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력 부족, 금융문맹을 한방에 해결하는 방법 #돈쓸신잡 63
최근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이슈가 있었다. 인기 웹툰 작가가 팬 사인회를 앞두고 있었는데, 예약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사인회 주최 측은 사과 공지글을 올렸다. 그 글에는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러자 일부 네티즌은 "심심한 사과? 장난치나.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라며 비판했다. '심심'이라는 표현을 '지루하다'라는 의미로 착각한 것이다. 어휘력 부족에 따른 '웃픈'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심심한 사과' 논란이 빠르게 퍼졌다. 실질적 문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금일'을 금요일로 착각하고 '고지식하다'를 '高지식(지식이 많음)'으로 오해하거나 '사흘'을 4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실제로 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문해력(글을 읽고 이해하는 역량)은 웃고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적 문맹률은 선진국 중 꼴찌 수준이다. 한글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완성된 문장을 읽고 정확한 맥락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해력 부족이 종종 반지성주의와 결합된다는 점이다. 어휘력 부족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배우는 존재기 때문이다. 모르는 게 있으면 그걸 배우고 넘어가면 된다. 하지만 본인이 모르는 것을 오히려 무기로 삼으며 "내가 왜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냐" "쉬운 말을 두고 왜 어려운 말을 쓰냐"라며 화를 내는 순간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 결과가 어떤가. 수십 년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은퇴 이후 생활고에 허덕이는 노인 인구의 비중은 OECD 국가 중 압도적 1등이다. 자본소득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노동소득에만 몰두한 결과다. 이렇게 금융 문맹은 우리 삶을 직접적으로 공격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건 질병에 걸린 상태와 같다. 어휘력 부족과 금융 문맹 문제를 동시에 개선할 방법이 있다. 바로 종이신문 읽기다.
또한 포털의 목적은 고객의 시간을 최대한 빼앗는 것이다. 그래서 포털은 내가 평소에 많이 읽은 기사를 분석해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뉴스를 개인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AI 큐레이션 시스템까지 갖췄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개인 입맛에 맞는 뉴스만을 선택하는 방식에 젖어 든다. 알고리즘의 힘은 무시무시하다.
그런데 신문은 어떤가. 신문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관심 없는 뉴스들까지 골고루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신문에는 경제, 사회, 국제, 정치, 문화, 스포츠, 칼럼 등 다양한 영역의 기사가 적재적소에 배치돼 있다. 뉴스(News)의 뜻은 '새로운 것들'이라는 뜻이다. 뉴스가 중요한 이유는 내가 잘 몰랐던 새로운 것들을 접하며 인식의 문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우리 주변에 점처럼 널려있는 정보를 선으로 이은 후에 종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이 힘을 기르는 가장 효율성 좋은 도구가 바로 신문이다. 경제, 금융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다 보면 어휘력 부족 문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개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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