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영은문과 공항 영접

이동훈 2022. 9. 17.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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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은 광복절 기념행사 장소로 사용되지만 사실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설립한 문은 아니다.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하자 서재필 박사가 조선 왕의 청나라 책봉 체제 종식을 상징하는 건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1897년 영은문을 헐고 만들었다.

조선은 1536년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모화관 앞에 '불러 맞이한다'는 뜻의 영조문(迎詔門)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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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논설위원


독립문은 광복절 기념행사 장소로 사용되지만 사실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설립한 문은 아니다.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하자 서재필 박사가 조선 왕의 청나라 책봉 체제 종식을 상징하는 건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1897년 영은문을 헐고 만들었다. 일제에 나라를 판 이완용이 독립협회 위원장으로 건립을 주도한 것을 보면 설립 의도는 명확하다. 조선은 1536년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모화관 앞에 ‘불러 맞이한다’는 뜻의 영조문(迎詔門)을 세웠다. 그러나 1539년 사신 설연총이 “조서나 상서(청 황제가 주는 왕의 임명장이나 상장)를 들고 오는데 영조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은혜로운 대국의 사신을 맞는다’는 뜻의 영은문(迎恩門)으로 바꿨다. 이 굴욕의 영은문 액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외국 귀빈 영접이 외교의 출발이자 국가 간 힘의 균형 척도로 인식되는 건 구한말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열강이 청과 일본에서 중국과 미국으로 바뀌고 장소가 공항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요즘 우리 정부는 경제 주도권 다툼이 극에 달한 두 나라 귀빈의 잇단 방한으로 어려운 의전 시험을 치르고 있다. 미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지난달 3일 오산공군기지 도착 당시 우리 측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은 ’공항 패싱’ 사건이 벌어질 때부터 의전 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중국 서열 3위인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9월 방한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미 언론들은 한국이 중국으로 기운 듯하다고 의심의 시선을 보냈다. 실제로 지난 15일 리잔수는 융숭한 공항영접을 받았다. 인천공항이 아닌 국가수반이 이용하는 서울공항에서 내렸고,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이 마중했다. 휴가중이라며 펠로시 면담을 전화 통화로 대체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몸소 리잔수를 맞았다. 국회는 펠로시는 자의로 온 것이고, 리잔수는 국회의장 공식 초청으로 왔다고 해명했다. 오해는 풀릴 수 있어도 미국의 섭섭함이 쉽사리 가라앉을진 모르겠다. 의전의 세련미가 아쉬운 대목이다.

이동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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