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함 만드는 '이것'이 비법..계란말이로 100년 자리 지켰다 [백년가게]
■ 백년 가게
「 시간의 힘, 믿으십니까. 백년을 목표로 달려가는 가게, 혹은 이미 백년을 넘어서 역사를 쌓은 곳들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요. 일본 동네 곳곳에 숨어있는 ‘백년 가게’를 찾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상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첫 이야기는 츠키지의 명물, 계란말이집 쇼로(松露)의 이야깁니다.
꼬박 5시간이다. 한 손엔 두툼하고 기다란 나무젓가락을, 또 한 손에는 무쇠로 만든 프라이팬을 들고 불 앞에서 춤추듯 리드미컬한 동작을 반복한다. 계란말이다. 국자로 달걀물을 떠내거나 어른 손바닥 크기도 넘는 두툼하고 샛노란 계란말이를 손목을 튕겨 뒤집을 땐, 동작이 깔끔하기 짝이 없어 탄성마저 나온다.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5시간, 12년을 계란말이를 해온 젊은 직원의 굳은살 박힌 손은 불에 덴 듯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무려 12년, 청춘을 불 앞에서 불태우고 있는 직원은 마지막 프라이팬을 내려놓고서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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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달걀 2만여 개
지난 1일 일본 도쿄(東京), 츠키지(築地) 시장에 있는 계란말이 전문점 쇼로(松露)를 찾았다. 한글로 풀면 ‘솔잎에 맺힌 이슬’이란 의민데, 계란말이를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 이름이다. 그 배경엔 이유가 있다. 사이토 겐이치로(斎藤賢一郎·45) 4대 사장의 설명이다.
그의 4대조인 할아버지 사이토 오토마츠(齋藤乙松)는 나이 11살에 초밥을 배우러 당시로선 도쿄에서 유명한 초밥집 ‘쇼로’에 들어갔다. 쇼로는 니혼바시 근처에 있는 유명한 초밥집이었다. 혹독한 수업을 견디고 초밥을 쥘 수 있게 된 오토마츠는 평이 좋았다. 츠키지에 초밥 가게를 차리기로 했는데, 친정 같은 쇼로에서 가게 이름을 분점처럼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暖簾分け)을 해줬다. 1924년이었다.
입소문을 탈 정도로 맛집 소리를 들었지만, 위기가 닥쳤다. 당시 일본은 물자가 부족했다. 먹거리 역시 그랬다. 초밥 재료를 구하기조차 쉽지 않아 경찰 눈을 피해 ‘뒷거래’를 해야 할 정도였다. 보다 못한 아내는 묘수를 냈다. 가게 앞에 매대를 열고, 초밥용 계란말이를 하기 시작했다. 매대 크기는 약 120㎝. 갓 만든 계란말이의 고소한 향은 손님을 끌기 시작했다. 맛까지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계란말이는 초밥을 제치고 어느새 주업이 됐다. 계란말이 전문점 쇼로의 탄생이었다. 정작 초대 사장이 초밥을 쥐는 법을 배웠던 본점 쇼로는 이후 사라졌고, 살아남은 분점 쇼로는 이제 근 백 년을 바라보는 역사 있는 계란말이집이 됐다.
쇼로에서 사용하는 계란은 하루 약 2만개. 별도 계약을 맺은 농가에서 40여 년째 갓 낳은 달걀을 보내준다. 사이토 사장은 매대 뒤쪽에 자리 잡은 조리실을 보여줬다. 오전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 네댓명이 일렬로 서서 계란말이를 만들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계란말이를 만드는 과정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이뤄진다는 점인데, 이 방식은 쇼로가 고안해 다른 계란말이집에서도 쓰이고 있다고 한다.
계란말이를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팬에 기름을 두른다. 달궈진 팬에 계란 물을 한 국자 붓고, 젓가락을 이용해 계란 모양을 잡는 작업을 몇번씩 반복하면서 점점 두껍게 만든다. 옆으로 팬을 옮기면 옆 작업자가 뒤집거나, 나무로 눌러 계란 모양을 잡는다. 이런 과정을 반복 또 반복해, 두툼한 계란말이 하나가 완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5분. 다 만들어진 계란말이를 옮기고 나면 작업자들은 팬에 기름을 다시 둘러 처음 작업자에게로 보내는데, 이때는 비스듬히 만들어진 레일이 깔린 작업대를 사용한다. 경사진 레일을 타고 팬은 맨 앞에 서 있는 직원에게 보내진다. 하루에 만드는 양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고안한 방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음식
쇼로의 맛은 2대째에 자리를 잡았다. 전후, 설탕이 귀하던 과거엔 달착지근한 초밥용 계란말이가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쇼로는 달랐다. 단맛은 줄이고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달걀 특유의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초밥용이 아닌 계란말이 자체로도 즐길 수 있도록 밑국물을 많이 사용해 부드럽고 촉촉하게 만들었는데, 이 밑국물 제조는 우리로 치면 ‘며느리도 모르는’ 가게만의 비법으로 전수되고 있다.
가업을 잇는다는 것
백 년을 바라보는 가업(家業)은 어떤 의미일까. 사이토 사장은 웃었다. 장남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대학에 들어가서도 포수로 활동했다. 쇼로 가게가 있는 건물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살았을 뿐, 부모로부터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특별히 듣지 않고 자랐다.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시절, 글쓰기 시간에 ‘레스토랑을 하고 싶다’고 쓰긴 했지만, 부친을 따라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못 했다고 했다.
야구를 하던 대학교 1학년 때, 미국에서 경기가 있었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뭘 위해 야구를 하고 있지?’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길로 그는 야구를 그만두고 계란말이 가게에 취업했다. 1997년 2월의 일이었다. 가업을 잇겠다고 대학을 포기하고 들어온 아들을 걱정한 건 어머니였다.
사이토 사장은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조리대에 서서 계란말이를 배웠다. 꼬박 몇 년이 걸렸는데, 쇼로의 계란말이는 밑국물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굽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팬은 무겁기 짝이 없어 일을 마치면 뭔가 손에 쥘 힘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고됐고, 손은 굳은살투성이가 됐다.
계란말이 가게를 한다고?
“지키면서도 도전한다”
사이토 사장은 “항상 위기감이 있다”고 했다. ‘손님이 정말 계속 와줄까, 질려하진 않을까’하는 근심부터, ‘뭔가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이 모든 것이 “쇼로라는 간판이 있기 때문”인데, 그는 “쇼로의 맛을 지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세상의 변화에 또 대응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말을 이었다. “지키면서도 도전해야 하는 것이 쇼로를 이어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얘기다.
매일 새벽 6시에 가게 문을 열고 오후 3시면 문을 닫는 츠키지에서, 그는 어떤 마음으로 계란말이를 팔고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도 바뀌는 것 같다”면서 그는 코로나 이야기를 꺼냈다. 경험하지 못한 질병으로 인해 가게를 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 2~3년 이어지면서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으면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어려웠던 시간을 이겨내며, 가족의 소중함,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는 의미다. 꼭 하고 싶은 한 마디를 부탁하자,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하는 말은 이랬다. “손님들이 드시는 순간은 사실 볼 수는 없지만요. 식탁에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음식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만들고 있습니다.”
한 판에 680엔, 우리 돈 6600원에 살 수 있는 백 년을 바라보는 계란말이를, 츠키지 쇼로에선 이렇게 만들고 있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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