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당대표

이상환 2022. 9. 1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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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환 기자]

우리나라 정당의 문제점은 정당이 국민의 마음에 그 존재와 가치를 오랜 기간 인정받는 것, '제도화'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같은 정당의 뿌리가 역사 속에 깊게 뻗어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후 짧은 현대 정당사, 그나마 헌정을 유린하는 억압적 통치, 군사정변 등으로 정책 중심의 정상적인 정당 정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비상적 수단에 의한 절대 권력의 통치자 대통령의 권력 장악과 긴 기간에 걸친 권력 유지를 하는 여당과, 이에 대항해 야당은 대권의 권력 쟁취, 대권 경쟁을 위한 특정인의 수단으로 명멸과 이합집산을 반복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적 정치 상황의 보수와 진보, 각각의 지역적·계층적 지지 기반이 형성돼왔다.

오랜 기간 정당의 대표인 총재는 대권을 장악한 집권당인 여당[국무총리 훈령, <당정협의업무 운영규정>, 동 규정의 법적 근거는 없으나 동 규정 제2조(정의) 제2호에 의하면 대통령이 소속한 정당이 '여당']의 경우는 대통령이었다. 윤보선(제4대) 대통령은 국회 간선 대통령으로 헌법에 정당 가입 금지로, 최규하(제10대)·전두환(제11대) 대통령은 비상 상황에서 무소속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 대통령으로 민주당·민주공화당의 총재가 아니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말경 여당의 차기 대선 후보가 결정된 이후, 총재직을 사퇴해 해당 후보에게 당권(총재)을 이양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총재직을 2001년 11월 8일 사퇴했다. 이는 2002년 4월 27일 여당의 차기 대선 후보가 결정되기 전으로 정치 상황에 대한 책임감과 국정에 전념하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선후보는 당 총재가 아닌 상태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당 총재직을 사임하는 문서를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 전달하고 그 처리를 위해 필자는 정무수석을 수행한 바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특수한 상황에 직면한 여당은 대통령의 뜻을 바로 수용하지 않고 대통령의 의사를 번의하기 위한 시도를 했으나 결국 대통령의 의사가 관철됐다. 이것을 계기로 이후 정당의 자율성·민주성 등이 신장됐다. 당·청(대통령) 관계가 주종적 관계인 주례보고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인 주례협의로 바뀌었다.

총재직이 소멸됐고(야당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예외), 당내 선거의 공정성 제고 등을 위하여 당권과 대권의 분리, 대선 후보 및 당 대표의 국민(참여) 경선, 국회의원 및 지방선거 후보자 추천의 다양한 경선 등이 제도화 됐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때 까지는 제1야당 등 주요 야당의 경우는 당총재(대표최고위원)가 대부분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자로 예정된 인사였다. 권력을 창출하는 정당의 대표가 돼 당권을 잡은 후 유리한 입장에서 대선후보 경선을 마치고 본 선거에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여·야 당총재직(대표최고위원·당의장 등)을 역임한 모든 인사가 대통령 후보가 되거나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전술한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당 총재직 등을 역임하지 않았다.

당대표에 도전해 당대표가 되는 인사들의 원래 계획대로 정치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 본인 리더십의 문제로 귀책사유이다. 당원과 국민에게 약속했던 사항, 당의 역량을 제고시키지 못하거나 사욕이 해당 정당 운영의 공정 등을 해치는 것이다. 당 운영의 평가는 상당 부분 선거결과로 나타나며, 당 대표의 사퇴 등을 초래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 그리고 당권 장악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10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이준석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국민의힘 내부 상황 발생의 주요 원인은 윤 대통령의 리더십과 당권 장악에 있다. 정당 정치 경험이 생소한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핵심 기반으로서 여당인 국민의힘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초보 정치인의 '낙점 정치'를 연상케 하는 성급한 행동은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를 겸임하던 권위주의 시절로 회귀하는 것으로 정당 정치의 퇴행을 우려하게 한다.

국민의힘 내부의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살피지 않고, 대통령의 측근 세력임을 내세워서 당대표직, 국무위원 선택, 지역구 예산 확보 등으로 차기 국회의원 선거의 후보자 추천 및 선거 승리 등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려는 정치인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충성의 당내 세력을 형성하려는 것이다. 이미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인 신분으로 선거 관여, 사전선거운동 등의 공직선거법 위반 지적이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에서 보수당의 붕괴와 전면적인 혁신이 요구됐으나 일부 세력의 이탈·복귀 등의 제자리 돌아오기, 정치적 기득권 유지 등으로 보수당은 지지 국민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그 결과가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결과로 나타났다. 이어진 이준석 당대표의 등장과 윤석열 대선후보의 당선은 인지도가 있는 보수 정치인의 퇴조를 알리는 연속된 신호였다.

정치 신인 윤 대통령이 자주하는 말, "정치권에 빚진 것 없다", "헌법 정신", "공정·상식" 등과 "자유"의 반복적 언급은 선진민주국가로의 획기적 이행을 기대했다. 그러나 당선인 이후 지금까지의 언행 불일치, 법치와 민주화에 역행하는 처사로 깊은 우려를 갖게 된다. 대통령의 신념·생각이 구체성을 결여한 추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현실 세계에서 어떠한 의미로,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태, 정책-법률 등으로 나타날지에 대하여 국민과 소통이 되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언제 어떠한 형태로 정리될지 모르는 여당의 상황을 이유로 국회 제1당, 거대 야당의 반복적인 회담 제의를 연거푸 거절하는 것은 국회 제2당, 소수당 소속의 대통령이 정치현실을 무시하는 반정치적 처사이고, 박정희 정부 이후 대통령의 야당 대표(총재) 회담 사례에 어긋나는 실례(失禮)의 행위이다.

상명하복의 문화가 강한 검찰이라는 특수집단에서 검찰총장의 리더십과는 다른 정치 리더십, 국정운영의 책임자로서 대통령의 리더십은 비전 제시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이해관계자 등과의 부단히 협의·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옳으니 그저 하라는대로 당장 하면 된다는 강압적 지시 명령으로는 해결이 어렵지 않은 사안도 결코 손쉽게 제대로 이뤄낼 수 없다.

이러한 대통령의 행태는 대통령(정부)과 여당이 건설적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상생의 길로 가지 않고, 여당이 대통령에 종속되어 정부의 방패와 거수기 역할을 자임하는 공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번 국민의힘의 혼돈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영향을 주며, 다수 국민들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되는 경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상응한 심판이 예상됨으로써 차기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는 일찍이 대통령과 거리를 두거나 대립하는 상황으로 나아가게 된다. 대통령과 측근 세력들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여러차례 목도한 바와 같이 대통령의 여당에 대한 강한 그립은 언제나 그 시한이 한정적이며 주류 세력에 대한 비주류의 반발 등 당내 갈등·분열 등으로 자율적·민주적 단결을 저해했다. 집권당은 항상 자기 도취에 빠져 100년 집권의 야심찬 계획을 세우려하지만 국민은 그것이 소수 권력 핵심세력, 그들만의 그저 몽상에 불과하였음을 현실로써 바로 보여주었다.

역대 정부와 정당사가 주는 반복적 교훈을 반면교사로 정당 정치의 정체와 퇴행을 되풀이하지 않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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