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의 여름

윤민섭 2022. 9. 16.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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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원 기아 '쇼메이커' 허수 인터뷰
담원 기아 ‘쇼메이커’ 허수가 16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 사옥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유희은 PD

담원 기아 ‘쇼메이커’ 허수는 인터뷰할 때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편이다. 16일 서울 영등포구의 담원 기아 사옥에서 서머 시즌을 마치고 재충전 중인 그를 만났다. 그는 전보다 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놨다. 서머 시즌 동안 자신과 팀이 겪었던 딜레마도 가감 없이 밝혔다. 1시간 동안 휴식 없이 긴 호흡의 인터뷰를 주고받았다.

-3년 만에 롤드컵 선발전을 치렀다. 준비하는 동안 어려움은 없었나.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하기도 했고, 상대 리브 샌드박스를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해 자신감에 찬 상태로 선발전을 준비했다. 우리의 폼은 우상향 중이었으며, 리브 샌박의 플레이 스타일은 일관돼 있다고 판단했다.”

-의외다. 팀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리브 샌박의 기세를 높게 평가했으니까.
“리브 샌박은 원거리 딜러 위주의 게임을 선호했다. 원거리 딜러를 위해 상체가 판을 깔아주는 패턴으로 정규 리그를 소화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그들이 선호하는 픽이나 플레이 스타일이 흡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지는 선발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리·바이, 오른, 캐리력 높은 원거리 딜러 챔피언 등을 많이 고르더라.
솔직히 4시드 진출은 염두에 두지 않고서 무조건 리브 샌박을 이기겠단 마음가짐으로 선발전을 준비했다. 리브 샌박만 분석했고, DRX와 KT 롤스터를 신경 쓰지 않았다. 스크림에서도 밴 카드를 이용해 상대방이 리브 샌박의 선호 픽을 고르게끔 유도했다. 또는 리브 샌박이 하지 않을 것 같은 챔피언들을 밴 했다. 경기 당일, 1세트 시작 직전까진 긴장감을 느꼈다. 하지만 첫 세트를 이긴 뒤엔 ‘예상대로 됐다’ 싶더라.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겠단 확신이 들었다.”

-첫 세트를 완승했지만, 바로 상대의 추격을 허용했다.
“아펠리오스가 관건이었다. 리브 샌박의 원거리 딜러인 ‘프린스’ (이)채환이가 아펠리오스를 선호하고, 잘한다. 그래서 아마 3세트 땐 아펠리오스를 밴 했을 것이다. 리브 샌박에 아펠리오스를 주면 채환이가 ‘돌풍’ ‘중력포’ 콤보를 통한 이니시에이팅이나 ‘반월검’ ‘만월총’을 이용한 몰래 바론 버스트 등 주도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된다. 이걸 풀어주면 상대가 게임 하기 편할 것 같았다.
3세트는 우리가 블루 사이드이기도 했다. 나는 블루 사이드가 다전제에서 특히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카드를 본 뒤에 1픽을 가져간다는 이점이 크다. 그래서 3세트부터는 밴픽을 유리하게 가져가고자 했고, 의도대로 잘 해냈다.”

