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두 번째 장례식 열흘 앞.. 일본 국민은 왜 국장 반대할까

백재연 2022. 9. 17.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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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걸맞은 인물이었나" 논란
학원 스캔들 등 다시 주목받기도
비용 162억원 세금으로 충당해야
일본 시민들이 지난달 31일 도쿄 국회의사당 앞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國葬)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조의를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비판을 받았다”며 “국민 여러분께 국장에 대해 말씀드릴 기회를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지난 7월 8일 유세 중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장례식이 한 차례 더 열린다. 지난 7월 12일 첫 번째 장례식에 이어 78일 만인 오는 27일 그를 위한 일본 정부의 ‘국장(國葬)’이 치러진다.

일본에는 ‘두 번째 장례식’을 치르는 풍습이 있다. 첫 번째 장례식은 고인이 떠난 직후 가족과 친지, 가까운 지인이 참석해 유족을 위로하며 밤을 새우는 ‘쓰야’(通夜·밤샘)를 통해 이뤄진다. 가족장을 마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오와카레카이’로 불리는 고별식을 진행한다. 두 번째 장례식은 보통 정치인·지식인 등 사회 고위급 인사가 사망할 경우 열린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의 두 번째 장례식은 일본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그의 국장을 반대하는 여론이 절반을 넘는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2~4일 시민 1075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아베 전 총리 국장 결정에 대해 ‘반대한다’는 응답이 56%로 ‘찬성한다’(38%)보다 많았다. 찬성(49%)이 반대(46%)보다 높았던 한 달 전(8월 5~7일) 조사와 비교했을 때 반대가 10% 포인트 늘었다.


일본 국민이 국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아베 전 총리는 일본 헌정 사상 최연소 총리 자리에 올랐으며 가장 오랫동안 총리를 지냈다. 1·2차 집권 시기를 포함해 약 8년8개월간 재임했다. 그럼에도 일본 국민이 국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아베가 그만큼 훌륭했느냐’는 데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역대 총리 중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던 인물은 1967년 사망한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가 유일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일본의 주권을 회복했다는 공적을 인정받았다. 1975년 사망한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는 일본을 고도성장으로 이끌어 경제대국 자리를 확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국장이 아닌 국민장을 지냈다. 최근 사토 전 총리가 비밀리에 일본의 핵무장을 위해 움직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사망 당시 그는 일본의 ‘비핵 3원칙’을 수립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이었다.

아베 전 총리는 상황이 다르다. 총격범이 아베 전 총리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과 관련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민당과 통일교 간 관계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지난 8일 자민당은 자체 조사 결과 전체 소속 의원 381명 중 179명이 통일교와의 접점이 있다고 발표했다.

재임 시절 논란이 불거졌던 여러 스캔들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아베 전 총리의 측근이 운영하는 사학재단인 모리토모와 가케 학원이 국유지를 헐값에 매입할 수 있도록 아베 정권이 영향력을 행사한 ‘학원 스캔들’은 의혹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매년 봄 총리가 주최하는 행사 ‘벚꽃을 보는 모임’을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벚꽃 스캔들’ 의혹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가 국장을 위해 16억6000만엔(약 162억원)이 필요하다고 발표하면서 반발은 더 커졌다. 국장 비용은 모두 세금으로 충당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24억원이 필요하다고 밝혔으나 외국 요인 경비 비용이 포함되지 않아 실제 지출은 크게 늘 것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일본 정부 측은 참석할 외국 인사와 경비 규모가 확정되지 않았다며 총비용을 국장 후에 발표하겠다고 했으나 국장에 대한 반대 여론에 예상액을 미리 공개했다. 국장을 둘러싼 논란 등으로 기시다 후미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최근 크게 떨어졌다. 최근 NHK방송 여론조사에서는 출범 이후 가장 낮은 40%를 기록했다.

헌법학자인 기무라 고타 도쿄대 교수는 NHK에 “왜 아베 전 총리만을 특별 취급하며, 무엇을 목적으로 국장을 하는지 평등의 원칙과 공공성의 관점에서 매우 의문”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세금을 사용하는 이상 사토 에이사쿠 등 과거 총리들과 달리 ‘국장’으로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제3의 기관이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시다 내각이 국장을 고집함으로써 국민 간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케다 신이치로 세이케이대 행정법 교수는 “국장은 전쟁이 발생하기 전 일왕이 국가의 주권을 갖고 있었을 때 진행하던 것”이라며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는 민주주의와 상충하는 시대착오적인 측면이 있다. 반대 여론이 뿌리 깊은 상황에서 국장을 강행하면 국민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야당들은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일본공산당과 레이와신센구미는 이번 국장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야마모토 다로 레이와신센구미 당대표는 기시다 총리가 국회에서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고 국장을 결정한 것에 대해 “각의 결정만으로 국회를 유명무실하게 하는 것은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 정부 재량만으로 하는 것은 독재국가”라며 “그렇게 (장례를 또) 하고 싶다면 자민당과 통일교의 합동장으로 하라”고 말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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