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 무의미한 가짜 노동을 무찌르자

2022. 9. 1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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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할까? 누구나 가슴에 묻어두고 사는 질문이다. 사람들은 죽도록 일하는데 뿌듯함은 별로 없고, 열정을 부릴수록 공허에 시달린다. 일이 움켜쥔 모래 같은 기분, 노동이 삶의 심장을 갉아 먹는 듯한 불안,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 인생을 탕진 중이라는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드물다. 니체는 말했다.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가 지금껏 인류에게 내려져 있었던 저주이다.”

의미가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기꺼이 견딜 수 있다. 반대로, 지루하고 무의미한 일은 일분일초도 참기 괴롭다. 마음에 무의미가 쌓이면 인간은 병든다. 자존감이 무너지고 영혼을 빼앗긴 듯한 감정은 우울의 나락을 불러들인다. 일이 우리 삶의 근본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은 단지 돈벌이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를 증명하고 자아의 독립성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일이 의미를 잃으면 모든 것을 상실한다.

덴마크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와 철학자 아네르스 포그 옌센의 『가짜 노동』(자음과모음)에 따르면, 현대사회의 노동은 대부분 ‘의미 없는 신기루’에 가깝다. 기쁨과 보람을 남기지 못하는 헛짓들이 우리 일터에는 너무나 많다. 시행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놀리면 안 되기에 억지로 떠맡기는 기획들, 모두 아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회의들, 남한테 의미를 설명할 수 없고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업무들이 넘쳐난다.

덴마크 의사들은 보건 시스템에 기록을 남기려고 환자마다 142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일일이 설문을 채우다 보면 환자 치료 시간은 턱없이 모자란다. 교사들은 교실에서 아이들 교육에 얼마나 신경 썼느냐보다는 교육청 보고서를 얼마나 성실히 작성했느냐에 따라 평가받는다. 아무도 안 보는 자료를 만드느라 며칠 날밤을 새우는 등 다른 모든 분야에도 비슷한 일은 흔하다.

이들은 아무리 많이 일해도, 사실 전혀 일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제발, 일 좀 하게 내버려 두라고!” 하는 호소가 여기저기 터져 나온다. 저자들은 이러한 텅 빈 일들을 ‘가짜 노동’이라고 부른다. 가짜 노동은 한 사회에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할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삶을 파국적이고 존재론적인 낭비로 몰아간다. 그 결과는 허무, 즉 거대한 무의미의 춤이다.

1930년대에 현재와 같은 미래를 이야기한 사람은 드물었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미래에는 일과 사생활이 엄격히 분리되고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사흘, 오전 10시에 도시로 몰려왔다 오후 4시면 빠져나가 정원을 돌보고 삶을 즐기며 자연과 교감하리라고 내다봤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2030년까지 평균 노동 시간은 주 15시간이 되리라고 예측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하루 노동 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는 안을 제시하면서 더 멋진 삶과 더 고상한 문화를 즐기고 창조하는 삶을 예찬했다.

이들의 미래는 우리의 현재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소진 증후군’에 시달릴 정도로 많이 일하면서 산다. 오랜 시간 일터에서 보내면서 무의미해 보이는 일을 하는 것도 모자라 집에까지 가져와서 하는 경우는 너무나 잦다. 가짜 노동 탓이다.

가짜 노동은 자본주의와 산업 사회가 결합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막스 베버에 따르면, 자본가들은 여가를 무가치하게 여기고 게으름을 악의 근원으로 보았다. 그들은 노동을 시간 단위로 측정해서 임금을 지급했고, 이에 따라 업무 성과보다 노동 시간이 일터의 중심 원리로 자리 잡았다. 이러면 어떻게든 시간을 채우면서 일하는 이들이 점차 늘게 마련이다.

가령, 남보다 능력이 좋아서 주어진 일을 업무 시간 중간에 끝내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지랖을 부리면서 다른 일을 찾아서 하거나 윗사람에게 업무가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동 시간만큼 대가를 주기에 일이 끝나면 임금도, 사람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파킨슨 법칙’이 일터를 지배하는 이유다. 영국 사학자 시릴 파킨슨에 따르면, “일은 완수에 허용된 시간을 채우도록 늘어난다.” 어떤 일에 주어진 시간이 10시간이라면, 사람들은 대부분 10시간을 모두 사용한다. 그러나 똑같은 일에 25시간이 주어지면 놀랍게도 그 일은 25시간이 걸린다.

사람들은 절대 일을 미리 하지 않는다. 아무도 잉여 인력이 되고 싶지 않기에 근무시간을 채울 때까지 최대한 천천히 일한다. 일이 없어도 책상에 서류를 쌓아두고 일하는 척하거나 동료와 잡담을 주고받거나 회의 시간을 늘어뜨린다. ‘나는 잉여가 아니다’라는 기분을 지키고 자존감을 유지하려고 불필요한 서류 정리를 시작한다. 가짜 노동이다.

가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일한다고 느끼지 못하면서도 계속 바빠진다. 이들은 자기 삶의 보람을 스스로 무너뜨리며, 상처받은 도덕성과 자존감으로 괴로워한다. 가짜 노동은 사람들을 정신적?육체적으로 병들게 하고, 조직을 일 아닌 일을 생산하는 관료제의 노예로 만든다. ‘가짜 노동’에서 벗어나려면 일을 충분히 줄이고 여가를 보장해야 한다.

덴마크의 데이터 회사 IIH 노르딕은 ‘파킨슨 법칙’을 역으로 적용했다. 업무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면 일도 제한된 시간 안에 끝난다는 사실에 주목해서 주 4일제 노동을 도입한 후, 이메일도 전화도 받지 않고 집중해서 빨리 일을 처리하고 알아서 쉬도록 하는 등 자율성을 높였다. 놀랍게도, 제도 도입 이후 회사 매출은 급증하고 영업 이익은 늘었으며, 직원 병가는 50% 줄고, 스트레스 지수는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넷플릭스는 현장 인사담당자를 대부분 없앴다. 처음부터 좋은 직원을 채용한다면, 97%의 직원은 별도 관리 인력을 없이도 알아서 제대로 일한다.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는 3% 직원 때문에 복잡한 인사 관리 규정을 시행하면서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는 셈이다.

사람들은 “유용하고 의미 있고 진짜인 일”을 하도록 보장하면 저절로 그 일을 한다. 불필요한 관리나 통제는 필요 없다. 불필요한 보고서를 줄이고, 회의 시간을 짧게 하며, 눈치 보지 않고 할 일을 마쳤으면 퇴근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자기를 향상하는 공부를 하는 등 개인 노력이 더해지면 더욱더 좋다. 오늘날 현대인에게 ‘가짜 노동’을 무찌르고 일의 보람과 인생의 의미를 되찾는 일보다 중요한 건 없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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