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 "부조니 우승 이후 1년..나만의 음악을 찾는 중"
피아니스트 박재홍(23)은 지난해 9월 권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해외 유학이 경험 없는 국내파지만 4개 부문 특별상을 포함해 대회 5관왕을 차지한 박재홍은 단번에 한국 클래식계 스타로 떠올랐다.
제63회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지 1년이 된 요즘 박재홍이 국내 관객과 잇따라 만날 예정이다. 박재홍은 오는 22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의 제7회 M클래식 축제 개막공연으로 김광현 지휘 KBS교향악단과 협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23일 강동아트센터에서 이병욱 지휘 디토 오케스트라와 협연, 29일 마포아트센터에서 리사이틀, 10월 9~10일 정명훈 지휘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이 예정돼 있다. 유럽 공연을 마치고 지난 8월 말 돌아온 박재홍을 최근 만나봤다.
“지금도 제가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게 꿈꾸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만큼 부조니 콩쿠르 이후 많은 변화가 제가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 연주 기회가 많아진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격년제로 열리는 부조니 콩쿠르는 우승자가 세계적 연주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2년간 70여 회의 연주 기회, 거장과 만남을 통한 예술적 멘토링 등 다양한 부상을 제공한다. 박재홍 역시 우승 이후 부조니 콩쿠르가 준비한 다양한 무대에 서고 있다. 지난 8월엔 이탈리아 주요 도시 리사이틀에 이어 거장 지아난드레아 노세다(58)가 이끄는 유럽연합유스오케스트라(EUYO)와 함께 이탈리아 볼차노 페스티벌 및 오스트리아 그라페넥 페스티벌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협연해 호평받았다. 특히 노세다가 그라페넥 페스티벌에서 협연을 마친 박재홍을 끌어안으며 활짝 웃는 모습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은 22일 KBS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국내 관객에게도 처음 선보이게 된다.
“부조니 콩쿠르 우승 이후 공연이 많아지면서 새로 익혀야 하는 곡도 정말 많아졌어요. 특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피아노 협주곡의 경우 1년 동안 새로 익혀서 연주한 곡의 수가 그전에 배운 수와 비슷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새 곡을 연습하며 완성해가는 즐거움도 그만큼 커요.”
박재홍은 부조니 콩쿠르 우승 이후 변화로 연주 기회 증가와 함께 연주자로서 음악적 태도의 변화를 꼽았다. 콩쿠르는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리고 공연 기회를 얻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연주자로서 자격을 증명하는 자리인 만큼 음악적 개성보다는 기량이 드러나는 정형화된 연주를 선보이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콩쿠르를 준비할 때는 아무래도 객관적인 ‘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래서 부조니 콩쿠르를 마친 뒤 오롯이 자기만의 소리를 찾아가는 게 조금 수월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저만의 착각인지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동안 여러 차례 출전한 콩쿠르 가운데 ‘틀’을 생각하지 않았던 게 부조니였고, 거기서 가장 좋은 상을 받았거든요. 어쨌든 지금은 예전보다 음악적으로 훨씬 자유로워졌고, 저만의 소리를 찾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만 박재홍은 부조니 콩쿠르를 끝으로 더 이상 콩쿠르를 출전하지 않는다는 단언은 피했다. 메이저 콩쿠르에서 우승하더라도 연주자마다 깊이를 갖추는 시간이나 공연 기회 등이 다르기 때문에 일부 어린 연주자는 또 다른 전환점 마련을 위해 새로운 메이저 콩쿠르에 나서기도 한다. 박재홍은 “지금은 내게 주어지는 공연들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연주자로서 인정받는 게 목표다. 앞으로 3년 동안은 콩쿠르 생각 없이 연주에만 전념하고 싶다. 콩쿠르 재출전은 그후 결정하겠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박재홍은 이번 국내 무대에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외에 디토 오케스트라와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경기필과는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그리고 리사이틀은 1부에서 슈만의 ‘아라베스크’와 ‘크라이슬레리아나’를, 2부에서 스크랴빈의 피아노 소나타 3번과 프랑크의 ‘피아노를 위한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를 선보인다. 그는 “리사이틀에서는 평소에 좋아하는 곡들을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다채롭게 구성했다”면서 “협연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다. 오히려 지휘자, 오케스트라와 함께 음악을 맞춰가는 과정이 정말 즐겁다. 반면 리사이틀은 연주자 혼자 무대를 짊어지기 때문에 외로울 수밖에 없다. 다만 자주 오진 않지만 내가 몰입해서 연주하고 관객도 하나가 되는 공연의 충족감은 그만큼 큰 것 같다”고 피력했다.
박재홍은 이번 국내 무대가 끝나면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영국 런던, 스위스 쥐리히, 독일 라이프치히, 이탈리아 베로나 등에서 리사이틀 또는 협연 무대에 나선다. 그리고 내년 상반기에는 지휘자 정민(강릉시향 상임지휘자)이 수석 객원 지휘자로 이끄는 이탈리아 볼차노 하이든 오케스트라와 함께 일본과 이탈리아 투어 공연에 참가할 예정이다. 지휘자 정명훈-정민 부자와 잇따라 협연하는 셈이다. 박재홍은 “두 지휘자와는 아직 호흡을 맞춰본 적이 없지만 기대가 크다. 특히 정명훈 선생님께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나이를 먹고 나서 언젠가 지휘를 하고픈 꿈이 있다. 정명훈 선생님의 지휘 영상, 특히 파리 오페라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담은 다큐멘터리는 내가 자주 보는 영상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끝으로 박재홍의 부조니 콩쿠르 5관왕 후광이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18) 신드롬 탓에 오래 가지 못했다는 호사가들의 뒷말은 부질없다는 것을 밝혀야 할 것 같다. 박재홍은 “윤찬이는 단순한 학교(한예종) 후배를 넘어 친한 후배다. 그래서 윤찬이가 반 클라이번에 나갔을 때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보면서 응원했다. 우승 발표 후 바로 축하 연락도 했을 정도”라면서 “솔직히 국내에서 윤찬이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다. 오히려 윤찬이로 인해 클래식 관객이 늘었다면 기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와 윤찬이 둘 다 콩쿠르 이후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기 위해 첫발을 뗀 상태다. 앞으로 같은 길을 가는 동료로서 서로 의지가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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