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결혼, 불행했다" 제자에 치부 고백한 퇴계 이황 진면목
도산서원 김병일 원장
"저는 (퇴계를) 공부한 사람, 연구한 사람도 아니고 후손도 더더구나 아닙니다. (퇴계에 대해) 학자라기보다, 사회적 약자까지 보듬고 배려하는 따뜻한 실천에 감동했습니다."
새 책 『뜻이 길을 열다:도산서원 원장 김병일의 참선비론』(나남출판)을 펴낸 김병일(77) 도산서원 원장이 19일 출간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경제 관료 출신으로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그는 2008년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맡으면서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1501~1570)과 남다른 인연이 됐다. 이후 줄곧 퇴계의 고향 경북 안동에 살고 있는 그는 이날 서울 시민청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저는 현직에 있을 때, 가정 생활을 할 때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며 "퇴계 선생에서 비롯된 가치를 세상에 알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저와 다른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집필 동기를 전했다.
책에는 그가 몇 차례나 고사하다 뜻하지 않게 이사장을 맡게 된 과정부터 그간의 활동, 지금 시대 퇴계의 정신이 지닌 의미 등을 담았다. 수련원은 올해초 누적 수련생 100만명을 돌파했다. 2002년 창립 이후 20년 만이다. 김 원장은 말년의 퇴계가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지은 '도산십이곡'을 노래(작곡 김종성 충남대 교수)로 확산하는가 하면, 선조의 만류를 뿌리친 퇴계의 1569년 마지막 귀향길을 따라 서울에서 안동까지 700리를 걷는 답사 행사도 열고 있다.
"물러남"이 빛난 퇴계의 말년
그는 "퇴계의 정신 중 가장 빛나는 것 중 하나가 '물러남'"이라며 특히 귀향부터 별세까지 1년 9개월을 두고 "퇴계가 정말 감동적인 것은, 노쇠한 시기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점"이라고 했다. 일례로 퇴계가 평생 쓴 편지 가운데 약 20%에 가까운 573통이 이 시기에 쓴 것이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김 원장은 "내용이 기가 막힌다"며 일부를 소개했다. 대를 이를 증손자에게 젖을 먹일 여종을 보내달라는 손자의 요청에 여종의 갓난아기가 죽을 수 있다며 보내지 않은 것도 그 중 하나.
또 금슬이 좋지 않았던 제자 이함형에게 도중에 열지 말고 고향집 앞에서 열어 보라며 써준 편지에는 부부의 도리와 남편의 역할을 강조하며 "나는 두 번 장가를 들었지만 내내 불행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결코 마음을 박하게 먹지 않고 노력해온 것이 거의 수십년이 됩니다"라고 썼다. 퇴계의 첫번째 부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두번째 부인은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원장은 "제자의 부부 금슬을 위해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낸 것이 퇴계의 진면목"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상대를 존중하는 퇴계의 면모는 일찍이 고봉 기대승과 8년에 걸친 논변에서도 유명하다. 대학자로 이름을 떨치던 퇴계가 26세나 어린 젊은 학자 고봉에게 처음 쓴 편지에는 "제가 전에 말한 것이 더욱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머리를 숙입니다" 등의 표현이 나온다. 김 원장은 "퇴계 선생은 고봉의 논박을 논박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동반자로 여겼다"며 지금 시대의 상충하는 견해들에 대해서도 "판을 깨지 않고 협의·조정해 나가는 지혜"를 강조했다.
김 원장은 고전적 덕목을 현대에 맞춰 실천하는 것을 강조했다. 오륜의 '부부유별' '장유유서'를 그는 남편과 아내가, 어른과 아이가 서로 "존중"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부자유친'도 마찬가지. 그는 "자식을 사랑하는 건 짐승도 하는 일"이라며 "부모가 자녀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을 오늘날에 맞는 실천으로 설명했다.
그는 퇴계의 성장 과정을 두고 "부모가 많이 배워야 경쟁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퇴계는 생후 7개월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7남매를 키운 어머니는 문자를 배운 적 없었다. 김 원장은 또 "AI가 배울 수 없는 것이 공감 능력"이라며 박학(넓게 읽고 듣고 쓰고 배움), 심문(반드시 질의하여 답을 구함) 등 선비들의 5단계 교육법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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