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공범' 밝힌 이예람 특검..사망 원인은 폐쇄적 군 문화
"군대 내 그릇된 문화 개선돼야"
100일간 고(故) 이예람 중사 사건을 수사한 안미영 특별검사팀이 지난해 국방부 검찰단이 밝히지 못한 의혹들을 규명하며 지난 12일 수사를 종료했다. 특검팀의 기소대상에는 국방부가 불기소했던 이 중사의 직속 상관 2명, 사건 당시 담당 군검사 및 공군본부 공보담당 장교 등이 포함됐다. 이 중사를 죽음으로 몰고간 것은 피해자에 책임을 전가하는 군내 문화와 안이한 군 사법행정이었다는 게 특검팀의 결론이다.
16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안미영 특검팀이 확보해 분석한 국방부 검찰단 수사기록에는 이 중사의 직속상관이었던 당시 20비행단 김모 중대장이 15특수임무비행단에 ‘(이 중사가) 별것도 아닌 일로 고소한다’는 식의 말을 전한 정황이 기재돼있었다. 당시 국방부는 ‘증거부족’으로 김 중대장을 불기소했지만 특검은 국방부 기록을 토대로 수사를 이어갔고, 김 중대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유족 측은 김 중대장 기소를 특검의 주요 성과 중 하나로 꼽는다. 국방부 수사 단계에서도 김 중대장이 이 중사에 대해 악의적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이의 진술이 나왔지만, 당사자인 김 중대장이 이를 부인해 국방부는 증거불충분으로 결론내렸다. 하지만 특검은 수사 끝에 김 중대장을 기소하면서 그가 이 중사의 죽음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고 밝혔다. 특검은 “김 중대장의 말이 15비에 퍼지면서 이 중사는 새 근무지에서조차 냉대를 받았고, 극심한 좌절감을 느끼게 됐다”며 “이 모든 것들이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중사 사건을 담당했던 20비 박모 군검사도 특검의 수사로 비로소 기소됐다. 박 검사는 이 중사에 대한 2차 가해가 벌어지고 이 중사의 심리 상태가 악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휴가 등을 이유로 조사 일정을 지연시킨 혐의를 받는다. 지난 국방부 수사 당시 수사심의위는 이같은 박 검사의 직무유기 의혹에 대해 추가 수사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결국 국방부가 박 검사를 불기소하자 수사심의위원들 사이에선 “형식적으로나마 업무를 수행했던 피해자의 국선변호인도 기소하면서 명백히 업무를 회피한 군 검사를 불기소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군 당국 책임을 축소하기 위한 군의 ‘공보 작전’도 특검을 통해 드러났다. 사건 당시 공군본부에서 공보 업무를 했던 정모 중령은 기자들에게 이 중사가 부부관계 악화 때문에 사망했다고 전파한 혐의로 기소됐다. 정 중령은 군 지휘부에 책임을 묻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은 이 중사가 사망 직전 남편과 대화하는 장면이 담긴 차량 CCTV 등을 분석한 결과 이 중사의 부부 관계에 문제가 없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에 깊이 관여한 한 변호사는 “폭행으로 사망한 ‘윤일병 사건’ 때에도 군 공보라인 쪽에서 질식사로 발표했다”며 “공보를 통한 여론몰이는 군의 고질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주목받았던 전익수 법무실장 역시 재판에 넘겨졌다. 특검은 전 실장이 지난해 7월 자신을 수사하던 군검사에게 전화해 수사 내용에 대해 항의한 정황을 포착하고 특가법상 면담강요죄를 적용했다. 다만 수사기관인 검사를 상대로 한 위력 행사가 면담강요죄로 처벌 받은 전례는 없다. 특검 관계자는 “충분한 법리검토를 거쳐 혐의 성립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유죄 판결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밖에 전 실장이 사건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지만, 의혹의 근거로 제시됐던 이른바 ‘전익수 녹취록’은 허위로 조작됐음이 특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지난 13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특검은 “이 중사는 단순한 성추행을 넘어 굉장히 심각하고 지속적인 고통을 겪었다”며 “군대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관련자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중사 사망의 배경에는 군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가 자리잡고 있으며, 각 개인들이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대응으로 이에 가담했다는 것이 특검팀의 시각이다. 이 중사 부친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사 결과와 무관하게 특검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미근동에 자리잡았던 특검 사무실은 지난 12일 수사기간 종료와 함께 정리됐다. 특검팀은 강남구 서초동에 새로 마련한 사무실에서 총 13명의 인력으로 공소유지 업무를 이어갈 예정이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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