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대학 진학률 세계 1위의 함정

2022. 9. 1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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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후보자 자녀의 조기 유학이 지난 정권에 이어 이번 정권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자녀가 부모를 동반하지 않고 조기 유학을 다녀온 행위가 위법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의 청문회 과정은 유독 역량 검증보다는 가족 검증이 주목을 받는 사례가 허다하다. 특히, 자녀의 교육과 관련된 원정출산, 위장전입, 불법유학은 대표적인 논란거리 중 하나이다. 그 이유는 자녀 교육에 국민들의 관심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필자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 연구년(안식년) 파견 기회를 얻어 가족과 함께 보내고 온 적 있다. 떠나기 전 소식을 전해 들은 많은 동료 교수들이 "자녀가 미국에 남아서 공부하겠다고 떼쓰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다"는 얘기를 이구동성 들려주곤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으로 돌아갈 무렵, 딸아이는 "미국에 남아서 공부하면 안 되겠냐"고 여러 차례 되묻곤 했다. 이런 경우, 부모로서는 약간 고민이 되기 마련이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이 한국에 비해 훨씬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런 미국의 교육 시스템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생이 되어서도 한국 교육에 대한 수요자 만족도는 굳이 확인이 필요 없을 정도로 형편없다. 초중고 시절 혹독한 입시경쟁에 시달려 지칠대로 지쳐버린 학생들은 교육과 배움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고, 대학교육은 취업을 위해 거쳐야 하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전락해 버렸다. 급기야 매학기 학비와 생활비를 벌겠다고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에 시달리고는, 정작 강의실에서는 꾸벅꾸벅 조는 대학생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해외에 머물다 보면 우리나라 교육열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인 부모를 둔 학생치고 우등생이 아닌 학생을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발전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이 한몫한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왜 우리의 교육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선 지 오래되었고 한류열풍으로 전 세계가 '코리아'에 주목하고 있지만, 한국 교육의 세계 경쟁력은 과연 몇 등이나 될까? 왜 해마다 수업 때 조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인가? 왜 졸업생 학력은 갈수록 저하되는 것인가? 왜 학문에 대한 학생들의 열정은 갈수록 사그라지는 것인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매해 제공되는 교육 부문에 대한 통계자료를 보면, 한국 청년·중년층(20·30대) 대졸자 비중은 69.8% (OECD 압도적 1위)인 반면, 장년·노년층 (50·60대) 대졸자 비중은 25.1%(OECD 평균 29.1%)에 불과하다. 그 격차는 약 3배에 달한다. 이러한 추세라면 전 국민의 대졸자화는 시간문제이다. 반면에 한국의 대학생 1명에 대한 투자비는 1만1000달러(OECD 평균 1만7000달러)로 최하위 수준이다. 이러한 사실로 비춰 보면, 위 물음에 대한 답이 자명해진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우수한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대학들 나름대로 투자 포트폴리오 관리를 수행하기 마련이다. 매해 각종 언론사에서 발표하는 국내 대학 순위가 그 기준이 되곤 한다. 영리행위가 제한된 대학의 특성상 수입은 한정적이다. 따라서, 최선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지출을 조정하는 수밖에 없다. 14년간 등록금이 동결된 상황에서 대학이 투자를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학생 투자에 대한 비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직원 인건비는 동결한 지 오래고 시설투자, 연구 및 교육 기자재, 실험실습비나 장학금 등 대학 운영에 필수적인 비용도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높은 대학진학률은 높은 청년 실업률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수가 대학만 졸업하면 번듯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대졸자 눈높이에 맞는 우아한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내지 않는 한, 청년 실업률은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학생들 역량이 사전에 발굴되어 사회의 적재적소에 고르게 분배될 수 있도록 교육 선진국 모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대학 구조조정을 서두름과 동시에 하향평준화를 조장하는 재정 옥죄기 정책은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다. 작금의 상태가 지속되는 한, 학문은 고사위기에 처하고 우수 인력의 해외유출은 지속됨과 동시에 한국은 이류, 삼류국가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하여 더이상 지도층 인사들의 자녀 해외 교육 챙기기로 인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모습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차희성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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