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스마트에너지 시대] 친환경 사업과 'K-원전' 수출로 국제 에너지 위기 뚫는다
돌파구 찾는 에너지 공기업들
에너지 위기가 전 세계를 옥죄고 있다. 지난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은 고공 행진 중이다. 지난해 8월 배럴당 69.5달러였던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달엔 96.6달러로 뛰었다. 동북아 LNG(액화천연가스) 수입 시세를 보여주는 가격지표(JKM)는 같은 기간 3배로 뛰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원유·가스·석탄 3대 에너지원의 국내 수입액은 지난달 기준 185억2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1.8% 늘었다.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쓰면서 올겨울엔 가스대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에너지 변수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전력 발전에 필수적인 에너지 수급 부담이 커지면서 국내 에너지 공기업들이 안아 든 숙제도 무거워졌다. 에너지 요금 현실화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해지지만, 물가 인상 압박 속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그래서 이들은 위기를 넘어설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고 나섰다. 에너지 수요 자체를 줄일 수 있는 효율화 작업에 나서는 한편, 미래 먹거리를 위한 연구개발(R&D)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 공급난 속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인 원자력 발전, 친환경적인 신재생에너지 등이 주목받으면서 새로운 기회의 장이 열리기도 한다.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외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전력공사(한전)는 친환경 사업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이달 들어 전력설비에 사용하고 있는 육불화황(SF6)을 분해·무해화하기 위한 실증 설비 구축을 본격화했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에 대응하기 위해 대표적 온실가스인 육불화황 대신 온난화 기여도가 낮은 친환경 가스를 사용하는 전력설비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차세대 블루수소 생산을 위한 금속소재, 국제표준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은 낮은 전기 요금으로 인해 에너지 효율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국 중 33위(2017년 기준)에 머무른다. 이 때문에 한전은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리는 작업에도 집중하고 있다. 전력 생산 시스템을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것만큼 에너지 소비 감소가 온실가스·미세먼지 감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는 에너지 수급 안정화에도 도움이 된다.
8월엔 식품의약품안전처 등과 식품매장 냉장고 문 달기 사업 업무협약을 맺었다. 대형마트·편의점 등에서 냉장식품을 진열, 판매하는 개방형 냉장고에 문을 설치하면 에너지 효율도 올리고 식품 안전성도 확보할 수 있어서다. 지난 4월부터는 에너지 다소비 업종인 주조·정밀가공 등 ‘뿌리기업’을 위한 에너지 효율 향상 지원사업에도 본격 나섰다.
한전은 신시장 개척을 위해 해외에도 눈을 돌렸다. 지난 7월 미국 괌에서 60MW(메가와트)급 망길라오 태양광 사업 준공식을 가졌다. 이날 198MW급 우쿠두 가스복합 화력사업 착공식도 동시에 진행했다. 이 둘은 한전이 미국에서 국제 경쟁 입찰로 수주한 첫 태양광·화력 민자발전사업이다. 이현빈 한전 경영지원부사장은 “2024년 가스복합 화력발전소까지 완공되면 괌 전체 전력설비 용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도 윤석열 정부의 ‘원전 드라이브’를 바탕으로 해외 수출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달 25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수주 계약을 체결한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 건설 사업이 대표적이다.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 로사톰의 자회사인 ASE가 일괄수주한 사업인데, 한수원은 엘다바 원전 80여개 건물과 구조물을 건설하고 기자재를 공급한다. 사업비 규모만 3조원에 달한다.
엘다바 원전 사업 계약은 중동에 이어 잠재력이 큰 아프리카 원전 시장에 진출하게 됐다는 의미를 갖는다. 지난 2009년 UAE 바라카 사업을 수주한 이후 첫 대규모 원전 수출이다. 바라카 사막에서의 안정적인 원전 건설과 운영 노하우를 인정받은 덕분에 추가 수출이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이번 수주는 UAE에서 보여준 한국의 우수한 건설 역량과 사업 관리 능력을 입증받은 중요한 성과”라고 밝혔다.
한수원의 ‘K-원전’ 수출은 앞으로 더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사업자 선정이 임박한 체코 신규 원전 사업에도 이집트 사업 계약이 교두보가 될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의 에너지 자립 필요성이 커지면서 폴란드 등의 원전 사업도 가시화됐다. 이와 함께 SMR(소형 모듈 원전) 등 미래 먹거리도 추가로 발굴한다는 목표다. 향후 혁신형 SMR인 i-SMR 개발 등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세종=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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