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저작권, 왜 우리는 권리를 '포기'해야 하나
[정일영 기자]
▲ 저작권 양도 및 저작물 활용 동의서 연구자는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 학술지에 저작권을 의무적으로 양도해야 한다. |
ⓒ 정일영 |
저작권(copyright)은 창작한 저작물에 대해 저작권자가 가지는 권리다. 쉽게 말해 저작권은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한 결과물에 대해 그 표현한 사람에게 주는 권리"다.
이와 같은 저작권은 주로 문화예술 분야에서 그 논의가 진행되어왔고 저작권에 대한 보호 또한 강화돼 왔다. 다만 연구자의 저작권에 관한 논의는 매우 부족한 상황으로 저작권 보호조치 또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필자는 법률가가 아니다. 다만 연구자로서 연구자의 저작권이 보호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고 나름의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도록 하겠다.
저작권, 양도가 '의무'가 된 '권리'
우리 사회에서 문화예술 분야를 중심으로 저작권 보호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한 이후 학계에서도 이와 관련한 변화가 있었다. 바로 연구자가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 '저작권 양도 동의서'를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저작권에 관한 인식이 부족했던 연구자들은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 저작권 양도를 의무사항처럼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연구자는 논문심사에 통과된다 하더라도 저작권 양도에 동의하지 않는 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수 없다. 저작권이 '권리'가 아닌 양도해야 하는 '의무'가 된 것이다.
연구자는 연구실적, 즉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함으로써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취업을 준비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연구자에게 저작권 보호는 한 마디로 '배부른' 생각으로 치부됐다.
그렇다면 학술지를 발간하는 학술단체와 학회는 왜 저작권 양도 동의서를 강제하게 되었나? 학술지를 발간하는 학술단체와 학회는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에 대한 저작권을 이용해 저작권료를 받아 왔다. 이들 단체는 연구컨텐츠를 보급하는 업체(교보, DBpia 등)와 계약을 맺고 공유되는 논문에 대한 저작료를 일괄 지급받아 왔다. 이렇게 지급된 저작료는 저작권을 양도한 연구자가 아닌 학회의 경비로 지출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 연구자도 모르게 판매되는 논문 연구자의 논문은 2차 상품으로 리포트 사이트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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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또한 여러 학회에서 운영진으로 활동한 바 있다. 사실 대규모 학회를 제외하면 중소규모의 학회는 재정이 매우 열악하다. 학회를 운영하는 운영진 또한 자신의 이익보다는 학회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참여하게 된다. 결국 연구자는 학회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저작권 양도를 통해 학회 재정에 기여한다는 암묵적인 규범이 형성된 것이다.
이제 연구자의 저작권을 논해야 한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자가 강단에 서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았다. 물론 정규직 연구자만큼 수입이 보장되지는 않았으나 강의와 연구프로젝트 참여만으로도 연구와 학술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연구자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대학의 위기는 강사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이어졌고 시간 강사조차 치열한 경쟁 속에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되었다. 이제 신진연구자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은 사라졌다. 자신의 연구에 집중하기보다는 경제적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저작권 보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날로 높아져 가는 상황에서 학계의 저작권 양도 관행은 규범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법률적 관점에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제 연구자에 대한 저작권 보호를 통해 연구자가 연구에 집중하고 연구의 성과로 수입을 창출하는 생태계를 준비해야 한다. 학술단체와 학회가 논문 게재를 이유로 연구자의 저작권을 의무적으로 양도받는 관행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문제를 접근하고 해결해야 할까? 연구자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리 학계와 국회, 그리고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공동노력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학계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나서야 한다. 다만 현재와 같이 저작료가 학회의 예산으로 지출되는 관행이 고착된 상황에서 학술단체와 학회를 문제의 주체로 비난하기보다는 과도기적인 해결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학술단체와 학회가 연구자의 저작권 양도로 발생한 저작료를 신진연구자 지원에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중장기적으로 연구자의 저작권은 온전히 연구자에게 귀속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학술단체와 학회가 연구자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연구자의 저작권 보호는 정부나 국회가 아닌 우리 학계가 주도적으로 대변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저작권법'에서 연구자의 저작권 보호를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제시하고, 제4조(저작물 예시 등)에서 '논문'이 저작물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연구자의 저작권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현행 '저작권법'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법률로 상당 부분 문화예술 및 소프트웨어 분야의 저작권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연구자의 저작권 보호를 위한 국회의 생산적인 법개정 논의가 절실하다. 또한, 연구자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교육부와 산하 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이 이 문제에 실효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구자의 저작권을 양도받아 사용하고 있는 학술단체와 학회가 연구자의 저작권을 보호에 나선다 해도 이를 대행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 학계와 관련 연구단체들이 문화예술 분야와 소프트웨어 분야의 저작권협회와 같이 연구자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 설립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는 저작자이고 그 저작권은 법률에 따라 보호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 학계와 사회는 이 단순한 명제에 침묵해 왔다. 대학과 학문의 위기 속에 연구자들이 자신의 저작권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학계와 정부, 국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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