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 890억대 세금소송 일부 파기환송.. "부당무신고가산세 다시 판단해야"

최석진 2022. 9. 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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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억여원의 부당무신고가산세 명의수탁자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한 주식과 관련해 세무당국이 2013~2015년 부과한 890억원대 세금 중 국세기본법 제47조 2항에 따라 부과된 부당무신고가산세 부분을 다시 따져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부당무신고가산세는 납세의무자가 과세표준 또는 세액 계산의 기초가 되는 사실을 은폐하거나 가장한 것에 기초해 국세의 과세표준 또는 세액 신고의무를 위반했을 때 가산되는 세금이다. 앞서 2심 재판부는 명의를 빌린 조 명예회장을 기준으로 이 같은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결론 내렸는데, 명의신탁자인 조 명예회장이 아니라 납세의무자인 명의수탁자들을 기준으로 '부정행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앞서 2심 재판부는 조 명예회장에게 부과된 증여세 및 부당무신고가산세, 종합소득세, 양도세 등 총 897억여원의 세금 중 514억여원에 대한 세무당국의 과세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하며 32억여원의 부당무신고가산세를 정당하다고 판단했는데, 파기환송심에서 조 명예회장이 납부해야 할 세액이 많으면 32억여원까지 더 줄어들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대법원 제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조 명예회장이 강남세무서장 등 48명의 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증여세 연대납세의무자 지정·통지처분 등 취소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명의신탁재산의 증여의제 규정에 따른 증여세의 납세의무자는 명의수탁자이고, 명의신탁자는 명의수탁자와 연대해 해당 증여세를 납부할 연대납세의무를 부담할 뿐이므로, 명의신탁재산의 증여의제 규정에 따른 증여세의 과세가액 및 과세표준을 신고할 의무는 납세의무자인 명의수탁자에게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부당무신고가산세는 '납세의무자'가 부정행위로 법정신고기한까지 세법에 따른 국세의 과세표준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에 부과되기 때문에 명의수탁자에게 명의신탁재산의 증여의제 규정에 따른 증여세에 관해 부당무신고가산세를 부과하거나 명의신탁자에게 이에 대한 연대납세의무를 부담시키기 위해서는 그 무신고와 관련해 본래의 증여세 납세의무자인 명의수탁자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재판부는 "원심이 명의수탁자가 증여세 무신고와 관련해 부정행위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심리하지 않은 채 명의신탁자인 원고의 행위만을 이유로 부당무신고가산세를 부과한 처분을 적법하다고 판단한 것은 위법하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앞서 강남세무서 등은 조 명예회장이 전·현직 임직원 명의로 효성 등 주식을 보유하며 배당을 받거나 주식을 매도해 시세차익을 봤다며 주식이 명의신탁된 경우 명의자에게 증여된 것으로 간주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규정에 따라 2013~2015년 조 명예회장에게 연대납세의무자 지정 통보를 하고 증여세와 부당무신고가산세, 종합소득세, 양도소득세 등 897억여원의 세금을 부과하는 처분을 내렸다.

재판에서는 크게 두 가지가 쟁점이 됐다.

첫 번째는 타인 명의로 보유하고 있는 명의신탁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새로운 주식을 산 뒤 새로 매입한 주식도 동일한 명의수탁자 명의로 명의개서를 하기 전에 이미 갖고 있던 명의신탁 주식을 팔아서 생긴 매도대금으로 대출금을 변제했을 때, 명의신탁재산의 증여의제 규정의 중복적용을 제한하는 기존 판례의 법리가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의2(명의신탁재산의 증여 의제) 1항은 명의개서가 필요한 주식처럼 권리 이전이나 행사에 일정한 공시방법이 필요한 재산(토지와 건물 제외)의 실제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를 때 등기 등을 한 날(명의개서의 경우 소유권취득일이 속한 해의 다음 해 말일의 다음 날)에 그 재산의 가액을 실제소유자가 명의자에게 증여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리고 대법원은 "최초로 증여의제 대상이 돼 과세됐거나 과세될 수 있는 명의신탁 주식의 매도대금으로 취득해 다시 동일인 명의로 명의개서된 주식은 그것이 최초의 명의신탁 주식과 시기상 또는 성질상 단절돼 별개의 새로운 명의신탁 주식으로 인정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시 증여의제 규정이 적용돼 증여세가 과세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즉 A가 B의 명의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을 때에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A가 B에게 명의개서를 했을 당시의 주식 평가액 상당을 증여한 것으로 의제하고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A가 B에게 명의신탁한 주식을 처분한 뒤 그 매도대금으로 다시 새로운 주식을 취득해 B에게 명의개서를 해줬을 때 이를 다시 증여로 의제해 과세하는 것은 중복과세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이번 사안에서는 이 같은 대법원 판례의 법리가 A가 B의 명의로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새로운 주식을 취득한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가 문제됐다.

