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이정재가 넘은 높은 장벽 [하재근의 이슈분석]

데스크 2022. 9.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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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제74회 에미상 드라마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정재가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의 프레스룸에서 트로피를 들고 활짝 미소 짓고 있다. ⓒ 연합뉴스

‘오징어게임’이 미국 에미상 6관왕에 올랐다. 그동안 미국 아카데미상, 골든글로브상 등에 미국 중심주의, 영어 중심주의의 장벽이 있다고 했었는데 에미상은 그보다 더하다. 에미상은 TV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지역성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미국의 안방극장을 대표하는 시상식인 것이다. 바로 그런 시상식을 한국어 드라마가 휩쓸었기 때문에 이번 수상이 더욱 놀랍다.


‘오징어게임’이 그런 미국 안방극장의 장벽을 넘은 것과 더불어 이정재는 한 차원 더 높은 영어 장벽을 넘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 당시에 아카데미는 송강호를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리지 않았었다. 그만큼 연기 부문의 영어 장벽이 한 차원 더 높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오징어게임’은 영화도 아니고 드라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드라마는 지역성이 영화보다 더 강하다. 우리 드라마 연기대상에서 영어로 연기한 외국인이 주연상을 받을 수 있을까?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번에 이정재는 바로 그런 일을 해냈다. ‘오징어게임’은 미국 안방극장의 영어중심주의를, 이정재는 그중에서도 주연 배우에게 적용되는 특히 더 높은 영어중심주의를 뛰어넘은 것이다.


그동안 에미상은 우리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워낙 미국적인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에미상도 물론 한국 드라마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피차 관심이 크지 않은, 거리가 매우 먼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바로 그런 시상식이 한국어 드라마에 여러 부문을 시상한 것에서 한류 열풍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최근 ‘수리남’ 논란도 한류 콘텐츠의 존재감을 말해준다. ‘수리남’ 제작 당시부터 수리남 측에서 우리 외교부에 항의를 했었다고 한다. 극중에서 수리남에 마약 범죄가 만연한 것처럼 묘사된 점이 나라의 이미지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런 항의에 외교부가 움직였고, 그 결과 ‘수리남’의 영어 제목이 '나르코스 세인츠'(Narcos-Saints·마약상-성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과거 같았으면 한국 사람들이 어떤 드라마를 만들든 수리남 정부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공개된 드라마가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면 문제 삼을 수도 있는데, 제작 단계에서는 아예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제작 단계부터 우리 외교부에 항의했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 드라마가 국제적인 관심을 받는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국제적 관심엔 넷플릭스도 한몫했다. 넷플릭스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업하니, ‘수리남’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날 드라마에 더 큰 국제적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넷플릭스 드라마가 모두 주목 받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 유독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큰 편이다.


한국이 그만큼 국제적으로 공감하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든다는 뜻이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통해 뮤직비디오와 드라마를 전 세계에 방영할 수 있게 됐다. 바로 그런 환경에서 세계인에게 발견된 것이 한국 콘텐츠다. 한국이 마침 세계 누리꾼들이 원하던 신선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그 결정판이 ‘오징어게임’이었다. 미국 LA 시의회가 ‘오징어게임’의 날을 제정할 정도로 엄청난 열풍이 나타났다. 그 결과 에미상이 상을 안 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절정으로 기록될 것인가, 아니면 거대한 한류 연대기의 시작으로 기록될 것인가?


그것은 앞으로 한국에서 어떤 작품들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렸다. 뜨거운 인기를 누렸던 홍콩영화도 한 순간에 몰락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좋은 작품을 계속 배출해야 한다. 우리 제작 인력의 손에 달린 일이다. 제작인력들이 영혼을 갈아 넣은 결과, 지금 현재 단군 이래 최대의 한국 작품 국제적 전성기가 도래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열정에만 기댈 수는 없다. 제작인력에 대한 안정적인 보상체계가 구축돼야 더 많은 창조성이 꽃필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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