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100년 고택서 일주일 살아볼까
‘살아보기’ 여행이 확산하고 있다. 여기저기 떠도는 여행이 아니라 현지인 일상에 스며드는 여행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여행 기간이 길어지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살아보기’ 여행이 대안처럼 떠올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생활관광’이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사업이다. 올해 문체부가 선정한 생활관광 지역 열 곳 중 하나인 전남 해남군을 가봤다. 해남군의 생활관광 프로그램 이름은 ‘땅끝마실’이다. 해남을 상징하는 ‘땅끝’과 가벼운 여행이나 나들이를 뜻하는 ‘마실’을 합친 단어다.
700명 경험한 ‘땅끝마실’의 매력
땅끝마실 숙소는 현재 19개다. 두륜산 북쪽 무선동 한옥마을에 가장 많고, 북평면 동해마을과 땅끝마을 등에도 있다. 하룻밤만 묵을 수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3박 또는 6박이 가능한 곳도 있다. 투숙 기간 중 김치 담그기, 낚시, 트레킹 같은 체험을 즐긴다. 시범 운영을 시작한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약 700명이 이용했다. 지난 1~2월 오미크론 확산이 심해 운영을 멈췄던 두 달을 뺀 수치다. 해남군 정근순 관광마케팅팀장은 “여행객은 농어촌 마을의 참모습을 경험하고 주민은 새로운 소득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삼산면 무선동 한옥마을 ‘또하르네민박’을 찾았다. 객실에 짐을 풀고 주인집 거실에서 차를 마셨다. TV로 해남 여행 유튜브 콘텐트를 보면서 해남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들었다. 시골 민박집에서 이런 ‘서비스’를 받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민박집 주인 노남석(61)씨 차를 타고 두륜산으로 갔다. 또하르네민박의 체험 프로그램은 트레킹이다. 계곡을 따라 대흥사 입구까지 왕복 1시간을 걸었다. 삼나무와 편백, 동백나무를 비롯한 난대수종이 빽빽한 숲은 초록 천국이었다. 숲을 걸으며 노씨가 해남에 반해 정착한 이야기를 들었다. 노씨는 “벚꽃이 필 때는 두륜산 미로파크를 걷는다”며 “계절에 따라 다른 코스를 걷는 재미도 색다르다”고 말했다.
누마루에 앉아 다도 체험
이튿날 아침. “동네 목욕탕이 문 열었으니 많이 이용하라”는 면사무소 방송을 들으며 깼다. 아침 먹을 시간. 큰 쟁반에 치즈고구마구이, 고구마쉐이크, 과일 요구르트, 단호박 찜이 나왔다. 3인분은 돼 보였다. 맛도 맛이었지만, 인심에 놀랐다. 날씨가 화창해 마당 테이블에서 먹었다.
이웃 민박집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체험을 하는지 궁금했다. 또하르네민박 옆집인 ‘해남민박’은 100년 넘은 고택이다. 주인 김장섭(75)씨는 취미인 분재를 체험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동백·치자나무·와송 등을 작은 화분에 심는 체험을 한다. 작은 온실에 동백만 50종을 갖췄다. ‘새금다정자’는 다도 체험으로 명성이 높다. 널찍한 한옥 누마루에 앉아 윤향자(63)씨가 내려준 녹차를 마셨다. 새금다정자는 객실에 침대와 에어컨이 없고 화장실도 객실 밖에 있는 정통 한옥이다. 윤씨는 “손님 대부분이 한옥과 차를 좋아하는 단골”이라고 말했다.
‘해남에다녀왔습니다’는 현재 민박 운영은 쉬고 장 담그기 체험만 진행한다. 이승희(63) 사장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로 고추장과 된장을 담그는 체험은 재미있었고, 미용실을 운영하던 그가 암 투병 후 장 명인으로 거듭난 인생사는 흥미로웠다. 고춧가루와 메주, 천일염과 물만 넣고 빚은 고추장은 체험을 마친 뒤 가져갈 수 있다. 두 달 숙성 후 맛이 어떨지 궁금하다.
여행정보=‘땅끝마실’은 해남군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예약한다. 12월까지 전남·광주 외 지역 방문객은 숙박비를 깎아준다. 땅끝마실 숙소 19개를 포함해 39개 숙소 이용료를 1박 2만~4만원 할인해주고, 2박 이상은 반으로 깎아준다. 땅끝마실 1박 이용료는 10만원 선(2인, 할인전 기준), 체험비는 5000~1만원이다. 땅끝마실 이용객은 고추장 담그기, 도자기 빚기, 고구마빵 만들기 같은 ‘특별 체험프로그램’ 참여도 가능하다.
■ 공예 배우고, 고기 잡고…‘생활관광’ 명소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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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는 2020년 ‘생활관광 활성화 사업’을 시작했다. 첫 해 참가한 7개 지역 중 전남 강진군의 ‘푸소’가 성공 사례로 꼽힌다. 푸소는 농촌 민박과 체험을 결합한 여행 프로그램이다. 26개 농가가 참여한 ‘푸소 일주일 살기’는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문체부 권순우 국내관광진흥과 사무관은 “다른 도시도 푸소처럼 생활관광을 지역 대표 브랜드로 만들도록 돕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올해 9월, 10개 도시가 새로 선정돼 2024년까지 정부 지원을 받는다. 생활관광 형태는 지역마다 제각각이다. 경남 하동, 경북 포항처럼 아직 준비 중인 지역도 있다. 강원도 속초는 ‘상도문돌담마을’에서 2박3일 묵는다. 마을 어른에게 지역 역사를 듣고, 예술가에게 ‘짚풀 공예’를 배운다. 아침 식사는 마을 부녀회에서 만들어준다. 경남 함양에서는 근사한 고택에서 3박4일을 지낸다. 전통주 만들기, 산삼 캐기도 즐긴다. 통영은 우도와 욕지도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선상 낚시, 고구마 캐기 등을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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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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