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野, 감사원도 시행령도 '국회 통제' 폭주..전문가 "위헌적 발상"
169석의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행정부의 영역으로 국회의 권한을 확장하는 법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대통령 소속 독립 기관인 감사원의 감사와 정부 시행령 제·개정 권한을 국회의 통제하에 두겠다는 구상이다. 민주당에선 ‘감사원·시행령 통제법’을 단순히 발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기국회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국회 다수당이 시키는 것만 하라는 발상”이라며 저지하겠다고 맞서고 있어, 향후 정국의 뇌관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 ‘감사원 통제법’ 당론 추진… 최재형 “감사원 죽이기”
15일 여야는 민주당 원내부대표인 신정훈 의원이 전날 발의한 감사원법 개정안을 놓고 충돌했다. 개정안은 ▶공무원의 금품수수 ▶무사안일한 근무태도 ▶정부 교체기에 발생하는 공무원들의 기강해이 등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를 ‘특별감찰’로 규정하고, 국회 상임위의 승인을 받아 개시하도록 했다. ‘정부의 중요 정책결정 및 정책 목적 당부’는 감사원 감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국민의힘은 “감사완박(감사원 독립성 완전 박탈)”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회 다수당이라는 것을 무기로 자신들의 입맛에만 맞는 감사만 진행하라는 소위 ‘감사완박’을 꾀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감사원장 출신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도 “공무원에 대한 특별감찰이라는 감사원의 중요한 기능을 거대 야당의 통제 안에 두려는 감사원 죽이기 법안”이라며 “헌법 파괴적인 폭거를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반면 법안을 발의한 신 의원은 “감사완박이 아니라 감사원복(감사원 원상 복구)”이라고 반박했다. 신 의원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개정안은) 특별감찰이라는 명목 하에 정치개입·정치감찰 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이라며 “감사원의 회계감사나 일반감사는 종전과 동일하게 얼마든지 감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감사원 통제 법안을 당론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15일 중앙일보에 보낸 문자메시지 답변에서 “감사원법 개정안은 당론 절차를 거치진 않았으나, 민주당 원내지도부와 상의해 제출된 법안”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최근 일부 감사원 감사는) 표적 감사가 명백하지 않으냐”며 “조만간 의원총회에서 보고한 뒤 당론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이 대표 발의한 ‘시행령 통제법’(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이나 정부가 만드는 시행령을 국회가 모법(母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수정을 요청하거나 60일간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국민의힘에선 “무소불위의 국회 권력을 휘두르겠다는 다수당의 횡포”라며 반대한다.
‘시행령 통제법’엔 김병기 수석사무부총장, 김승원 법률위원장 등 친(親)이재명계 의원들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해 힘을 실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정기국회에서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이나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같은 시행령 통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며 관련 법 개정 추진을 시사했다.
전문가들 “통제법은 위헌”…이재명 “51% 찬성하면 추진해야”
민주당이 추진 중인 ‘감사원·시행령 통제법’에 대해 전문가들은 “위헌적인 발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상희(헌법학) 건국대 교수는 “감사원도 헌법상 정부의 한 구성기관으로 일차적인 통제권은 대통령이 가지는데, 국회가 업무 절차를 구체적으로 통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행령 역시 국회가 광범위한 위임을 해놓고 의도에 맞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건 앞뒤가 바뀐 얘기”라고 말했다.
장영수(헌법학) 고려대 교수도 “국회가 행정부 내부 감찰에 직접 관여하고 승인을 받으라고 하는 건 그 자체로 권력분립에 반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원하는 법안을 골라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신율(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다수결이라는 게 민주주의 수단일 뿐 가치가 될 수 없는데, 민주당이 이를 혼동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그간 입법 과정에서 이견을 억압하고 밀어붙였던 태도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법무부와 여성가족부를 세종시로 옮기는 특별법을 발의했는데, 이를 두고 국회 입법예고 홈페이지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겨냥한 유배법이냐”는 취지의 반대 의견이 쇄도하기도 했다.
당내에선 “감사원·시행령 통제법을 발의하더라도 갈등만 커질 뿐 실제 통과가 불가능할 것”이란 회의론도 적지 않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두 법이 심사될 법사위·운영위 모두 국민의힘이 위원장이어서 상정하지 않으면 논의할 방법조차 없다”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의 의원들 사이에선 “결국 입법 강행을 시도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안 되더라도 밀어붙여야 감사원의 표적 감사와 윤석열 정부의 불법 시행령 정치를 쟁점으로 만들 수 있다”(민주당 수도권 의원)는 이유에서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 원내지도부에 했다는 “야당은 51%라도 찬성하면 적극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는 발언 역시 향후 민주당의 입법 폭주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복수의 참석자에 따르면, 이 대표는 지난 13일 원내지도부와 저녁식사 자리에서 민생입법 과제를 언급하며 “100% 국민이 만족할 만한 정책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51%라도 찬성하는 일을 하면 우리는 성공한 것이고, 60%가 찬성하면 더 좋다”며 “적극적인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숫적 우세를 활용한 입법 폭주' 가능성을 열어놓은 발언이라는 지적에 이 대표 측 관계자는 “평소 이 대표는 때로 손해가 있더라도 필요하면 주어진 권한을 과감하게 행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오현석·김준영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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