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인생 혁신
나만 무심히 몰랐던가. 두 손을 사용해야 하는 성냥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라이터가 발명됐고, 구부러지는 빨대는 누워 지내는 사람에게 필요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두 물건은 이제 누구나 사용한다. 어떤 사람의 약점에 주안점을 둔 디자인이나 발명품은 인류 모두에게 보탬이 된다는 사례를 일본 광고인 사와다 도모히로의 책 ‘마이너리티 디자인’에서 읽었다.
사와다의 첫아이는 시각장애인이다. 아들이 3개월 됐을 때 의학적 판명을 받고 사와다는 세상이 끝났다고 느꼈다. 명민한 광고인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는 광고를 더 이상 만들 수 없는 상황에 닥친 것이다. 인생에는 역전의 미학이 있다. 사와다는 예서 말 수 없다는 마음으로 시각장애인 200여명을 만났다. 아이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서다. 사회적 약자가 전해주는 절실한 삶의 목소리에서 빛을 보았다. 소수자의 경험을 기점으로 세계를 더욱 좋은 곳으로 바꾸자는 조금 ‘허풍스러운 각오’를 다졌다. 약점을 받아들이고 사회 속으로 들어가 그것이 강점이 되도록 하자. 이것이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사고방식이라고 사와다는 강조한다. 물품의 시각화라는 좁은 의미를 넘어 삶의 콘셉트, 큰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로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불러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아들의 약점을 새로운 가치로 전환할 수 있을까. 사와다는 수천만명을 향해 쏟았던 창조성을 아들이라는 단 한 사람을 위해 쓰려고 한다. 사회복지의 세계에 눈을 떴다. 그가 쓴 장애인 축구대회의 카피는 “보이지 않아. 그뿐”이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타인과 다채롭게 소통하는 시각장애인의 인생을 요약했다. 아이 인생을 소리 높여 긍정하겠다는 강한 마음으로 쓴 카피였다.
의족을 단 여성들의 패션쇼인 ‘절단 비너스 쇼’를 주최해 세계적 이목을 끌기도 했다. “장애인 보조기구인 의족을 완전히 새롭게 패션 아이템으로 재해석하는 대담함.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가치를 전환시키겠다’는 기개. 저는 여느 때 광고를 만들 듯이 그 과제의 답을 생각했습니다.” 사와다는 아이디어를 내고 콘셉트를 세우고 이미지를 만드는 광고인의 직업 정신이 어떤 세계에서든 통한다고 고백했다. 정기적 프로젝트로 정착한 ‘절단 비너스 쇼’는 비장애인의 편견을 녹이고 아름다움을 재정의하게 만들었다.
“안경이 개발될 때까지 눈이 나쁜 사람은 장애인이었습니다. 오늘날 안경은 개성이지요. 단 한 사람의 필요가 새로운 디자인과 ‘미’를 낳았습니다. 이것은 이른바 사회 공헌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을 향한 첫발입니다. 그 결과 이 세상에 도움을 주면 됩니다”라는 자신감 넘치는 발언은 ‘유루스포츠’를 만들게 된 심정의 발로였다.
일본어로 ‘유루이’는 ‘느슨하게’란 뜻이다. 세상에는 운동을 잘 못하는 사람이 많다. 사와다는 느슨하게, 이기지 못해도 즐거운 유루스포츠를 만들었다. 가령 몸 전체에 튜브처럼 생긴 거대한 범퍼를 장착한 선수들이 치르는 ‘버블 축구’가 한 예다. 선수들은 부딪칠 때마다 통통 튕겨나갔고, 경기장 바닥을 굴러다녔다. 또 비눗물을 손에 바르고 진행하는 핸드볼도 있다. 잘하는 선수도 미끄러지는 공을 잡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몸동작을 할 수밖에 없다. 서로 싸워야 하는 스포츠지만 웃음이 넘쳐난다. 일본에서는 2015년에 세계유루스포츠협회가 만들어졌다. 협회장은 바로 사와다다. 운동 약자를 이 세상에서 없애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까지 110개 경기를 진행하면서 이기면 기쁘고, 져도 즐거운 스포츠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아이의 장애로 얻은 분명한 인식과 나은 세계를 만들겠다는 욕망이 새로운 사업을 만들었다. 나 자신이 사라져도 세계는 지속돼야 하니까.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더 나아진 생태계여야 한다는 희망을 동력으로 삼았다.
사람의 약점은 새로운 가능성이다. “약점은 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점이 지닌 강력한 힘을 인지하는 것이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와다의 목소리에서 승리의 기운을 느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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