두 번째 쟁점은 명의수탁자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평가할 수 없는 경우에도 명의신탁자의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명의신탁 증여의제로 인한 증여세에 대해 부당무신고가산세를 부과하거나 명의신탁자에게 이에 대한 연대납세의무를 부담시킬 수 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이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한 것은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이 달랐기 때문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조 명예회장에게 부과된 897억여원의 세금 중 증여세 및 부당무신고가산세 642억여원, 종합소득세 25억여원, 양도소득세 191억여원 등 약 858억여원을 정당한 과세 처분으로 인정했다. 다만 취소돼야할 과세 처분은 40억원 정도였지만 구체적인 세금액수는 과세원본을 어떻게 계산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과세액수 전부를 취소했다.

2심에서 취소 대상 과세 처분은 크게 늘었다.

이유는 첫 번째 쟁점과 관련 기존 명의신탁 주식의 매도대금으로 새로운 주식을 매입해 명의개서했을 때 중복과세 방지를 위해 증여의제 조항을 적용할 수 없는 것처럼, 기존 명의신탁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새로운 주식을 매입한 경우에도, 명의개시가 이뤄지기 전에 기존 명의신탁 주실을 팔아 대출금을 갚았다면 역시 증여의제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는 "명의신탁자가 기존 명의신탁 주식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으로 새로운 주식을 취득해 동일인 명의로 명의개서를 했나, 그 명의개서가 이뤄지기 전에 기존 명의신탁 주식을 매도해 그 매도대금으로 해당 대출금을 변제했다면, 기존 명의신탁 주식의 매도대금으로 새로운 주식을 취득해 다시 동일인 명의로 명의개서한 경우와 그 실질이 다르지 않으므로, 이러한 경우에도 앞서 본 법리(증여의제 조항 배제)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결국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정당하다고 본 증여세 및 부당무신고가산세 642억여원 중 167억여원만 정당한 과세라고 결론 내렸다. 1심과 비교해 조 명예회장이 납부해야 할 세금이 475억여원 줄어든 셈이다. 그리고 종합소득세와 양도소득세에 대해서는 1심의 결론을 유지했다.

대법원 역시 이 점에 대해서는 2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명의신탁자가 구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아 취득한 신 주식과 관련해 그 구 주식을 처분해 구 주식의 담보대출금을 변제한 것이 신 주식에 대한 명의수탁자(제3자)의 명의개서가 이뤄지기 전이라면, 구 주식과 신 주식 사이에 양자가 단절된 별개의 명의신탁관계가 성립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구 주식을 처분하고 그 처분대금으로 신 주식을 취득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 주식에 대해 다시 구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의2 1항을 적용해 증여세를 과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대법원은 부당무신고가산세와 관련된 2심 재판부의 판단은 유지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증여의제로 인한 증여세에 관해 명의수탁자에 대한 부당무신고가산세를 부과하거나 이에 관해 명의신탁자에 대한 연대납세의무를 부담시키기 위해서는, 그 무신고와 관련해 본래의 증여세 납세의무자인 명의수탁자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와 달리 명의수탁자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를 심리하지 않은 채 명의신탁자의 행위만을 이유로 부당무신고가산세 부과처분이 적법하다고 본 원심판결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심 법원이 32억여원을 정당하다고 본 부당무신고가산세 부분을 다시 판단하라고 했지만 반드시 그 금액 전부에 대한 과세 처분이 취소된다고 볼 수는 없다. 파기환송심에서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조 명예회장에게 명의를 빌려준 직원들이 과세표준 또는 세액 계산의 기초가 되는 사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은폐하거나 가장하는 등 '부정행위'를 했는지를 따져본 뒤에 그 결과에 따라 32억여원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과세 처분을 취소하거나 32억여원의 과세 처분이 정당하다는 판단을 하게 될 전망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기존 명의신탁 주식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으로 새로운 주식을 매수한 사안에서 기존 주식을 처분해 대출금을 변제한 시점이 새로운 주식의 명의개서 전일 경우 기존 주식의 처분 대금으로 새로운 주식을 취득했을 때처럼 증여의제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시한 첫 판결이다.

또 명의신탁 증여의제에 따른 증여세를 무신고한 행위에 대해 명의수탁자에게 부당무신고가산세를 부과하거나 명의신탁자에게 이에 대한 연대납세의무를 부담시키기 위해서는, 명의신탁자를 기준으로 부정행위 여부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명의수탁자를 기준으로 부정행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사례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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