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정 "압색은 전광석화, 女죽음엔 무응답"..與 "정쟁 악용"
서울 한복판에서 터진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에 여야가 분주해졌다. 여성 안전과 피해자 보호, 현행법의 허점, 수사기관 및 여성가족부 대응 논란, 젠더 갈등 등 민감한 문제가 얽힌 이번 사건을 두고 민심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각에서 윤석열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정쟁으로 번질 조짐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출근길 문답에서 “스토킹 살인사건 보도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며 “지난해 스토킹 방지법을 제정·시행했지만, 피해자 보호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미국·캐나다) 출장을 떠나기 전 법무부로 하여금 이 제도를 더 보완해 범죄가 발 붙일 수 없게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세에 나섰다.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국가가 또다시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다”며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국가가 피해자의 절박함을 외면하고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최고위 회의에서 “대한민국이 내 생명을 지켜줄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검·경과 법원은 압수수색, 구속수사는 전광석화처럼 해내는데, 왜 한 여성이 죽음의 공포를 수차례 얘기할 때는 응답하지 않았나”라고 비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검찰공화국이고 온 세상에 검찰만 넘쳐나는 것 같은데 그녀(피해자)의 목소리가 왜 이렇게 묵살됐나”라며 “지금 정부는 ‘시행령 통치’를 하면서 있는 법조차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고 위원의 공세에 국민의힘 측은 “비극적인 사건을 정쟁에 악용한다”고 반발했다. 여당 관계자는 “대통령이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정부가 총력 대응에 나선 마당에 왜 ‘검찰 공화국’,‘시행령 통치’ 등을 들먹이며 정치 공세를 펴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번 사건을 정치 이슈와 엮어 정쟁으로 몰아가면 야당도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오전 열린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김현숙 여가부 장관을 상대로 파상 공세를 폈다. 위성곤 민주당 의원은 “심각한 (스토킹) 사안에 대해서는 여가부가 직접 개입해 피해자 구제 등 조치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여가부가 자기 일을 제대로 못 해서 신당역 역무원이 살해당하지 않았나”라고 지적했다.
신당역 사건을 고리로 윤 대통령 공약인 여가부 폐지를 두고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준호 민주당 의원이 “현재 여가부 기능 강화가 굉장히 필요한데, 장관 역할은 폐지에 있나, 기능 강화에 있나”라고 지적하자, 김 장관은 “현재 조직 형태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할 수 없고, 기능 강화와 여가부 개편이 배치되는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신당역 사건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자칫 윤 대통령의 ‘약한 고리’가 부각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윤 대통령에게 비우호적인 여성 관련 사건이고, 여가부 폐지 공약도 현시점에서 공격 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국가가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식의 비판도 정부 입장에선 부담이다.
반면 후속 대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의 강점이 발휘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당장 이날 윤 대통령이 엄정 대응을 지시한 직후 한동훈 장관의 법무부는 스토킹 범죄에 대해선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않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범죄를 말한다.
이날 여야 의원들은 여가위 회의 전 추모 묵념을 하고, 사건 현장과 유족을 방문하는 등 분주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회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정춘숙 민주당 의원안 및 정부안)은 올 4월 여가위에 회부됐지만, 국회 원 구성 지연 등으로 늦어지다가 5달 뒤인 이날에야 상정됐다. 여권 관계자는 “여야의 힘겨루기 속에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입법 공백이 생긴만큼 정쟁보다는 신속한 법안 처리에 나설 때”라고 지적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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