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선수 출신 포수, 1라운드 지명자의 롤모델이 됐다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못한 신고선수가 이제는 1라운드 신인의 롤모델이 됐다.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포수 이지영(36)의 이야기다.
키움 히어로즈는 15일 열린 2023 신인지명회의에서 1라운드 전체 6순위로 원주고 3학년 김건희(18)를 지명했다. 포수인 김건희는 어깨가 강점이다. 마운드에 올라 시속 140㎞대 후반의 빠른 공을 던지기도 했다.
김건희는 지명된 뒤 "이지영 선배를 닮고 싶다. 나이도 많으신데, 힘드신데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그렇게 오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팀에 보탬이 되고, 팬 분들께 우승이라는 것을 꼭 보여드리겠다"고 당찬 각오를 밝혔다.
같은 날 부산 사직구장 롯데 자이언츠전을 앞둔 이지영을 만났다. 그는 "키움에 뽑혀서 그렇게 말한 것 같다"고 했다. 선배에 대한 예우가 아니겠냐는 거다. 이지영은 "누구라도 저를 롤모델로 삼을 것 같진 않다. 지금 주전으로 뛰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라도 말해주면 야구하는 입장에서 고맙다"고 했다. 이지영은 "만나면 죽는다. 나이를 얘기해서"라고 껄껄 웃었다.
이지영은 드래프트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제물포고를 졸업한 그는 경성대 시절 대학리그 최고 포수란 찬사를 받았다. 장원삼, 김기표와 함께 대학 무대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크지 않은 체격(키 1m77㎝) 때문인지 2008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못했다. 신고선수(현 육성선수)로 삼성에 입단했다.
이지영은 "안 됐을 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내가 잘 됐다고 생각한다. 삼성에 연습생으로 들어갔을 때,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다. 신고선수였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고, 군입대 계획까지 짰다"고 했다.
절치부심한 그는 상무 야구단에서 군복무를 마친 뒤, 1군에서 자리를 잡았다. 키움으로 이적한 2019년엔 생애 첫 FA 계약까지 맺었다. 올 시즌에도 주전 포수로 123경기에 출전했다. 이지영은 "주변에서도 힘들지 않냐고 많이 묻는다. 힘들지 않다.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겨서 (체력적으로)힘들진 않다"고 했다. 프로 초년생 때처럼 여전히 경기 전 훈련엔 땀복을 입는 루틴도 여전하다. 이지영은 "아마 은퇴할 때까지 유지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지영에게도 롤모델은 있었다. 당시 삼성 주전포수였던 진갑용 KIA 타이거즈 코치다. 이지영은 "당연히 갑용 선배다. 당시 최고의 포수였고,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웠다. 세리자와 코치님께도 많이 배워서 수비적인 부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는 "나와 다른 점을 눈으로 보면서, 연습과 또다른 걸 배웠다"고 떠올렸다.
이지영에게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하자, 그는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않았던 후배들을 먼저 생각했다. 이지영은 "처음엔 나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고, '야구를 왜 했나'란 생각도 했다. 그걸 이겨내면 좋은 기회가 오더라"고 했다.
실제로 이지영이 그랬다. 드래프트에서 낙방한 뒤 한동안 글러브와 배트를 놓았다. 하지만 끝까지 주저앉진 않았다. 구단 테스트를 보기도 했고, 마침내 삼성과 인연이 닿아 신고선수로 계약했다. 이지영은 "(뽑히지 못한 선수들이)야구를 놓지 말고, 조금 더 열심히 하길 바란다. 신고선수로 성공하는 선수들도 있다.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누구보다 힘든 순간을 겪었던 베테랑 포수의 진심어린 조언이었다.
부산=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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