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이너서클에 한국은 없다..결국 뒤통수 맞은 대미 외교 [김영준이 고발한다]

김영준 2022. 9. 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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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배경은 미국 워싱턴 DC의 의사당. 그래픽=차준홍 기자

미국은 한국 현대사 무대에서 주연 역할을 해왔다. 건국과 발전을 이룬 지난 70여 년 역사의 첫 번째 주역이 우리 국민의 노력과 헌신이라면, 두 번째 주역은 미국의 지원이었다. 현대사 해석을 놓고 진보와 보수가 극명하게 갈리지만 한미 관계의 중요성은 초당적 국민 지지를 얻는다. 보수뿐 아니라 진보 대다수도 미국과 대등하게 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이지,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양국의 관계는 지난 70년간의 대북 군사동맹을 넘어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격상됐다. 대한민국이 외교·안보·군사는 물론 경제·문화·과학 측면에서도 미국에 매우 중요한 동맹국이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미국을 대하는 한국 측 전략이 20세기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아서다. 미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FMSO)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경험 등을 바탕으로 몇 가지 대미 공공외교 전략을 제안하려고 한다.


미국 우선주의가 만든 IRA


첫째는 IRA 제대로 이해하기다. 이 법은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수용해 발전시킨, 중산층을 위한 외교·안보 정책이라는 이해를 갖고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 단기 협상을 통해 당장의 이익을 꾀하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미국인은 국제 문제를 바라보는 전략과 접근이 우리와 전혀 다르다. 우드로 윌슨이 구상하고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구현하고자 한 나라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구축하고 선도하는 국가다. 이런 미국의 눈으로 세계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국인은 왕 없는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을 세워 개인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를 성립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미국이 세계를 악으로부터 구원하고,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지탱해왔다는 메시아적 사명감을 배운다.

지난달 2일 대만 공항에 도착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그의 대만 방문은 중국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상징했다. [AFP=연합뉴스]

악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냉전기에는 소련, 9·11 테러 이후에는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세력, 현재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전체주의 국가들이다. 미국에게 동맹국이란 이러한 악에 함께 맞서 싸우는 동지이자 전우다. 그리고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게 자유주의 국제 질서 속 동맹국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다만 방법론에 있어 미국 진보진영과 민주당은 자기성찰적이고 동맹국을 중시하는 반면, 미국 보수진영과 공화당은 지정학적·경제적 이익을 공개적으로 추구하면서 군사력을 중시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일자리 창출 등 내부 문제에 집중하자는 과거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n First) 정책도 미국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완급 조절이지, 홉스 식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인 중세나 제국주의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었다.


한미 안보·경제 통 큰 협상 필요


이런 미국의 시각을 이해한다면 IRA 협상 창구에 선 우리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의 경제적 이익을 수호해 달라고 호소할 게 아니라 작게는 미국 내 일자리 창출 같은 경제 활성화, 크게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어떤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인지 먼저 제안하면서 추후 큰 틀에서 논의해야 한다. 연대를 확인하면서 동맹국으로써 먼저 기여하겠다고 제안하고, 나중에 다른 걸 돌려받아야 한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의회 통과에 따른 한국산 공산품 수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방미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5일(현지시간) 워싱턴DC 덜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뉴스1]
둘째는 우리 스스로가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21세기 대한민국 국격에 맞는 대미 공공외교 전략을 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초등생은 지역별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방문하고, 교과서로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파시즘으로부터 세계를 구하면서 홀로코스트 같은 재앙을 막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배운다. 이런 자부심은 이스라엘이 다시는 홀로코스트를 겪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저절로 생겨난 게 아니다. 이스라엘은 미국 지도층과 정치인·기업에만 로비하는 게 아니라 미국민 마음속에 이스라엘이 핵심 동맹국으로 자리 잡도록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초등학교 교과서나 지역 박물관 건립은 물론 지자체의 결연, 학생들의 방문 교류, 여기에다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이스라엘 시각을 끊임없이 주입한다.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애정은 이스라엘 측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일본은 또 어떠한가. 미국·유럽에 체류하는 한국인들은 일본인에 우호적 감정을 갖는 경우가 많다. 미국·유럽 사람들이 일본 문화에서 느끼는 매력과 친밀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미국 워싱턴DC 벚꽃나무는 일본 대미 공공 외교의 상징이다. 일본 사사카와 재단 등은 일본을 연구하고 교류하는 학생과 연구원, 교수에게 연구비와 장학금은 물론 생활비·출장비를 아끼지 않는다. 일본에 애정을 갖은 미국 측 연구자들에게 싱크탱크 일자리를 연결해 주고 은퇴할 때까지 돕기도 한다. 현직 정치인과 언론인에 대한 여러 방면의 지원도 있다. 한마디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지난 80여 년간 일본의 대미 공공외교는 국가안보전략이자 경제·무역정책의 핵심이었다. 이스라엘·일본·독일·사우디 아라비아·영국 등 미국과 핵심적 관계를 유지하는 모든 나라는 공화당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자국 이익을 위해 법안에 투표하고, 여론을 조성하고, 싱크탱크를 통해 목소리를 내줄 이들을 확보해 놓았다.
워싱턴DC에 활짝 핀 벚꽂. 1912년 오자키 유키오 도쿄 시장이 워싱턴DC에 벚나무 3000그루를 보냈다. 벚나무들이 미국과 일본의 우호 관계를 상징한다. [중앙포토]


워싱턴 이너서클에 없는 한국


필자는 지난 10여 년간 미국 고위 정부 기관 인사들을 다양한 사교모임에서 만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공개 만찬, 폴 라이언 당시 하원의장 후원 기업가 모임, 캘리포니아 공화당 의원 사교모임 등에 참여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한국 측 인사는 왜 미국 사교계에서 보기가 어렵느냐"였다.

물론 한국 정부도 전보다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주미 한국대사관과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 등은 적은 예산으로 고군분투해왔다. 그러나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고군분투로는 더는 안 된다. IRA법이든 뭐든 앞으로의 대미 공공외교는 일본이 하는 것처럼 국가안보전략과 경제·통상전략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이미 집권한 실세에 줄 서는 노력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앞으로 집권할 핵심 인사에게 미리미리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통령실에 대미 공공외교 전담 인력을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실 중요한 외교·경제·통상 문제는 실무진들이 비공식 채널에서 모든 협의를 마치고, 정부 대표는 서명만 한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특사단을 보내고, 어느 정당이 선거에서 이기는지 결과를 본 후 움직이는 식의 후진국형 외교와는 이제 결별해야 한다.

대미 외교를 강조하면 사대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대착오적이다. 워싱턴은 모든 국가가 국익을 위해 365일 매일 전쟁을 벌이는 전쟁터다.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인, 정부 관료, 언론, 기업 등이 국가 의사 결정에 다양하게 참여한다. 다른 나라와 관련된 핵심 협상 안건은 이미 수년 동안 이런 이해 당사자의 생각과 태도가 반영돼 완성된다는 점에서 이런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대미 외교의 폭을 행정 관료를 넘어 다양한 전문가 그룹으로 확대해 그들을 무대에 올려야 한다. 진보든 보수든 정권과 상관없이 한국 국익을 위해 꼭 임해야 하는 핵심 전략이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워싱턴 이너서클에 한국은 없다. 방탄소년단(BTS)과 '오징어 게임'을 좋아한다고, 그들이 우리의 핵심 국가 이익을 고려해주는 것은 아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외양간을 제대로 지어야 한다.

김영준 국방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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