-플레이오프도 아쉬움이 남았을 듯하다. 기발한 밴픽과 좋은 플레이를 선보였는데 T1에 석패했다.
“1라운드였던 KT 롤스터전부터 얘기하겠다. KT의 미드라이너인 ‘빅라’ 이대광 선수가 아주 과감하다. 한두 번 데스를 당해도 과감하게 플레이하는 스타일의 선수다. 그를 공략하기 위해 초반에 미드 갱킹을 설계했던 게 잘 먹혀서 1·2세트를 잘 풀어나갔다. 그런데 KT 쪽에서도 피드백이 있었는지 3세트부터는 ‘커즈’ 문우찬 선수도 미드만 오더라.(웃음) 해당 세트부터는 나도 ‘빅라’ 선수도 정글러 의식을 많이 했다. 결국 한타를 더 잘하는 팀이 이기는 양상으로 흘러갔다.
KT전을 위해 깜짝 픽을 준비해오진 않았다. 반면 다음 상대였던 T1 상대로는 우리가 레드 사이드를 플레이하고, 상대에게 제리를 내주게 됐을 때를 대비해 비(非) 원거리 딜러 챔피언을 많이 연습해왔다. 야스오와 하이머딩거 외에도 다양한 것들을 준비했었다.
(5세트 밴픽은) 빠르게 드래곤 스택을 쌓고, 제리 성장 전에 게임을 끝내려는 의도였는데 드래곤 스택이 초반에 한 번 끊겼다. 아마 상대 나르가 두 번째 드래곤 쪽으로 빠르게 붙는 플레이를 했다. 그게 컸던 것 같다. 후반에 야스오를 했던 내가 미드에서 뽀삐의 ‘용감한 돌진(E)’과 연계해 궁극기를 썼음에도 제리를 놓쳤는데, ‘궁극기를 조금 나중에 썼다면 제리를 잡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봤다.”

-기자도 리플레이를 몇 번 더 돌려봤다. 궁극기를 늦게 써도 제리를 잡진 못했겠다고 봤다.
“이게 기절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각인가 싶기도 한데, 뽀삐의 E 스킬 판정이 워낙 좋아 됐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궁극기를 늦게 썼다면 ‘덕담’ (서)대길이가 점멸까지 써 스킬 연계를 하고 제리를 잡았을 것 같기도 한데, 상대 유미가 스킬을 대신 맞으면 또 유미만 죽고 제리는 살아남았을 것 같기도 하다. 일단 내가 궁극기를 더 늦게 써야 했던 건 맞다.”

-개인적으로는 5세트 밴픽과 전략이 인상 깊었다.
“팬들께서 보시기에는 ‘저게 무슨 밴픽이냐’싶으셨을 것이다. 제리·유미를 내주고 하이머딩거·세나, 야스오, 아지르를 했으니까.(웃음) 하지만 우리가 대회에서 고른다는 건 그만큼 많이 연습했고, 자신이 있었다는 의미다. 너무 이상한 밴픽으로 생각하진 않아 주셨으면 한다. 웬만한 챔피언은 정말 많이 연습해보고 꺼내는 것이다.
아지르 스와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버돌’ (노)태윤이가 아지르를 자신 있어 했다. 아지르의 티어가 워낙 높았고 T1이 선호하는 챔피언이기도 했다. 원래 그보다 일찍 전략적으로 활용하려고 했는데 T1이 1픽으로 아지르를 가져가면서 의도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5세트는 ‘탑 아지르 각’이 예쁘게 나온 게임이 아니었다. 탑 아지르는 나르가 아닌 특정 챔피언 상대로 강점이 있다고 봤다. 불가피하게 탑 아지르를 하게 된 상황이었고, 그래서 태윤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원래 미드·바텀 주도권을 활용해 오브젝트를 독식하고 20분에 내셔 남작까지 사냥하려는 의도로 조합을 만들었다. 상대의 갈리오 픽이 절묘했던 것 같다.”

