 그렸다죠. 그와 빛과의 각별한 인연은 아주 오래전에 시작된 듯합니다. 그는 주로 천연염료를 이용해 닥지나 부직포 위에 작업하며 종이 위에 스며들고 우러나는 효과로 빛을 표현했습니다. 그가 평면의 화면에 담은 빛의 파동과 운율, 투명하고 깊은 공간감은 숱한 시도 끝에 얻은 결실입니다.
“빛의 작은 점 하나를 그리는 것은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고 했으니, 그에겐 그리는 일이 곧 구도(求道) 그 자체였습니다. 2001년부터 그는 매년 한국에 들어와 경기도 광주시 영은미술관 레지던시에서 작업했는데요, 박선주 영은미술관장은 “고기도 안 드시고 작업만 한 선생님은 수도자 같았다”고 전했습니다.
1937년생인 방 화백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1961년 국비 장학생 1호로 프랑스로 건너갔습니다. 파리 에콜 드 보자르(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수학하며 유화, 프레스코, 이콘(러시아 성상화),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기법을 수용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지(韓紙)와 닥종이·황토 등 한국 전통 재료를 쓰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가 샤르트르 대성당을 위해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 4점은 코로나19로 일정이 미뤄지다가 올해 설치됐습니다. 그곳이 일반 관람객에게 곧 개방되면, 유서 깊은 성소(聖所)에서 우리는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가 박경리(1926~2008) 선생은 “방혜자의 그림은 우주적”이라며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수직(手織)의 무명 같은 것, 그런 해 뜨기 전의 아침을 느낀다”고 썼습니다. 그 빛을 남기고 작가는 떠났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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