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선출 승무원도 난동 승객 못 막을걸요?"

나경연 2022. 9. 1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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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압할 때 음료수 권하라는 훈련, 의미 없다고 느껴"
"한발 5만원 테이저건, 훈련 때 안 쏴"
"'딱 이럴 때 쏘라' 매뉴얼 있었으면.."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제주행 기내 난동남’ 키워드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지난달 14일 오후 김포공항에서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편에서 40대 남성 A씨가 유아를 동반한 부부에게 아이가 시끄럽게 운다며 마스크를 벗고 폭언을 퍼부은 사건이다. A씨는 “왜 피해를 주느냐. 누가 애 낳으라고 했느냐”고 고성을 질렀고, 승무원이 제지에 나서자 마스크를 벗은 채 “그럼 내가 여기서 죽느냐”며 소란을 피웠다.

지난달 14일 오후 4시쯤 김포공항에서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편안에서 아이가 시끄럽게 운다고 소리를 지르는 승객(오른쪽)과 이를 만류하는 승무원의 모습. 온라인커뮤니티.


탑승객들은 해당 장면을 촬영했고, 영상은 온·오프라인에서 급속도로 퍼졌다. 난동 영상을 본 네티즌은 A씨를 비판하면서도 승무원의 대처에 아쉬움을 표했다. 승무원들이 A씨를 즉각 물리적으로 제압했어야 했는데, A씨를 상대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다수의 승무원은 1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격투기 선수 출신 승무원이 탑승했더라도 난동 승객을 힘으로 제지하는 것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난동 승객 대처 시 최우선 원칙은 승객의 인권이고, 과잉 제압에 대한 논란 때문에 승객의 신체에 물리적으로 제한을 가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승무원들은 모호한 항공 보안 매뉴얼의 구체화와 실효성 있는 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제압할 때 음료수 권하라고…훈련 의미 없다고 느껴”
게티이미지뱅크.

기내 난동 사건은 잊힐 만하면 한 번씩 발생한다. 2016년 한 중소기업 사장 아들이 기내에서 술을 마시고 승무원 얼굴에 침을 뱉는 등 난동을 부렸다. 당시 같은 비행편에 탔던 팝가수 리처드 막스는 “승무원 대처가 엉터리였다. 이들은 상황을 통제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고, 테이저건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몰랐다”고 비판해 논란이 일었다.

승무원들은 훈련을 받지만 이론과 실제 현장은 너무 다르다고 했다. 한 대형항공사 승무원 근무 8년 차인 B씨는 “승객의 두 손을 결박하는 훈련을 할 때 ‘우선 승객에게 진정하라고 말하고, 음료를 권한다. 승객이 음료를 받고 얌전해지면 뒤에서 손을 묶어라’라는 내용의 매뉴얼이 있다”면서 “과연 ‘이게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지만 할 수밖에 없고, 승무원들이 역할을 나눠서 진행하는 훈련 때는 난동 승객이 거의 제압된다”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또 다른 대형항공사 승무원 근무 5년 차인 C씨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테이저건 사용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훈련 시 전체 승무원 중 몇 명만 테이저건을 쏴본다”면서 “경찰이 테이저건 사용으로 용의자가 다치거나 죽을까 봐 최대한 사용을 자제하는 것처럼 승무원들도 과잉진압에 대해 고민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 난동 승객에게 승무원들이 테이저건을 제대로 쏘기도 어렵고, 행여 승객에게 어떤 문제라도 생기면 책임은 승무원 개인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저가항공사(LCC) 승무원 근무 3년 차인 D씨는 소송 문제를 승무원의 소극적인 대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기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승객이 있어서 촬영했는데, 승객에게 알리지 않고 촬영해 법적 문제가 생긴 적도 있었다”며 “몰카 촬영이 의심되는 승객이나 화장실에서 흡연한 정황이 있는 승객이 있어도 신체적 접촉을 하려고 하면 오히려 인권 침해 등으로 소송을 걸겠다고 협박하기 때문에 승무원 스스로 굉장히 조심스러워진다”고 밝혔다.

“딱 이럴 때 쏘라고 말해줬으면”…‘애매한’ 매뉴얼
게티이미지뱅크.

승무원들은 모호한 매뉴얼이 기내 난동 승객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만든다고 입을 모았다. 매뉴얼에는 구체적인 상황별 지시가 없기 때문에 상황판단에 승무원의 주관적 생각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책임은 승무원 개인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모든 항공사는 국토교통부의 ‘항공운송사업자의 항공기내보안요원 등 운영지침’에 따라 보안 매뉴얼을 만든다. 그중 ‘불법행위 대응 및 처리 절차’ 항목은 승객을 제압 및 구금할 수 있는 조건을 명시하고 있는데 폭행 행위, 기내 안전을 위협하는 협박 행위, 승무원 업무 방해 행위, 음주 후 위해 행위 등 불법행위를 범한 승객이 그 대상이다. 대형항공사와 저가항공사 모두 매뉴얼 내용은 국토부 지침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때 나열된 행위들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롯이 승무원에게 달려 있다.

한 대형항공사 노조 관계자는 “승객을 제압하려면 명백하게 법을 위반해야 하는데, 한 승객이 크게 화를 냈다고 해서 이 분노가 모든 승객의 생명을 위협하는 등 불법적인 행동을 했느냐를 따지기는 쉽지 않다”면서 “업무방해행위 같은 모호한 부분을 일반 승객이 봐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바꾸는 것이 현장에 있는 승무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항공사들이 현장에서 매뉴얼과 관련한 불편을 느끼고 관련 지침 개정에 대한 지속적인 요청이나 제안이 있다면 개정 방향을 충분히 검토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현장에서 특정 문제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면 선제적으로 개정을 한다는 입장이다.

“테이저건 한 발 5만원, 훈련 때 절대 안 쏜다”


전문가들은 형식적 교육에만 머무는 기내 보안 교육을 실효성 있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경철 항공대 항공안전교육원 부원장은 “우리나라는 기내 보안이 승무원 서비스에만 특화돼 있는데 보안 교육이 실효성 있게 바뀌지 않으면 기내 난동 같은 사건은 계속 일어날 것”이라며 “항공사가 비용을 들여 적극적으로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안 훈련은 승무원을 비행 일정에서 뺀 뒤 교육에 참여토록 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만만찮은 비용이 들어간다. 테이저건만 해도 한 발 쏘는 데 비용이 5만원 발생한다. 훈련 때 전체 승무원이 쏴보는 것은 상상할 수 없고 훈련받는 클래스에서 사무장 한 명 정도가 대표로 쏘는 식이다. 실제 쏴본 승무원과 그렇지 않은 승무원의 현장 대처 수준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황 부원장은 “국가민간항공보안 교육 훈련 지침에 따르면 승무원 정기 보안 교육은 최소 연 1회 2시간이다. 2시간 동안 받는 보안 교육은 수준도 떨어지고, 그마저도 실무가 아닌 이론 중심”이라며 법에 명시된 훈련 시간 확대를 주문했다.

승무원들이 기내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면책 특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윤경철 송원대 철도운수경영학과 교수는 “비행기에 타는 승무원 중 사법권이 있는 사람이 없다. 항공사가 자체적으로 승무원에게 면책 특권을 줄 수 있는 조항을 만들고,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도움을 준 승객도 책임을 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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