LCK 제공

-다사다난한 서머 시즌이었다. 올해 여름은 허 선수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너구리’ (장)하권이 형도 돌아오고, 스크림 결과도 좋아 시즌 개막 전엔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내구도 패치 이후 LoL이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됐더라. 이전에는 미드나 탑라이너가 잘 성장한 뒤 스킬 쿨을 한 번 돌리면 상대 1인을 쉽게 잡아낼 수 있었다. 이제는 한 명으론 택도 없고 둘이 붙어서 궁극기까지 써야 1인을 잡을 수가 있다. 물론 프로게이머에게 이런 것들은 전부 핑계다.
담원 기아는 예전부터 탑 게임을 선호해왔다. 하권이 형이 처음 몸담았던 시절부터 그랬다. 그런데 새로 온 대길이와 ‘켈린’ (김)형규는 농심 레드포스에서 바텀 게임을 했다. 그래서 탑과 바텀 사이에서 게임을 조율하는 게 힘들었다.
스프링 시즌 동안은 팀이 바텀 듀오에게 많이 맞춰주는 게임을 했다. 그런데 하권이 형이 오고, 그가 탑에서 딜 교환을 워낙 잘해놓으니까 일종의 딜레마가 생기더라. 탑도 바텀도 딜 교환을 강하게 하는 편이다 보니까 둘 중 한 쪽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주도권이 있을 때 탑과 바텀 중 어디로 가야 할지 많이 고민해야 했다.
그런데 결국 탑라이너가 아무리 잘 성장해봤자 상대 원거리 딜러도 성장하기 시작하면 결국 탑라이너 쪽이 게임을 지더라. 시즌 후반엔 드래곤 가치까지 올라가서 더 그랬다. 시즌 내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다. 스크림에서 탑 게임도, 바텀 게임도 해봤다. 탑라이너에게 탱커만 시켜보기도 했다. 결국 우리가 내놓은 정답은 ‘대길이가 편해야 팀이 편하다’였다. 그래서 시즌 후반부로 갈수록 바텀 쪽에 자원을 많이 몰아줬다. 이 전략이 잘 통해서 플레이오프나 선발전에서 대길이의 좋은 퍼포먼스가 나왔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제어 와드를 탑 쪽에 안 박기 시작했다.(웃음) ‘하권이 형 쏘리!’하고 아래쪽에 박고 있다. 사람마다 말이 다르지만 나는 바텀 메타가 맞다고 생각한다. 초반에 게임을 풀어나가는 징검다리는 상체가 맞지만 결국 게임을 끝내야 하는 건 원거리 딜러다.
‘너캐쇼’를 원거리 딜러 친화적인 스타일의 선수들로 보긴 힘들다. 우리 삼인방은 맵에 있는 자원을 보이는 대로 먹고, 상대와 눈이 마주치면 싸우는 선수들이었다. ‘고스트’ (장)용준이 형과 ‘베릴’ (조)건희 형이 있을 땐 그 둘이 다른 삼인방의 과감한 플레이를 잘 커버해줬다. 대길이와 형규는 공격적인 선수들이다. 그래서 상체와 하체 간 밸런스를 잡기 위한 노력을 시즌 내내 했다.”

-개막 전 스크림 성적이 아주 좋았다고 들었다. 내구도 패치에 대한 원망도 클 법한데.
“내부적으로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우리는 프로다. ‘어쩌라고? 적응을 잘하든가’하는 반응이 돌아올 뿐이다. 패치에 적응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다. 실제로 그전에 잘했던 건 맞다. 잘했다기보다는…날카로웠다. 변수 창출에 능했다.”

-서머 시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아마 젠지와의 1라운드 대결 1세트였을 것이다. 내가 코르키로 잘 성장하고, 게임도 유리한 상황이었다. 내가 괜히 바론을 사냥하자고 했다가 버프를 빼앗기고 그대로 넥서스가 터져서 게임을 역전패했다. 그때 팀원들한테 무척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KT와의 플레이오프 5세트 백도어나 리산드라로 바론 스틸을 했던 플레이도 기억이 난다.”

-KT전 백도어 판단 이후로 ‘유관 오더’라는 단어가 생겼다. 허 선수는 ‘우승 DNA’의 존재를 믿나.
“하하. 유관 오더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국제 대회에서 빛이 날 것이다. 국내 대회나 정규 리그에서 그런 판단을 한 것을 두고 유관 오더라고 부르는 건 무리가 있다.
예전엔 4스택 드래곤을 5초 만에 사냥했다. 요새는 드래곤 체력이 버프돼 1만을 넘어간다. 자연스레 사냥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크게 늘었다. 앞선 스크림 시간에 4스택 드래곤 때문에 대치 구도가 나온다면 미드 선(先)푸시를 잡고 백도어하는 것도 고려해보자고 팀원들과 상의한 적이 있던 차였다. 드래곤 등장 1분 전부터 백도어를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상대가 미드 푸시를 허용해 기회가 생겼다.”

