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은 어떻게 만나는가
[류제성(변호사)]
▲ 2019년 9월 17일 오후 파주시 한 돼지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해 농장 전체 돼지를 살처분 하고 있다. |
ⓒ 이희훈 |
드물게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면서 묵직한 지적 충격을 주는 책을 만날 때가 있다.
내게는 수나우라 테일러가 쓴 <짐을 끄는 짐승들>이 그런 책이다. 선천성 관절굽음증을 가지고 태어난 작가는 장애운동가, 동물운동가로 활동하며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캠프스에서 생태 과학·정책·관리 분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책의 부제는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이다. 테일러는 서두에서 '동물을 둘러싼 억압과 장애를 둘러싼 억압이 서로 얽혀 있다면 해방의 길 역시 그렇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이 시리즈를 통해 동물권에 대한 책과 장애학에 대한 책을 소개했지만, 동물 억압/해방과 장애 억압/해방이 서로 연결된다는 점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수많은 생명을 끔찍하게 죽이면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살처분 노동자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살처분이 십년 넘게 반복됐어도, 공장식 축산을 비롯해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제도 전반에 대한 논의로 확산되지 못한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6월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위해 ‘제 29차 출근길 지하철탑니다’ 탑승 시위를 하고 있다. |
ⓒ 이희훈 |
동물과 장애인을 억압하는 비장애중심주의
이성, 자율성, 언어, 공감, 협력, 도구의 사용 등 인간이 비인간 동물과 자신들을 구별 짓고 동물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는 이유는 많다. 그러나 이런 기준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연구결과가 쌓일수록 동물이 생각하고 느끼고 의사소통하는 방식에 대한 인간의 지식에는 많은 오류가 있음이 드러나고 있고 지금도 여전히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공정하지도 않다. 우리는 인간이 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기준으로 인간과 동물을 위계 짓는 인간중심주의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동물이 인간보다 월등하거나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동물들이 인간과 유사한 능력을 보여주면 다시 그 기준을 높이고 바꿔가면서 인간의 우월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처럼 특정한 능력이나 역량을 기준으로 인간을 정의하는 인간중심주의는 비장애중심주의와 직접 연결된다. 비장애중심주의는 장애인이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능력과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무능하고 취약하며 의존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취급한다. 동물들이 폄하되고 학대당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같은 이유이다.
비장애중심주의는 동물의 의존, 취약성, 부족한 지적 역량을 근거로 공장식 축산과 동물 실험처럼 동물의 고통을 영구적으로 지속시키는 가치와 제도들을 조장한다. 그리고 "비장애중심주의는 비인간 동물과 장애인의 삶과 경험 모두를 덜 가치 있고 폐기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며, 이는 상이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억압들로 이어진다."
비장애중심주의를 내재한 동물권 담론
이처럼 동물에 대한 억압과 장애에 대한 억압이 얽혀 있다면, 동물해방 운동은 장애 운동과 서로 쉽게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거의 항상 대립해 왔다. 비장애중심주의가 동물 권리 담론에 깊이 스며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 더 지독한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동물해방의 철학자 피터 싱어가 있다. 그는 비인간 동물에게도 고통과 쾌락을 느끼는 능력(쾌고감수능력)이 있으므로 우리가 동물들의 이해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공리주의자인 그는 동물을 죽이는 것이 항상 나쁘다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는 추론 역량, 자기의식과 자율성,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 등 인지적 능력을 갖지 못한 비인격적 존재를 고통 없이 죽일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초래되는 행복이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초래되는 불행을 능가한다면, 비인격적 존재를 죽이는 것은 인격적 존재를 죽이는 것만큼 나쁘지 않다고 한다.
이런 결론은 위와 같은 조건에서라면 중증 지적장애인처럼 싱어가 언급한 능력들을 갖지 못한, 비인격체라 할 특정한 인간들을 죽이는 것이 인격체를 죽이는 것보다 덜 나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는 쾌고감수능력에서 출발했지만 완전한 인격을 가진 삶이 비인격적 삶보다 가치 있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이성을 최고의 판단기준으로 올려놓았다. 그에 따라 그가 말한 특정 역량을 갖지 못한 동물들과 지적장애인들은 덜 가치 있는 존재로 판정되고 범주화된다.
싱어가 인격을 위한 선결조건으로 믿는 역량들은 비장애중심주의적이다. 게다가 이성과 관련된 일부 능력에 특권을 부여해 능력 사이의 위계뿐 아니라 종 사이의 위계도 강화한다는 점에서 종차별주의적이기도 하다. 종차별주의를 비판한 싱어의 자가당착이다.
▲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 - 동물해방과 장애해방> |
ⓒ 오월의봄 |
동물윤리의 불구화와 주의 기울이기
테일러는 장애학과 장애운동이 장애를 불구화함으로써 장애에 창조적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자립, 정상, 의료화의 패러다임을 문제 삼았듯이, 동물에 대한 우리의 사고 방식에 장애 정치학을 적용해 동물윤리를 불구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단순히 개인적인 건강, 체형, 구매력을 강조하는 식생활이나 생활양식이 아닌, "먹고 입고 쓰는 것을 통해 비장애중심주의에 저항하는 체화된 실천이자, 동물을 위한 정의가 장애인을 위한 정의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 정치적인 입장"인 비거니즘을 옹호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동물과 인간이 상호의존의 관계 안에서 서로 얽혀 있음을 전제하면서, 동물들과 더 정의로운 관계를 창조하는 중요한 요소로 주의 기울이기 (paying attention)를 지적하는 페미니즘적 돌봄 윤리에 주목한다.
타자의 필요, 이해관계, 욕망, 취약성, 희망, 관점을 타자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일, 개인의 고유한 소리와 몸짓에 주목하는 일인 주의 기울이기는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에 관한 논의를 진전시키는 결정적 한걸음이 된다.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애인은 동물이 아니다'라는 주장과 '인간도 동물이다'라는 주장은 이렇게 연결될 수 있다. 다만 테일러는 쉽고 당위론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치열하게 질문하고 논증하면서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한다.
읽는 동안 머리가 아프다. 자연, 정상, 표준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 허물어지는 경험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테일러의 교차적 사유를 통해 동물과 장애뿐 아니라 인종, 젠더, 계급, 난민, 민족성 등 여러 다양한 사회적 억압과 해방을 연결하고 연대를 구상할 수 있는 새로운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독서의 수고로움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