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 떠돌며 아이 키우는 부부, 현실은 더 심각했다
[김형욱 기자]
▲ 영화 <홈리스> 포스터.? |
ⓒ 그린나래미디어 |
갓난아기 우림을 키우는 어린 부부 한결과 고운, 그들은 집도 없이 찜질방을 떠도는 신세다. 그래도 한결이 배달일을 하고 고운이 틈틈이 알바로 전단지를 돌려 돈을 모아 이사를 가게 되었으니 조금만 버티면 된다. 그런데 그들 앞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든다. 이사할 집이 재개발로 닫혀 있고 집주인은 연락이 되질 않는다. 보증금 사기를 당한 것.
경찰에 신고해도 당장 해결되는 건 없다. 혼이 나가다시피 한 고운은 멍해 있다가 우림이 다치기까지 하니 당장 비싼 병원비를 내야 하는 처지에 몰린다. 당장 오늘 지낼 집이 없는데, 다친 아이와 찜질방을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때 한결이 무작정 따라 오라고 해서 간 집, 평소에 배달을 많이 하고 집안일도 소소하게 도와드려 친하게 지내는 할머니의 집이란다. 할머니가 한 달간 미국에 있는 자식 집으로 가면서 한결한테 집을 맡겼다는 것이었다.
고운은 미심쩍은 가운데 한결의 말에 따른다. 잠시나마 마당까지 있는 집에서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할머니가 돌아오실 때까지 보증금 사기 건을 처리해 보고 다친 우림이를 잘 보살피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한결의 행동거지가 어딘지 어색하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다. 고운한테 극구 절대 2층 할머니 방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한다. 이 집에 뭔가 있는 걸까? 한결과 고운은 겹겹이 쌓인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을까?
독립영화의 산실에서 태어난 <홈리스>
영화 <홈리스>는 적나라하게 드러난 제목 그대로 정해진 주거 없이 떠도는 이들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려 했다. 주인공 한결과 고운은 가출팸에서 만난 것으로 추정되는 바, 가족이라고 할 만한 이들은 없는 것으로 보이고 상당히 어린 나이 그러니까 갓 어른이 되어 우림이 태어난 걸로 보인다. 그야말로 피워 보지도 못하고 져 버린 꽃이랄까. 한결과 고운도 그렇고 우림도 그렇고.
<홈리스>는 한국 독립영화의 산실로 떠오르고 있는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DGC) 제작 작품으로 임승현 감독이 수학한 곳이다. DGC가 제작한 작품의 면면은 자못 화려한데, <해에게서 소년에게> <폭력의 씨앗> <흩어진 밤> <종착역> 등 좋은 독립영화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면면을 보면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DGC다.
한편, <홈리스>는 지난해 50회를 맞았던 네덜란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IFFR)에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초청되었는데 IFFR로 말할 것 같으면 주로 독립적이고 혁신적인 영화들에 초점을 맞춰 초청해 선보이기에 '유럽의 선댄스영화제'로도 불린다. 이밖에도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파리한국영화제 등에서 초청받은 <홈리스>다.
▲ 영화 <홈리스> 스틸 |
ⓒ 그린나래미디어(주) |
영화는 다큐멘터리로 시작한다. 한결과 고운 그리고 우림이 처한 현실을 무심한 듯 비추며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지금 이 순간 기댈 곳 없는 빈곤한 청년들의 집 없는 서러움이 피부에 와닿는 듯하다. 비단 집이 없는 청년이, 아니 국민이 그들뿐만 아닐 텐데 그들은 어린 나이에 피치 못할 연유로 집을 나와 기댈 곳이 없거니와 어리디 어린 아기도 있으니 정녕 사면초가의 형국이다.
사방 어딜 둘러봐도 집이 새롭게 지어지는 공사 현장이 있고 역대 최저의 출산율을 경신하고 있는 와중에 집 없는 어린 부모가 주인공이 영화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아니 지독히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사기를 당해도 아이가 다쳤다쳐도 도와 줄 사람은커녕 해결해 줄 시스템이 없다.
낭떠러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이 약한 가족을 보고 있노라면, 의문-답답-분노-체념의 감정을 지나 '이게 나라냐?'라는 생각까지 가닿는다. 그렇다고 마냥 나라 탓, 사회 탓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니 어디에 이 심정을 얘기해야 하는지 숨이 턱턱 막힐 뿐이다. 영화 속에서 한결과 고운은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며 충분히 세상을 향해 욕을 퍼부을 만한데 그럴 시간도 힘도 없는 것 같다. 그저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바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비단 영화 속 한결과 고운뿐만 아닐 것이다. 현실은 더 심각하다.
▲ 영화 <홈리스> 스틸 |
ⓒ 그린나래미디어(주) |
<홈리스>가 영화로서 빛을 내는 건 중반부 이후다. 마냥 이 시대 청년 세대의 빈곤과 주거 문제만을 전달하려는 게 아니라 독거노인 문제까지 다루며 한 층 더 높은 차원으로 가는 한편, 장르적으로도 초반의 다큐멘터리적인 모양새에서 중반부가 넘어 가면서 공포 스릴러의 면모를 갖춘다. 그러며 청년이나 독거노인이나 사회의 '무관심' 대상인 건 매한가지라는 주제에 도달한다.
매일같이 주구장창 청년의 빈곤이 어쩌고 독거노인의 고독사가 저쩌고 말이 많다. 그들을 향해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사회의 관심을 받기엔 애매하다. 청년은 앞길이 창창하니 열심히 일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고, 독거노인은 집도 있고 주기적으로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생각하기 쉽다. 은근한 사각지대에 있기에 오히려 관심에서 점점 떨어지는 건 인지하지 못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다.
이 영화를 감상하려면 굳게 각오해야 하는 지점들이 있다. 일단, 그 누구도 이 영화를 마음 편히 '감상'하기 힘들 것이다. 감정이 이입되고 누구는 현실까지 이입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 영화를 보면 '답답함'이 밀려올 것이다. 빛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암흑에 주인공들을 던져 놓았는데, 거기엔 편히 잠잘 곳도 없고 맛있게 먹을 음식도 없으며 더럽고 춥고 덥기까지 하니 말이다. 아무리 주제의식을 투철하게 반영했다지만 너무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렇지만 바로 그 지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기도 하다. 각본·연출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히 들어가 있는 작품,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영화로서 지향해야 하는 지점이 이 작품의 기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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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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