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큰 축제에서는 이런 맥주를 마신다
[윤한샘 기자]
▲ 파울라너 맥주 텐트 안의 모습 |
ⓒ 윤한샘 |
'아인 프로지트, 아인 프로지트, 행복한 삶을 위하여!'
텐트 안은 맥주 냄새로 가득했다.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커다란 맥주잔을 들고 원샷을 했고 성공하지 못 한 사람에게는 야유와 휴지가 돌아왔다. 모두가 웃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거대한 옥토버페스트 텐트 안에서 사람들은 맥주 하나로 모든 걱정과 근심을 잊은 듯했다.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독일 뮌헨의 테레지안비제(Theresienwiese)는 중년을 넘긴 나에게 맥주 놀이동산과 같았다. 높이 걸려있는 맥주잔은 롤러코스터 표식 같았고 입구의 움직이는 모형은 흡사 사파리 입구의 인형처럼 보였다.
거리에는 소시지 굽는 냄새가 진동했고 흥겨운 브라스 음악은 거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레벤브로이, 학커-프쇼, 슈파텐, 아우구스티너 등 뮌헨 출신의 맥주들이 즐비했지만 내가 선택한 텐트는 멋진 수도사 얼굴이 각인 된 파울라너(Paulaner)였다.
▲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테레지안비제의 풍경, 저 멀리 파울라너의 맥주잔이 보이는가. |
ⓒ 윤한샘 |
1810년 10월 12일,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황태자와 테레제 공주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막시밀리안 황제는 경마대회를 개최했다. 지금 옥토버페스트 장소인 테레지안비제가 바로 경마대회가 열렸던 곳이다.
이 대회가 국민들의 인기를 얻게 되자 1918년 뮌헨시는 옥토버페스트를 매년 열기로 결정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술과 음식이 있는 법, 대회를 보러 오는 손님들을 위해 작은 여관과 선술집이 생기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맥주도 함께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맥주는 경마를 제치고 축제의 주인공이 된다. 이 시기는 양조장들이 한 해 매출을 예단할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을 버는 기회였고 사람들은 눈치 보지 않고 질펀하게 취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바이에른 황제도 맥주순수령에 따라 양조 된 맥주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이용했다.
19세기 후반 독일이 통일되며 바이에른 왕국은 사라졌지만 옥토버페스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현재 옥토버페스트 맥주라 불리는 스타일도 이때 시작된다. 원래 옥토버페스트의 주인공은 어두운색 라거인 둔켈(dunkel)이었다. 하지만 1871년 새로운 맥주가 등장하며 둔켈을 밀어낸다. 깨끗한 마호가니 색, 캐러멜 힌트와 묵직한 바디감으로 무장한 이 맥주의 이름은 메르첸(märzen)이었다.
사실 메르첸은 둔켈의 대타였다. 축제 도중 둔켈이 동이 나자 프란치스카너 양조장은 막 출시한 메르첸을 급히 투입했는데, 예상 밖의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심지어 얼마 지나지 않아 옥토버페스트 공식 맥주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재 옥토버페스트 맥주는 메르첸에 바탕을 두되 '튜닝'되었다. 색은 다소 밝아졌고 알코올은 5.8% 정도로 살짝 높아졌다. 축제 맥주의 덕목인 '많이 마시게 하라'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바디감과 쓴맛도 낮췄다. 지치지 않고 마시게 하기 위한 모든 요소를 고루 갖춘 무서운 맥주가 된 것이다.
▲ 파울라너 맥주를 싣고 오는 마차의 모습. 옥토버페스트 첫날 진행되는 메인 행사다. |
ⓒ 윤한샘 |
파울라너는 '성 프랜시스의 파올라'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도사들을 말한다. 1627년 로마에서 뮌헨으로 건너온 이들은 파올라 수도원을 세운 후 맥주를 만들었다. 이들은 수도원에서 사용하는 맥주를 제외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었는데, 맥주의 품질과 맛이 매우 뛰어나 당시 일반 양조장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18세기 말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며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수익 사업을 금지해 파올라 수도원 또한 이때 사라졌다.
맥주를 통해 하나 되는 독일인
▲ 파울라너 맥주 텐트 안 브라스 밴드의 모습 |
ⓒ 윤한샘 |
텐트 밖 테레지안비제는 맥주 없이도 신나게 놀 수 있는 놀이터다. 관람차와 롤러코스터, 소세지를 비롯한 지역 음식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맥주 텐트 안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맥주가 없으면 아비규환이 될 수도 있다.
파울라너 텐트로 들어서자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과 의자가 보였다. 지붕에 걸린 노란 색 휘장들이 햇빛을 분산시켜 텐트 내부는 아늑한 느낌마저 들었다. 수천 명이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그 규모가 얼마나 큰 지 마치 원근법이 적용된 듯 한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광경이 초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뀐 건, 바로 그다음이었다.
중앙에 설치된 무대에서 철 지난 팝송을 연주하던 브라스 밴드가 '아인 프로지트'라는 옥토버페스트 권주가를 시작하자 수천 명의 사람이 떼창을 하며 동시에 맥주를 마시는 게 아닌가. 흥이 과다한 누군가는 테이블에 올라가 원샷을 시도했고 거나하게 취한 다른 이는 엉덩이를 까고 춤을 추기도 했다.
▲ 옥토버페스트에서는 1리터 마스잔으로 맥주를 마신다 |
ⓒ 윤한샘 |
두꺼운 흰색 거품과 진한 황금색 옥토버페스트 맥주를 보니 벌컥벌컥 들이키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다. 마스 잔은 두껍고 무거웠지만 무슨 상관이랴. 게다가 '아인 프로지트'(건배)를 외치는 군중들의 소리가 계속 귓등을 때리고 있었다.
파울라너 옥토버페스트 맥주는 약간 과장해 꿀물 같았다. 단맛은 섬세했고 쓴맛은 없었다. 적당한 탄산감과 부드러운 목 넘김은 맥주가 아니라 꿀을 탄 청량음료와 다름없었다. 맥주는 '여기서는 취해도 상관없으니 많이 마시라'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었다.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춤추고, 이 텐트는 맥주로 근심과 욕망을 해갈하는 '해우소'였다. 맥주를 통해 어울리고 하나가 되는 모습, 옥토버페스트의 본 모습은 여기에 있었다.
2022년 9월 17일, 독일 뮌헨에서 옥토버페스트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정식으로 재개된다. 많은 사람들이 텐트에서 맥주와 함께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어 놓을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이 축제를 가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못 간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다.
파울라너 옥토버페스트 맥주 하나, 마스잔 하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바로 그곳이 바로 우리의 옥토버페스트다. 소박해도 괜찮다. 맥주 그리고 사람이 함께하는 행복한 가을을 그려보면 어떨까? 가을에 마시는 축제 맥주는 그래서 시원하고 더 맛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중복게재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김건희 논문 심사위원장 "더 문제이신 분께 물어라"
- 윤 대통령, 영빈관 신축 철회... 민주 "철회로 끝낼 문제 아냐"
- 네팔에 가서 정치하라? 민주당 정치인이 답합니다
- 쇼핑라이브 시작... 몇 천 만원 매출을 상상했다
- "'오징어 게임 시즌2' 집필 중...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 도이치 주가조작 사무실에서 '김건희.xlsx' 나왔다
- 무관심·착각·맹신이 만든 치킨프랜차이즈 잔혹사
-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살해범 구속... 법원 "도주 우려"
- 윤 정부 뭘 약속했나... 한일정상회담 응한 일본의 속내
- 부산만 학업성취평가 '필수'... 학원 시험대비반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