-비슷한 이야기를 플레이오프 때 들었다. 리브 샌박 조재읍 코치가 “많은 팀의 선수들이 내구도 패치와 드래곤 패치 이후에도 턴을 예전처럼 쓰고 있다”고 하더라. 수년 동안 해왔던 플레이이므로 새로운 챔피언과 드래곤의 체력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거로 봤다.
*관련 기사: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7382746
“동의한다. 나도, 하권이 형도 ‘오버 턴’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던 것 같다. 단순히 ‘내 아이템이 더 좋으니까’라는 이유로 한 턴씩 더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요새는 그런 플레이를 하면 게임이 바로 기울어져버린다. 내 아이템이 세다고 뭔가 되는 게 아니더라. 팀이 전체적으로 세야 한다.
그래서 젠지가 잘하는 것이다. 그들의 라인전 기량이 좋은 것도 있겠지만, 젠지의 경기를 보면 어느 한 쪽만 잘 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미드라이너와 원거리 딜러는 항상 2~3코어를 맞춰놓고 그때쯤 정글러는 1.5코어, 서포터는 1코어를 띄우는 이상적인 성장을 이룬다.
우리는 탑라이너만 강하거나, 나만 잘 성장하거나, 원거리 딜러만 강한 경우가 많았다. 미드라이너와 원거리 딜러가 각각 3코어를 맞춰야 하는데 대길이는 4코어, 나는 2코어만 뽑아서 균형이 안 맞았다. 이 균형이라는 게 정말 중요해졌다. 내구도 패치 이후부터 턴 맞추기에 신경을 많이 썼고, 시즌 후반부에는 어느 정도 해답을 찾았다.”

-서머 시즌 동안 ‘담원 기아의 미드라이너’로서 고민했던 것들이 있나.
“성적을 내려면 미드라이너와 원거리 딜러가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한 메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거리 딜러의 중요도가 2017년 ‘향로 메타’ 수준으로 높았다고 생각한다. 올여름 리브 샌박이 정말 잘하지 않았나. ‘크로코’ 김동범 선수나 ‘클로저’ 이주현 선수의 기량이 만개했던 것도 맞지만 나는 그보다 채환이가 주도적으로 콜을 하며 플레이했던 게 가장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리브 샌박은 원거리 딜러가 돋보인 팀이다. 미드·정글이 잘하는 건 맞는데, ‘원거리 딜러를 위해서’ 잘한다고 느꼈다. ‘크로코’ 선수의 초반 동선을 보면 드래곤 둥지에서 점멸까지 써서 2레벨 바텀 갱킹을 간다. 탑 쪽으로는 아예 가지 않는다. 메타에 가장 잘 맞는 플레이를 한 팀이 리브 샌박이었다고 본다. 젠지나 T1은 메타 해석도 잘했지만 선수들의 체급이 워낙 좋아서 못할 수가 없었던 팀들이다.”

-팀에 대한 설명만 보면 ‘우지’ 젠 쯔하오가 있던 시절의 RNG를 떠올리게 된다.
“맞다. 리브 샌박을 보면 예전 RNG 같다. ‘렛미’ 옌 쥔쩌나 ‘쯔타이’ 류 즈하오처럼 ‘도브’ 김재연 선수가 라인을 받아먹는 데 특화되고 한타에 강점이 있는 챔피언들을 한다. 리브 샌박은 역전승을 많이 거뒀다. 후반에 딜이 안 부족했다는 의미다. 보면 원거리 딜러가 딜을 다 채워줬다.
원거리 딜러 선수들은 올 시즌이 정말 재밌었을 것 같다. 작년엔 상체가 너무 세서 원거리 딜러 선수들이 생존기를 보유한 이즈리얼이나 진·세나 류의 챔피언 위주로 해야 했다. 올해는 제리, 시비르, 루시안 등으로 캐리력을 실컷 발휘했다. 반면 미드라이너들은 아리·아지르·리산드라·사일러스·갈리오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이제 시즌이 마무리됐으니 하는 얘기지만, 우리는 내구도 패치 전에 조이·신드라 위주로 연습했다. 내가 심지어 점화까지 들고 라인전 딜 교환을 거칠게 한 뒤 탑 다이브를 하는 전략을 애용했다. 하권이 형의 장점을 살리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구도 패치 이후로는 상대가 죽지를 않더라. 내 마나가 먼저 동이 났다. ‘쓰레기챔’이 됐다고 빠르고 판단해서 그 둘을 버리고 빅토르·코르키로 선회했던 기억이 난다.”

