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고 꿈 막는 엄마.. 폭발한 딸의 선택

김상목 2022. 9. 1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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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둠둠> 마이너리티×마이너리티 자립 선언, 전자음악에 실려..

[김상목 기자]

 영화 <둠둠> 포스터 이미지
ⓒ 영화사 진진
 
1_잠들어 있던 음악 혼과 모성애가 동시에 발현되다
 

이나는 콜센터 계약직 상담원으로 일하며 혼자된 어머니의 집에서 모녀가 함께 사는 중이다. 하지만 어머니 신애는 딸에게 유독 집착하며 근무시간에 수시로 장황한 문자를 보내거나 거듭 전화통화로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한다. 그리고 주일이 되면 자신이 집사로 있는 교회에 한사코 이나를 데려가곤 한다. 불안장애가 있는지 뜬금없이 천재지변을 대비한다며 지하실에 벙커를 설치하려 공사를 벌이다 이웃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머니 때문에 이나는 집과 직장, 교회를 오가며 별 의욕 없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이나는 원래 테크노 일렉트로니카 계열 음악활동에 심취해 프로를 꿈꾸던 촉망받는 신예 뮤지션이었다. 활동을 중단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선수'들 사이에선 여전히 회자될 정도다. 하지만 해외로 떠난 전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미혼모가 된 처지다. 태어난 아이는 위탁모에 맡겨둔 상황에 음악활동은 그만둔 지 몇 해가 훌쩍 지났다. 늘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던 이나는 어느 날 퇴근길에 우연히 발견한 거리 디제이 공연에 홀린 것처럼 다가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옛 음악동료이자 지금 잘 나가는 디제이가 된 민기를 만난다. 그 만남은 잠들어 있던 이나의 음악을 향한 욕망을 깨운다. 다시 음악을 하고픈 욕구가 불 번지듯 그녀를 잠식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집착과 불안상태는 점점 심해져 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를 맡겨놓았던 위탁모는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않고 판단을 내려야 할 때라며 이나에게 입양을 권유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미혼모가 혼자 아이를 키울 거냐며 함께 사는 걸 반대하는 건 물론, 이나가 좋아하고 정진하는 테크노사운드에 대해 사탄의 음악이라며 한사코 가로막는다. 그녀의 스트레스는 점점 커진다.

결국 이나는 직장에서 늘 일할 때 끼던 헤드폰을 벗어던지고 만다. 대신에 선배 준석의 작은 클럽에서 디제이를 하기 위해 또 다른 헤드폰을 착용하게 된다. 물론 어머니에겐 비밀이다. 민기는 이나에게 다시 음악활동에 도전하길 권하며 테크노의 본산, 베를린 클럽에서 2년간 레지던시 디제이로 일할 멤버를 선발하는 '베를린 콜링' 콘테스트를 소개한다. 이나는 아이를 데리고 음악활동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 연습에 매진한다. 한국은 자기 같은 비주류 음악인이 아이를 데리고 활동하기 힘들지만 독일 복지는 아무래도 낫겠지 하는 마음이다.

어머니는 이나가 자신의 통제에서 점점 벗어나려 하자 대신 집착할 상대를 구하려는 듯 필리핀에서 온 이주여성 카니타를 교회에서 소개받은 뒤 집에 데려와 일을 가르친다는 핑계로 부려먹는다. 이 건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불편하던 모녀간의 대립은 악화 일로를 걷는다. 이나는 카니타와 대화하던 중 그녀 역시 미혼모라는 사실을 듣는다. 그녀가 하녀처럼 부려지는 신세를 감내하는 건 교회에서 필리핀에 두고 온 어린 자녀를 데려온다는 조건 때문임을 알게 된다. 음악활동과 아이 양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강박이 이나를 벼랑으로 몰아붙이는 가운데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대한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

2_두 마리 토끼를 찾는 주인공의 모험
 
 영화 <둠둠>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둠둠>은 두 개의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공존하는 영화다. 이 영화 속에는 한 축으로 미혼모와 미망인, 이주여성노동자들이 서로 엉켜 있다. 또 다른 축에는 비주류 음악인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 두 축 안의 존재들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서로 종횡으로 교차하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상황과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돕기도 하지만, 각자가 점유한 층위에 따라 갈등과 반목 또한 심각하게 발생한다. 그런 충돌과 파열이 거듭되는 가운데 이야기는 주인공 이나가 시련을 극복하고 과거에 품었던 꿈을 계승 발전시키는 성장담으로 선이 굵은 궤적을 펼쳐 보인다.

<둠둠>에서 펼쳐지는 전개는 크게 여성영화이자 음악영화로서의 콘셉트를 동시에 발휘하고 있다. 주인공은 과도한 어머니의 구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아이와 함께 새 출발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런 여성으로서의 고뇌와 함께, 유행하는 음악장르가 아닌 비주류 음악활동으로 인정받고 싶다. 잘 '팔리는' 장르가 아니라 아티스트로서 자신이 즐겁고 보람을 느끼는 음악에 도전하고 싶다. 이 경우에 경제적 안정을 위한 난이도는 엄청나게 올라가게 마련이다. 이나는 여러 각도에서 스스로 자립해야 할 난제를 동시에 극복해야 할 상황이다.

