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비엔날레에서 조우한 두 세계, 정금형&이미래

이경진 2022. 9.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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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참가한 유일한 두 한국 여성 작가.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라는 주제 아래 조우한 정금형과 이미래하는 신세계.

팬데믹으로 약 3년 만에 재개한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흑인 여성 작가인 시몬 리와 소니아 보이스가 황금사자상을 각각 거머쥔 것을 필두로 여성성에 대한 담론이 화두였던 이번 미술전에서 특유의 대담함과 도발성으로 관람자와 평단의 발길을 붙든 두 작가가 있다. 행위예술가 정금형과 설치미술가 이미래. 몸의 변형과 변화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를 슬로건으로 내건 이번 본전시 중 다섯 번째 주제전인 ‘사이보그의 유혹(Seduction of the Cyborg)’의 장에 함께 놓인 두 작가의 작품은 그야말로 유혹적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에 설치된 이미래 작가의 ‘엔드리스 하우스’.

정금형은 일상적 사물을 본래 용도에서 분리해 마치 생명체처럼 대하며 벌이는 독창적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사물에 고유한 의미와 생명을 부여해 왔다. 여성에게 금기시됐던 ‘주체적 섹슈얼리티’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며 파트너 없이 일상의 오브제들과 성적 판타지를 연출하거나, 청소기 흡입구에 마네킹 두상을 부착해 성교 장면을 연출한다. 혹은 로봇청소기에 혀를 내민 마네킹의 머리를 붙여 자신의 몸을 핥고 지나게 하는 식. 정금형은 이 같은 자기애적 퍼포먼스를 모은 싱글 채널 비디오 작품 ‘7가지 방법(2009~2012)’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택하는 사물들은 몸과 관련이 깊다. 의료 · 재활용 인체 모형이나 헬스 기구, 사람의 몸을 본뜬 인형 혹은 몸을 대신해 가사일을 돕는 청소기 등 혼자 알던 ‘사물’의 속뜻은 작가가 직접 벌이는 퍼포먼스를 통해 관람자와 공유된다. 움직일 수 없는 사물을 자신의 몸을 이용해 움직이게 하고 조종하는 작가는 앞에 둔 관객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발적 행위를 벌인다. 그 바람에 보는 이들은 긴장과 당혹감, 은밀하고 야릇한 상상을 넘어 관음증적 욕망을 자극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정금형은 사물의 용도가 바뀌는 것처럼 관객과 시선의 관계가 전복되면서 기존 질서에 의문을 던지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 낸다.

옛 병기창을 개조한 전시관 ‘아르세날레’ 한가운데에 놓인 이번 전시작 ‘토이 프로토타입(Toy Prototype)’은 기계는 과연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할지, 우리가 기계나 전자장치에 갖는 감정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탐구한다. 해체된 마네킹, 전선줄이 복잡하게 얽힌 전동 바퀴 기구, 각종 의료 기구가 가지런히 놓인 테이블은 인간과 기술의 경계를 겸허히 사유하게 만든다. 정금형은 호서대학교 연극영화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예술전문사)을 졸업했다. 원래 춤꾼이었지만 몸의 영역을 확장하는 작업과 함께 무용가 · 퍼포머 · 안무가를 겸한 행위예술가로 활동 폭을 넓혔다. ‘비디오 카메라’(2011) ‘휘트니스 가이드’(2011) ‘심폐소생술연습’(2013) 등이 대표작. 2014년 광주비엔날레와 2015년 뉴 뮤지엄 트리엔날레 등에 참가했고, 2016년에는 에르메스 재단미술상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 전시도 섭렵하며 가장 주목해야 할 한국 미술가 중 한 명이 됐다. 그의 독특한 이력은 작품의 서사적 바탕이 된다.

정금형 작가의 설치작 ‘토이 프로토타입’.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고찰한다.

88년생인 이미래는 호스 · 철사 같은 재료로 꿈틀대는 조형물을 만들어 물을 토해내거나 질척거리는 이미지를 만드는 ‘개념적 키네틱 조각’이라는 특유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2013년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후 이듬해 첫 개인전부터 일찌감치 주목받기 시작했다. 옛 병기창이던 아르세날레의 붉고 낡은 벽을 배경으로 놓인 이번 비엔날레 출품작 ‘엔드리스 하우스(Endless House: Holds and Drips)’ 역시 동물의 내장을 뽑아 휘감아놓은 듯한 형상으로 관람자의 시선을 장악한다. 도자 초벌구이로 만든 내장 같은 형태가 기계장치에 의해 조금씩 움직이고, 핏빛을 연상시키는 붉은 유약이 계속 뿜어 나오거나 흘러 전시 기간 내내 조각을 물들이는 작품이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운 좋게 만난 이 작가는 “조각을 전공해 원래 석고, 나무, 금속 같은 딱딱한 재료를 다루던 중 단단한 재료와 부드러운 재료를 같이 놓고 ‘운동성’을 주면 짓이겨지는 게 흥미로워 더 부드럽고 물컹거리는 재료를 찾다 보니 내장 같은 형태에 이르렀다”면서 “신체에 대한 변형이 심하면 심할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영혼이 담긴 인체의 일부로 여기기보다 ‘물질적 · 조각적인 것으로 인식한다’는 깨달음을 얻어 작품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특히 “구멍과 흐르는 것은 연약한 것이지만 반대로 강력한 측면도 있어서 약함과 강함, 안과 밖이 전복된 것으로서 구현해 선보였다”는 설명은 그가 여성성과 젠더 의식을 다뤄온 기존 작가들과 얼마나 다른지를 드러낸다. 이미래 작가는 2016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년 광주비엔날레, 2019년 리옹비엔날레 등에 참여했고, 일민미술관 · 아트선재센터 등의 기획전을 함께했다. 2017년에 국제갤러리 기획전에 참여했고, 2020년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프랑스 파리 시테, 서울시립미술관 난지창작스튜디오 등의 레지던시를 거치며 도약했고, 2018년 네덜란드의 라익스아카데미에서 수학한 것을 계기로 지금은 암스테르담과 서울을 오가며 활발히 작업하고 있다.

정금형과 이미래는 기계나 부품 같은 비(非)생물을 움직여 생명성을 부여하고, 취약한 존재 혹은 주변부에 놓여 있던 개념들을 끌어모아 새롭고 강력한 비주류의 세계를 창조해 낸다. 두 여성의 신세계에선 구태의연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조상인 〈서울경제〉 미술 전문 기자.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학사, 동 대학원 미술경영 석사 출신으로 15년째 미술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다. 〈살아남은 그림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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