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中 '연표 왜곡' 강경대응? 삼국시대 유물 출품조차 안했다

김정연 2022. 9. 1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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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6일 개막해 오는 10월 9일까지 중국국가박물관 북1전시청에서 전시 중인 ‘동방의 상서로운 금속(東方吉金)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의 입구에 관람객이 지나가고 있다. 신경진 기자


고구려와 발해를 제외한 한국사 연표로 논란이 일고 있는 중국 국가박물관 전시에, 국립중앙박물관이 고구려를 포함한 삼국시대 유물을 아예 보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 논란 시기의 유물을 중국에서 열리는 전시에 출품조차 하지 않은 배경을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국보 포함 청동 유물 14건, 삼국시대만 없다


중국 국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동방의 상서로운 금속(東方吉金):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은 한·중·일 국립박물관장회의 부속행사로, 한·중 수교 30주년 및 중·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7월 26일 개막했다. 이번 주제 '청동'은 올해 전시를 주관하는 중국 국가박물관이 정했고, 각 나라가 전시품을 선정해 출품했다.

한국이 출품한 유물 14건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선정했다. 총 14건(15점)의 유물은 고조선 시기에 해당하는 청동기~초기철기 시대와 원삼국 시대 유물 6건, 고려시대 유물 7건, 조선시대 유물 1건이다. 청동기 시대 동검과 잔무늬 거울, 제의에 쓰이던 방울, 청동 칼에 더해 고려시대 천흥사명 동종(국보)과 조선시대 은입사 청곡사 향완 등 고려·조선 시대 청동 유물도 포함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제의에 쓰인 청동, 중국과 차별화 중점"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고조선실에 전시돼있던 청동기 시대 쌍두령. 청동 방울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물로, 중국 국가박물관 전시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4점 유물 중 하나로 포함됐다. 사진 국립광주박물관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이 한국의 대표 청동 유물로 추린 14건 중 고구려와 발해를 포함한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은 한 건도 없다. 고조선-삼국시대-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역사에서 한 블럭이 통째로 빠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유물은 중국과 일본의 유물과도 비교되기 때문에, 질적으로 우수한 유물을 선정하고자 했다"면서 "청동기 시대 청동유물 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고려시대 불교 공예품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주 호우총 청동그릇은 신라와 고구려 교류관계를 보여주고, '광개토대왕을 기념해 만든 열 번째 그릇' 등 제작 시기와 목적이 또렷이 쓰인 유물이다. 다만 청동 그릇은 중국식 그릇과 형태가 유사한 경우가 많아, 이번 전시에는 중국 유물과 비슷해보이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 제외됐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학예사가 동행하지 않고 전시품을 보내면서, 유물 파손을 우려해 제외한 면도 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그러나 주제인 '청동'이 청동기 시대 유물만이 아닌 청동 재질의 유물을 모두 포함하고, 삼국시대 청동 유물이 국내에 많은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쉽지 않은 설명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보물 '경주 호우총 청동그릇'은 '광개토대왕을 기념해 만든 열번째 그릇'이라는 글자가 바닥에 또렷이 새겨진 채 신라 고분 호우총에서 발견된 유물로, 보존 상태가 좋고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의 교류를 보여주고 있어 의미가 크다.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청동 주조 '뚜껑있는 네 귀 항아리'도 고구려 만주 집안(輯安) 지역 고분에서 많이 발견되는 네 귀(손잡이 역할) 형태를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대부분 토기 식기류를 쓰던 고구려 시대에 청동으로 만든 세발 솥도 귀한 유물로 꼽힌다.

이에 대해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상서로운 동방의 금속'이라는 주제에 맞춰 제의에 사용된 청동기 위주로 골랐고, 중국·일본과 겹치는 스타일이 없도록 차별화에 가장 신경을 썼다"며 "청동 방울은 한국에만 있는 독자적 유물이라 포함됐고, 좋은 삼국시대 청동유물도 여럿 있지만 생활유물이라 전시 맥락에 맞지 않아 제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연표 왜곡 논란이 커지자 국립중앙박물관은 15일 "고구려와 발해가 빠진 한국사 연표가 게재된 데 대해 13일 중국 국가박물관에 즉각적인 시정 요구를 했다"며 "중국 측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즉각적으로 전시를 중단하고 우리 전시품을 조기 철수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고 밝혔다. 주중 한국대사관 측은 중국 국가박물관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결국 중국 국가박물관은 이날 "문제의 연표를 철거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 특정 시기를 제외한 유물을 출품한 것 또한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문화를 국내외에 정확하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전 시대에 걸쳐 좋은 청동 유물이 많은데, 국제적인 전시에 특정 시기 유물을 제외한 채 출품한 것은 아쉬운 지점"이라고 말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국립중앙박물관이 고구려를 포함한 삼국시대·발해 유물을 제외하고 전시에 참가한 건, 중국을 의식해 자발적으로 역사 왜곡을 인정하는 모양새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역사를 널리 알리고 역사 왜곡에 대응해야 할 첨병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자세라고 보기에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국보 포함 14점인데, 학예사는 같이 안갔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천흥사명 동종. 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에 전시돼있다가 이번 전시를 위해 중국으로 보내졌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번 전시에 학예사가 동행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중국의 엄격한 코로나19 방역으로 입국 후 격리 기간이 한 달이나 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전문 인력인 학예사 동행 없이 국보 포함 14점의 유물을 해외로 보낸 건 적절치 못한 처사라는 것이다. 학예사가 파견됐다면, 전시장의 연표 오류에 대해 빠른 대응을 했을 수도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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