라이엇 게임즈 제공

-이제 롤드컵이 남았다. 올해 대회는 허 선수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상하게…근거를 설명하긴 어려운데 이번 롤드컵에선 정말 잘할 것 같다. 잘할 자신 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2020년이나 2021년에 내가 ‘가서 잘하고 오겠습니다’라고 했다면 ‘우승팀이니까 기대된다’고들 하셨겠지만 이번엔 3시드 아닌가.(웃음) 그런데 정말 뭔가 잘될 것 같다.”

-롤드컵은 12.18패치로 진행한다. 12.18패치는 라이브 버전인 12.17패치와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알려졌다. ‘너캐쇼’의 필살기 격인 카밀·그레이브즈·트위스티드 페이트가 버프를 받은 12.17패치로 담원 기아가 웃을 것이란 시선도 있다.
“우리가 잘하는 챔피언들인 건 맞지만 아직 패치가 적용되지 않은 상황이다. 본격적으로 스크림을 해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특정 챔피언의 버프는 별로 의미가 없는 메타다. 젠지처럼 모든 라인이 골고루 잘 성장하고, 실수 없는 플레이를 하는 게 중요하다. 탑·바텀 게임 여부보다는 오브젝트 한타의 완성도가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본다. 리브 샌박이 한타를 잘해서 게임을 이겼던 것처럼. 리브 샌박이 롤드컵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정규 리그 동안 어마어마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않았나. 롤드컵에서도 한타를 잘하는 팀이 득세할 것으로 본다.”

-오늘 인터뷰 내내 유독 리브 샌박을 많이 언급한다. 그들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은 것 같다.
“시즌 개막 전엔 리브 샌박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개막 후에는 그들의 게임을 보면서 ‘다섯이 하나처럼 게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보다 고평가를 하게 되더라. 하지만 다전제에서는 약점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다전제는 밴픽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제·국내 대회에서 여러 번 상위권에 올라 다전제 경험이 풍부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다전제를 치러보면 아예 다른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든다. 상대가 밴픽을 얼마나 많이 준비했는지에 따라 시리즈의 난이도가 바뀐다. 예를 들면, 정말 단순히 예를 들면 리브 샌박은 아리를 1픽으로 가져갈 정도로 선호한다. 그런데 만약 내가 카타리나를 해서 그걸 잡았다고 치자. 그러면 남은 2~5세트 동안 리브 샌박은 2페이즈 밴에서 카타리나를 무조건 의식하게 된다.
우리와 KT의 플레이오프 경기를 봐도 그렇다. 내가 1세트 때 오랜만에 르블랑을 꺼내서 이기니까 상대가 다음 세트 마지막 밴 카드를 르블랑에 쓴다. 깜짝 픽에 당했을 때 대처가 안 된다 싶으면 다음 세트 첫 밴 카드를 거기에 쓰는 경우도 있다. 또한 다전제에선 그날의 ‘승리 카드’도 있지 않나. 해보면 아예 다른 게임 같다.
리브 샌박은 ‘도브’ 선수의 수비적 성향이 강한 만큼 여러 가지 카드를 준비해도 결국 바텀 게임으로 귀결될 것 같았다. 채환이에게 캐리력 없는 원거리 딜러를 맡기진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전제는 선수들의 챔피언 폭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그날의 ‘승리 카드’가 참 얄궂다. 시청자로선 왜 경기 당일 전승 카드를 막판에 안 고르거나 상대에게 내주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반면 선수들은 그동안 쌓아온 밴픽 데이터를 토대로 게임하는 게 훨씬 타당다고 느껴질 법도 하다.
“팬분들께서 ‘왜 이 챔피언을 밴 안 하느냐’ 또는 ‘왜 이 챔피언을 하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게 선수로서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결국 게임을 졌다면 우리 선수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밴픽 하나하나에도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참고하고, 각각의 픽이나 밴엔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아만주셨으면 좋겠다. ‘아~도대체 이걸 왜 풀어주는 거야~제리·유미 X사기인데~!’ 이런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 저희도 바보가 아니니까….(웃음)
다전제는 특히나 그런 카드가 중요하다. 가령 우리는 리브 샌박전 1세트 때 상대에게 그라가스·바이·아리·아펠리오스·룰루를 내줬다. 이러면 닉네임 가리고 봐도 리브 샌박이 뽑은 조합 아닌가. 경기를 보시면서 ‘이걸 왜 다 상대에게 주느냐’고 하셨겠지만, 우리는 연습을 통해 그 조합을 카운터 칠 준비를 충분히 해놨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상대의 핵심 픽을 한 번 이겨놓으면 다음 판부터 게임이 아주 편해진다. 물론 당하는 입장도 돼봤다. 받는 압박감이 정말 심하다. 다음 판에 또 해도 되는지 의문이 생겨버린다.
담원 기아는 밴픽 회의도 오래 하는 편이다. ‘이따위 밴픽’이 많다고 느끼셨을 수도 있지만, 선수들은 전부 많은 생각을 해본 뒤에 골랐다. 생각대로 안 돼서 문제였다.(웃음). 그런데…근거는 없는데, 정말 근거 없는 자신감인데 롤드컵은 잘할 것 같다.”

