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처벌 이후.. 생각이 닿지 못했던 지점

강정민 2022. 9. 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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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용미 작가의 <돌멩이를 치우는 마음>

[강정민 기자]

책을 던진 아이가 우리 아이 짝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머리가 멍했다. 담임 선생님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폭력적인 아이를 여자 아이 옆에 앉힐 수도 없고, 남자 아이지만 건드려도 같이 싸우자고 덤비지 않을 우리 애가 짝으로 적임자라 생각했다는 거였다. 선생님의 입장에선 탁월한 선택이었겠지만, 엄마인 나는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조마조마했다. 그 아이가 혹시 물건을 또 던져 우리 아이가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언제쯤 짝을 바꿔주려나? 내가 엄마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학교폭력'이란 말은 세상 모든 학부모가 다 피하고 싶은 단어다.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되는 것도 가해자가 되는 것도 모두 끔찍하다. 학부모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학교폭력에 대한 불안감을 정면으로 다룬 소설책이 새로 나왔다. 신간 소설 <돌멩이 치우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돌멩이 치우는 마음> 책 표지.
ⓒ 내일을여는책
 
이 책은 작가 천둥(조용미)이 쓴 첫 번째 소설책이다. 천둥은 나이 오십이 넘어서 <어서 와, 학부모회는 처음이지>라는 책으로 작가가 됐다. 이 책엔 다년간 작가 본인이 학부모회 활동을 한 내용이 담겨있다. 학부모활동가가 쓴 학교폭력 소설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했다.
소설은 아이가 학생회장이 돼 얼떨결에 학부모회장이 된 영미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영미는 급작스레 학교폭력대책위에 소집이 된다. 매뉴얼에 따라 징계만을 결정하는 회의에 주인공은 당황해한다. 과연 징계가 대책인가? 며칠 뒤, 또다시 학폭 사건이 터지고 영미는 회의 참여를 위해서 학교에 간다. 그날 운동장에서 흥분한 피해자 엄마를 만나게 된다.
 
영미는 진석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흐느끼던 진석 어머니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때린 그 녀석은 학교만 옮기면 그만인가요? 바로 옆집에 사는데?"

영미는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옆집에 사는 걸 학교에서 모른다는 건가? 교사들이나 부모가 다 알아서 할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닌 줄 알았던 일이 이렇게 한 가정의 일상을 무너뜨릴 수 있다니.... " - 본문 36쪽
 
학부모회장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무엇을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영미는 학부모회장이기에 진석 어머님을 위로하고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려 애를 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었다. 영미도 절망감을 느낀다. 결국, 진석이네는 선대부터 300년을 넘게 살아 온 마을을 떠난다. 장사 잘 되던 세탁소도 다 두고 떠난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학교를 떠났으니 더 이상의 학교폭력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데 일주일도 안 된 시점에 빈 호랑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늑대들이 싸움을 또 벌렸다.

'아, 이제 좀 주인공 영미가 정신을 차리고 수습해 나가겠지' 했던 나의 기대감을 소설은 여지없이 무너트린다. 그 지점에서 이 소설이 소설로 다가오지 않고 현실로 다가왔다. 지금 어느 중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 현장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학부모로서 성인으로 무력감을 느꼈다.

책을 넘기니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학생주임 광길이 학폭 관련 연수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연수를 받는 광길은 자신이 피해 입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해줬나 돌이켜 본다. 
 
피해를 입었던 현장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교실이거나 화장실이거나 강당 뒤편이었을 텐데, 아이는 매일 그곳에서 생활해야 했다. 다리가 후들거려도 하루 몇 번씩이나 자신이 맞았던 바로 그 현장, 바로 그 교실, 바로 그 자리에서 어제와 다름없이 수업을 들어야 했다. 사각지대를 없앤다고 CCTV를 달거나 조명을 늘리기는 하지만 그것은 피해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재발 방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해자를 색출하지 위해서였다. - 본문 141쪽
 
광길은 피해자의 관점에서 어떤 아픔이 있을지 피해자들의 감정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모든 회의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니 맞았던 그 현장에서 어제와 다름없이 수업을 받아야 하는 피해자의 고통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나 역시 광길처럼 한번도 생각 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현재 학교폭력 대책들은 하나같이 처벌 위주의 대응이라서 피해자의 고통에는 눈을 감아 버린다. 피해자의 회복되지 못한 상처가 소설에 보여지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가해자가 죄값을 치루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알게 하는 거란다. 쉽지 않은 일에 광길은 도전을 한다.

소설 속에서 회복적 정의를 위한 노력들이 도입이 된다. 책에선 누군가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 피해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회복적 정의'라 말한다. 가해자의 처벌에 관심을 가지는 사법적 정의보다는 피해자의 회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 회복적 정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회복적 정의를 위한 연수를 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학교 안에서 풀어낸다. 학생들이 모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 관계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 마구잡이 난상토론을 하는 느낌이다. 상황이 아주 매끄럽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어 보였다.

학부모들도 회의를 연다. 모임은 학교 밖으로도 이어졌다. 마을에서도 또 회의를 연다. 과거 피해자 학부모가 나와서 이야기를 한다. 신부님도 이야기를 한다. 학교폭력이 학교 안에서만 끝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논의는 학교 밖 마을까지 이어져야 했다.

피해자의 고통이 공론의 장으로 나오고 어른들의 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이들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문제가 생기면 논의를 할 여러 채널과 네트워크를 학교가 갖게 된 것이다. 그 속에서 학교는 더 아이들에게 안전한 곳이 돼 갔다.

책을 덮으며 나는 학교폭력에 대한 해결책은 바로 학부모와 교사가 변하고 마을이 변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책을 읽으며 내가 갖고 있던 그 막연한 불안감도 줄어들었다. 마음이 맞는 학부모를 만났더라면 나도 학부모회 활동에 나섰을까?

내가 주인공 영미가 될 자신은 없지만, 영미를 만나게 되면 함께 했을 거 같긴 하다. 첫 번째 돌멩이는 못 치우더라도 두 번째 돌멩이는 치우는 사람이 돼 보려 한다. 어른들이 돌멩이를 치워야 아이들 모두가 안전하게 잘 놀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다 같이 돌멩이를 치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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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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