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서 '전기차' 꺼내든 외교차관..韓 외교력 시험대 된 IRA

박현주 2022. 9. 1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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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동 외교부 1차관이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과 잇따라 만나 한국산 전기차에 보조금을 끊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법안이 이미 발효된 뒤라 사실상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대통령을 비롯한 각 급에서 최대한 미국 측을 설득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을 방문 중인 조현동 외교부 1차관, 신범철 국방부 차관이 1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났다. 사진 외교부


조현동 "NSC도 검토 중"


조 차관은 신범철 국방부 차관과 함께 16일(현지시간) 열리는 한·미 외교ㆍ국방(2+2)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이다. 두 차관은 전날 백악관을 찾아 설리번 보좌관에게 IRA 관련 우려를 전달하면서 "신속한 조치를 검토해달라"고 당부했다.

지난달 16일 발효된 IRA는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지역 내에서 최종 조립한 전기차에 대해서만 한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현대자동차·기아 등 한국산 전기차는 보조금 대상에서 배제된 셈이다.

조 차관은 이날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설리번 보좌관은 미 국가안보회의(NSC)도 IRA 사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고, 우리 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해 한ㆍ미 간 협의를 지속하자고 했다"며 "NSC 주도로 미국이 검토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날 면담과 관련한 백악관 성명에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대량살상무기(WMD)와 확장억제 공약 관련 논의 내용만 담겼을 뿐 IRA 관련 언급은 없었다.

조 차관은 이날 셔먼 국무부 부장관과 회담에서도 IRA를 의제에 올렸다. 외교부에 따르면 전날엔 스티브 샤벗 미 하원 외무위원회 아시아·태평양·중앙아시아·비확산 소위원회 간사, 지미 고메스 하원의원(세입위원회 소속)과 만나서도 "한국 기업이 IRA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의회 차원의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최종 조립' 요건 우회로 제안


지난달 말부터 정부 당국자들은 미측 카운터파트를 만날 때마다 IRA 문제를 빠짐 없이 꺼내고 있다. 당장 오는 20~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나는 윤 대통령 역시 IRA 문제 해결을 위한 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박진 외교부 장관은 16일 국회에서 "당장 법안을 고치긴 어렵겠지만, 우리가 면제되거나 조치가 유예될 수 있는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시행령이나 지침 이행 과정에서 가능한 방안을 미국에 제안해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박 장관은 전날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과 통화하고, '한국 사위'로 불리는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와 면담하는 등 관련 행보를 했다.

정부가 미국에 제안한 IRA 우회로는 현대차의 전기차 공장이 조지아주에 들어서는 오는 2025년까지 IRA 적용을 유예하거나 보조금이 지급되는 전기차의 최종 조립(생산) 지역의 범위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 국가로 넓히는 방안 등이다. 전기차 주요 생산국 중 미국과 양자 FTA를 맺고 있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뉴스1


한국만 봐주기도 부담


다만 두 방안 모두 법안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이어서 미국 입장에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카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3일 백악관에서 IRA 입법 기념행사를 열고 "IRA 통과로 미국산 전기차를 사면 7500달러의 보조금이 지급된다"고 홍보까지 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민주당 입장에선 표심 공략을 위한 회심의 카드인 셈이다.

유럽연합(EU), 일본 등 다른 미국의 우방 및 동맹도 IRA로 타격을 받은 가운데 한국에만 특혜를 주는 것도 미국 입장에선 부담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EU, 일본과도 수시로 접촉하며 공조를 모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간 미국에 제시한 해결책은 사실상 한국에게만 면제를 주는 방안 뿐이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미국 측이 "전기차 문제가 있긴 하지만 한국 정도면 배터리와 태양광 등 분야에서 IRA로 이득을 보는 부분이 많다"(설리번 보좌관, 지난달 31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양자 회담)고 적반하장으로 나와도 제대로 대응할 논리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현대차, 삼성 등 한국의 간판 기업들이 미국에 선물 보따리를 안겼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챙기는 게 기본인데 외교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한ㆍ미는 IRA의 보조금 관련 규정을 논의하기 위한 국장급 실무 협의체를 16일부터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날 밤 열리는 화상 회의에는 한국 측에선 산업부ㆍ기획재정부ㆍ외교부 관계자가, 미국 측에선 무역대표부(USTR)ㆍ백악관ㆍ상무부ㆍ재무부ㆍ국무부 관계자 등이 참석한다. 또 민간 기업인 현대차,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등도 참여한다.

한편 16일 양국은 4년 8개월 만에 EDSCG를 열고 확장억제의 신뢰성과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북한이 지난 8일 핵무력 법제화와 선제적 핵공격을 거론한 것에 대한 후속 조치도 논의될 전망이다. 또 한반도 위기 고조 시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 순환배치 또는 전개 등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 공동 성명도 발표할 예정이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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