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물가 안정 멀었나..오일쇼크 악몽 떠올라

명순영 2022. 9. 19.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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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기 회복 '가시밭길'

지난 9월 13일(현지 시간) 미국 주식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미국 내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덮치며 뉴욕 증시가 급락했다. 뉴욕 증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276포인트(3.94%) 떨어진 3만1104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77포인트(4.32%) 폭락한 3932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632포인트(5.16%) 폭락한 1만1633에 각각 장을 마감했다. 3대 지수 모두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6월 11일 이후 2년 3개월 만에 하루 최대폭 하락이다.

제롬 파월 연준(Fed) 의장의 ‘잭슨홀 연설’ 이후 추락하다 지난 9월 6일 이후 반등하던 뉴욕 증시는 하루 만에 일주일 치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했다. S&P500 기업 가운데 490곳 이상의 주가가 떨어졌을 만큼 하락세가 광범위했다.

미국 증시가 무너지며 9월 14일 기준 달러당 원화 가치가 13년 5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1390원 밑으로 떨어졌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31일(고가 기준 1422원) 이후 13년 5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등하던 미 증시를 끌어내린 요인은 역시 ‘인플레이션’이다. 개장 직전 발표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 지난 8월 CPI는 국제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전년 동월보다 8.3% 올라 시장 전망치(8%)를 크게 웃돌았다. 투자자에게 인플레이션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오래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보다 6.3%, 전월보다 0.6% 오른 것이 더 큰 파장을 몰고왔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그간 이 지표에 주목하며 금리 상승 시기와 폭을 조율해왔다. 때문에 이 지표가 7월(0.3%)의 두 배로 치솟았다는 소식은 더 큰 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점치게 만들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기준금리 선물 시장 투자자들은 8월 CPI 발표 후 9월 0.5%포인트 금리 인상 기대를 접고, 최소 0.75%포인트 또는 1%포인트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고려하기 시작했다. 일본 투자은행 노무라는 “시장은 미국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견고한지, 연준 대응 규모가 얼마나 될지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며 9월 기준금리 인상폭 전망치를 1%포인트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 9월 13일(현지 시간) 미국 주식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미국 내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덮치며 뉴욕 증시가 급락했다. 미국 증시가 무너지며 9월 14일 기준 달러당 원화 가치가 13년 5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1390원 밑으로 떨어졌다. (로이터)

▶인플레 과소평가한 크루그먼

▷“주장 틀렸다”…한발 물러서

미 증시 폭락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에서 촉발된 경제 불안이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그간 미국 내에서는 정부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연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론적으로 최근 들어서는 미국 정부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정부에 반기를 든 대표적인 인물이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법인세를 올리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가짜 뉴스’라며 맹비판했다. 베이조스는 “이미 경기가 과열된 상황에서 추가 부양책을 추진해 인플레이션 위험을 높이고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기업인으로서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는 점은 이해하지만 베이조스의 목소리는 매우 강경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간 설전도 서머스 교수의 승리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한 래리 서머스 교수는 지난해 초부터 “경기 부양책이 한 세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플레이션 압력을 자극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크루그먼 교수는 ‘바보’ 등의 원색적 단어를 쓰며 서머스에 반대했다.

올 상반기까지도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던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NYT 기고문에서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책으로 마련한 1조9000억달러 규모 경기 부양책에 대한 자신의 예측이 틀렸다고 고백한 것. 당시 그는 대규모 재정지출에도 물가가 크게 뛰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크루그먼 교수는 “ ‘대퇴직의 시대’에 이민자까지 급감하며 일손이 부족해 생산이 줄었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과거의 경제 모델이 들어맞아 이번에도 적용했는데 안전한 예측이 아니었다”고 시인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던 자신의 과거 발언이 틀렸다고 공개 석상에서 인정했다. 그는 지난 8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에너지와 식품 가격 상승, 공급망 병목 현상 등으로 경제가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았다”며 “인플레이션 향방에 대한 나의 과거 예측은 틀렸다”고 말했다.

▶우려 목소리 낸 역사학자 니엘 퍼거슨

▷“1970년대보다 더 심각한 위기 온다”

미국 인플레이션 장기화가 기정사실화하며 비관적인 주장에 힘이 더 실리게 됐다.

역사학자 니엘 퍼거슨 스탠퍼드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현재 세계 경제가 오일쇼크에 부닥친 1970년대와 유사한 정치·경제 격변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퍼거슨 교수는 지난 9월 초 CNBC와의 인터뷰에서 “1970년대보다 더 심각하고 위기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융 충격과 정치적 충돌, 시민 사회 불안 등이 1970년대 특징인데, 현재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지난해 통화·재정 정책 실수는 1960년대와 아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전쟁이 벌어진 상황과 함께 경제위기가 반복됐다고 주장하며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을 언급했다. 전쟁으로 중동 산유국들이 자원을 무기화하며 세계 경제가 1차 오일쇼크에 맞닥뜨렸고, 관련 영향으로 물류비가 치솟아 세계 식량난이 심화했다는 주장이다.