-올해 롤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있는 것 같다.
“2020년엔 정말 잘할 자신이 있었고, 2021년에도 괜찮겠다 싶은 마음가짐으로 대회에 임했다. 이번엔 2019년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1년 동안 1위와 거리가 멀어졌다 보니 다시 재밌게,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가 ‘얘네는 진짜로 뭘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는 팀이 된 것 같다. 잘할 자신 있다.”

-근거는 없지만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허 선수는 촉(觸)이 좋은 편인가.
“촉이 안 좋은 편이다.(웃음) 이번에 개인 방송으로 리브 샌박과 DRX의 선발전을 중계했다. 시청자들에게 ‘지금 리브 샌박이 싸움을 걸어야 한다.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턴이다’라고 말하자마자 리브 샌박이 ‘제카’ 김건우 선수한테 더블 킬을 따이고 지더라.”

-작년엔 왕관의 무게 때문에 부담감이 심했을 듯하고, 올해는 상대적으로 마음이 가벼울 듯한데.
“다른 핑계 댈 것 없다. 올해 (국내 리그는) 그냥 내가 못했다.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했다. 롤드컵에선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좋은 성적? ‘젠지 형’만 피하면 될 것 같다. 우선 같은 조에 속한 JDG나 G2부터 이겨야 하지만.”

-G2와 한 조가 됐다. 전보다 약해졌다지만,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핵심 선수들이 건재하다.
“G2는 G2다. 저력이 충분한 팀이다. 올해 G2 경기를 봤다. ‘캡스’ 라스무스 빈테르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보였다. ‘캡스’ 선수가 리산드라 같은 챔피언을 하니 팀이 전반적으로 무기력해진단 느낌을 받았다. 그가 사일러스나 아리처럼 주도적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챔피언을 잡았을 때 잘하더라. 그래서 G2전을 이기려면 내가 잘해야 한다. 내가 ‘캡스’ 선수를 억제하는 게 중요하다.”

-개인 방송을 활발히 하고 팬 서비스가 좋은 선수로 꼽힌다. 계기가 있었나.
“예전에 프로게이머란 직업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게임을 하면서 돈을 받는 이 직업은 정말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 직업은 팬이 계시므로 존재한다. 팬이 없어지면 마찬가지로 사라지는 직업이다. 어떻게 하면 팬들께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좋은 성적을 내야 팬분들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지만, 그 외의 방법으로도 기쁨을 드리고 싶다. 그래서 개인 방송을 재밌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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