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 해제한 日, 33개월만의 한·일 정상회담.."흔쾌히 합의했다"지만 과제는 여전
일본이 33개월 만에 ‘정상회담 버티기 모드’를 해제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오는 20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를 계기로 별도의 양자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4개월 만에 과거사 해법 제시를 요구하며 정상회담을 피해 온 일본의 외교적 스탠스를 돌려놓은 셈이다.
윤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국제사회의 전례 없는 '전환점'을 주제로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 한·미-한·일-미·일 양자회담까지 3국 정상이 연쇄 회담을 통해 상호 공조를 끌어 올리는 일정이 완성됐다. 한·미 정상회담은 지난 5월 서울에서 개최된 이후 약 4개월 만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15일 브리핑에서 “유엔총회에서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해놓고 시간을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독도·과거사·망언에 계속된 '회담 무산'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 회담인 데다 예정 시간도 30분 가량으로 넉넉지 않지만 그간 악화일로였던 한·일 관계를 감안했을 때 양 정상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실제 전임 문재인 정부 당시 한·일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기싸움을 반복하며 갈등을 빚었고, 결국 2019년 12월을 마지막으로 끝내 회담을 갖지 못했다.
지난해 6월엔 영국 콘월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간 별도의 양자회담을 갖기로 실무선에서 잠정 합의한 상황에서 회담 개최가 돌연 무산됐다. 당시 일본은 ‘독도 훈련’으로 불리는 한국군의 동해 영토 수호훈련을 이유로 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이후 지난해 7월엔 도쿄올림픽 계기 한·일 정상회담 역시 무산됐는데, 당시엔 강제징용·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더해 소마 히로히사(相馬弘尙) 전 주한 일본 대사관 총괄공사의 문 대통령 비하 발언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해법 모색중인 韓, 일본 호응이 관건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간 제약으로 현안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하긴 어렵겠지만, 양 정상이 대면해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한·일 관계 개선과 신뢰 회복이라는 방향성을 촉진하는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며 “한국 측이 내부적으로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와 노력을 다하는 상황에서 일본 역시 관계 개선을 위해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번 회담에 대해 “한·일이 서로 이번에 만나는게 좋겠다고 흔쾌히 합의했다”며 “강제징용 등 현안은 한국이 자체적으로 프로세스를 진행중이고, 일본과도 내밀하게 의견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에 (한·일 정상이) 갑자기 (강제징용 협의 진행 상황을) 체크할 필요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는 민관협의회를 통해 표출된 의견을 이미 일본 측에 공유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가 구상중인 해법 역시 일본과의 협의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의미다.
日 전향적 변화 없는 "일관된 입장"
오히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은 지난 3일 ‘한·일 미래대화’ 포럼에서 “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한국 측과 긴밀하게 의사소통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관된 입장”은 주로 일본이 위안부·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강경론을 강조할 때 사용해 온 표현이다.
실제 일본은 이번 정상회담 개최에 호응하면서도 한국 측과의 일정 조율 과정에서 ‘강제징용 문제를 둘러싼 한국 내부의 의견 정리가 가능하겠냐’는 점을 물었다고 한다. 이는 정상회담 개최의 대가로 강제징용 문제의 조속한 해법 마련을 압박하는 메시지로 비칠 수 있는 태도다.
이와 관련 외교 소식통은 “정상회담에 대해 일본 측은 ‘양 정상의 만남은 신뢰 회복의 윤활유가 될 수 있겠다’며 호응해 왔지만,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선 눈에 띄는 태도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다”며 “한국의 강제징용 해법 마련과 정상회담이 관계 개선이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일본 역시 한 발 양보하는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한·일 갈등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에서 한국이 해결책 마련에 착수하며 일본의 요구사항을 충족했고, 이제는 정상회담을 통한 신뢰 회복을 거쳐 일본이 그에 걸맞는 사죄와 반성의 표현으로 문제를 매듭짓는 과제가 남았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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