퍼거슨 교수는 “유럽의 러시아 제재로 러시아가 천연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를 무기화하며 국제유가가 치솟았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중동전쟁 시기와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동 4차 전쟁 당시에도 미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금리를 올렸고,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는 정책을 펼쳤다”고 말했다.

퍼거슨 교수는 전쟁 전조 증상도 과거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2021년 통화·재정 정책 실책은 1960년대 통화 정책 실패를 연상시키고, 통화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억제되지 않는 점도 같다고 주장한다.

미 중앙은행은 1951년부터 1970년까지 통화 긴축에 따른 저성장과 실업률을 감수하되 인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인상했다. 하지만 통화 정책을 통한 시장 안정화는 실패했고 1979년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13%까지 치솟았다.

무엇보다 퍼거슨 교수는 현재 상황이 1970년대보다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1970년대과 비교했을 때 생산성이 더 낮고, 국가 부채 수준은 더 증가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미중 패권 경쟁 고조화로 강대국 사이 긴장 완화 가능성이 낮아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퍼거슨 교수는 “적어도 1970년대에는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 간의 긴장 완화가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美 금리 ‘울트라스텝’ 밟을까

▷달러당 원화 가치 1390원 밑으로

시장에서는 연준이 오는 9월 20~21일 열리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또다시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1%포인트 금리 인상이라는 울트라스텝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향후 국내외 경제 전망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한국은행 조사총괄팀·미국유럽경제팀·전망모형팀은 ‘미국·유럽의 경기침체 리스크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를 냈다. 다양한 지표와 계량 분석 방법을 이용해 추정한 결과, 최근 미국과 유럽 모두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졌다는 진단이다. 특히 미국보다 유럽 침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미국은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수요를 억제하는 과정에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견조한 노동 시장, 양호한 가계 재정 상황 등이 충격을 완충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유럽은 외생적 공급 요인의 영향이 크고 국가 간 정책 여건이 달라 효과적인 대응이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미국과 유럽 경기 침체가 현실화하면, 우리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박경훈 한은 조사총괄팀 차장은 “미국 경기 침체로 글로벌 수요가 둔화하면, 수출 무역 경로를 통해 국내 수요도 줄어든다”며 “글로벌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인 만큼 그 전개 상황과 경제적 영향을 주의 깊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꼽은 글로벌 5대 리스크

스태그네이션·오일쇼크·금리 ‘첩첩산중’

현대경제연구원은 올 하반기부터 다음 해까지의 전망을 담은 ‘세계 경제, 퍼펙트 스톰 오는가? 글로벌 5대 리스크 요인의 향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 키워드를 ‘STORM’으로 정리했다.

STORM은 ▲세계 경제의 침체(Stagnation) 가능성 증대 ▲미·중 교역 전쟁(Trade war)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의 단절 ▲오일쇼크(Oil shock)에 따른 고유가 장기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Russia)에 따른 유로존 경제위기 ▲미국 연준의 급진적 통화 정책(Monetary policy) 등의 요인에서 알파벳 앞 다섯 글자를 모은 키워드다.

현경연은 미국, 유로존 등 선진국에서 이미 경기 하강 신호가 감지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 중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진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주요 신흥국 가운데 브라질이 포퓰리즘 정책의 부작용에 따른 경기 침체에, 인도와 중국은 연착륙 수준의 하강 국면으로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미·중 교역 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과 교역 단절로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 경제의 침체 가능성이 커지며 국제유가는 소폭 하락하고 있다. 그러나 현경연은 올해 말에서 다음 해 초쯤 러시아의 유럽에 대한 가스 수출 통제가 강화될 경우, 고유가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또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은 겨울철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에 치명적이라며 유로존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경연은 미국 연준의 빠른 금리 인상이 달러 대비 원화값 상승으로 이어져 수입 물가를 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리스크 요인의 영향력이 시간이 갈수록 완만하게 감소할 것으로 보여 ‘퍼펙트스톰’이 실제 닥치기보다는 일정 기간 제한된 범위에서 글로벌 경기 침체를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전망했다.

전 세계적인 경제 리스크 우려에 대해 현경연은 ▲선제 위기 대응 능력 강화 ▲유연한 통상 외교 전략과 핵심·원천 기술 확보 ▲적극적인 자원 확보와 공급망 안정 등을 조언했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6호 (2022.09.21~2022.09.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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