2_1. 비주류 장르에 집중하는 독창적 음악영화

일단 <둠둠>은 음악영화로서의 정체성이 짙게 발현된다. 그것도 국내 음악시장에서는 세계 음악판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낮은 테크노 일렉트로니카 계열 음악을 다룬다. 해당 장르의 팬들이라면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끌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는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힙합이나 테크노나 둘 다 음지에 머물렀지만, 근래 들어 힙합은 사실상 주류 장르로 등극했다는 데 이론이 없는 반면, 테크노 계열은 여전히 주류와는 거리가 먼 상태다. 세계 6위 수준의 음악시장 규모인 데다 유럽이나 일본에서의 해당 장르 인기와 규모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수준인 셈이다. (일단 정통 전자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들은 꽤 이름이 알려진 경우라도 2010년대까지 생업을 별도로 해야 유지가 가능했을 정도다.)

그나마 전자음악 중에서도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EDM, 혹은 '빅 룸' 사운드라면 좀 더 수월할 텐데, <둠둠>은 해당 장르에서도 더 마이너하고 인디적 성향이 강한 하드 테크노 계열에 가까운 음악적 포지션을 다룬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 영화에서 다루는 테크노 음악은 흔히 강남이나 홍대 클럽을 묘사한 영화들에서 선보이는 부비부비 작업용 음악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부류의 단순하고 정형화된 전자음악은 실제 음악적으로는 장르 애호가들에겐 비호감 그 자체다. 영화의 주인공 이나의 취향부터 EDM 사운드가 아니다. 그 대신 보다 아티스트의 예술적 실험에 무게를 두는 하드 테크노 계열에 가까운 음악적 색깔이 도드라진다.

감독은 유학 시절 유럽에서 접했던 본격 전자음악 사운드에 매료되던 경험을 살려 해당 장르의 매력을 부각시키고자 시도한다. 이나의 선배 준석과 동기 민기 사이의 음악적 노선 갈등은 곧 국내 전자음악 판의 입장 차이를 상징화한 대목이다. 그런 노력의 발로로 이 영화는 개봉 홍보에서도 드물게 현역 전자음악 뮤지션들을 기용한 음악감독 역할을 중요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작품 내내 흐르는 음악 사운드나 강조되는 메시지만 봐도 상당히 영화음악에 공을 들인 작업이 확인된다.

하지만 좀 더 본격적으로 음악이 중심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그 기대만큼 음악적 요소에 '몰빵'한 영화는 아니다. 아무래도 워낙 일반인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비주류 장르이다 보니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데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라 판단했을 수도 있겠다. 누군가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해당 음악에 대해 본격 다뤄주길 기다려야 할 수밖에.

2_2. 울타리 벗어나 '독립'을 꿈꾸는 여성상
 
 영화 <둠둠>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그 대신 <둠둠>에서는 주인공의 미혼모 포지션과 자립 시도 과정에서 겪는 시련들이 더 결정적 요인으로 작동한다. 이나는 어머니와의 갈등이 악화일로를 거치며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으로 치닫는다. 어머니는 이나의 아픈 손가락을 후벼 파듯 건드리기 일쑤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딸이 홀로 외롭고 쓸쓸한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강박에 휩싸여 있고, 주인공은 자신이 어머니와 닮아가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을 느끼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치 화약고 같은 집에 주기적으로 방문하게 된 카니타와 모녀가 서로 이인삼각처럼 연결되면서 세 여성은 기이한 삼각구도를 형성한다. 그런 지형 때문에 오히려 어머니와 이나의 대립은 한층 더 격화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모녀간 양자관계라면 그저 평행선을 달리기만 했을 상태가 강제적으로 개방되는 성격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결국 이런 입체화된 갈등구조는 일정한 정화작용이 발생할 여지를 조성하게 된다.

어머니 신애는 자신의 고독감을 달래려 딸 이나를, 그리고 딸이 벗어나려하자 대타로 카니타를 오직 자기중심적으로 종속시키려 시도한다. 그 때문에 이나는 모녀관계를 보다 더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된다. 이나는 음악활동과 아이 양육을 대립 항으로 놓고 음악을 위해 아이를 버릴까 갈등하다 카니타가 온갖 수모를 감내하며 아이를 한국에 데려와 같이 살기 위해 노력하는 데 적지 않게 영향을 받는다. 카니타는 같은 미혼모로서의 교감 때문에 (그리고 어머니 신애에 대한 반발심이 더해진) 이나가 제공한 정보 덕분에 무익한 착취에서 조금이나마 더 빨리 벗어나게 된다.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주인공이 음악활동을 벌이는 순간에도 여성성은 비중 있는 기제로 등장한다. 일단 전자음악 판에서 여성 디제이는 희소하다. 극중에서 이나의 지상목표인 베를린 콜링 콘테스트에 참여한 후보 중 여성은 자신이 유일하다. 클럽 장면에서라면 남성이 디제이를, 여성이 바텐더를 맡는 게 고정적인 구성처럼 느끼는 게 은근히 성 역할 구별이라는 걸 순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대형 클럽이나 페스티벌에서 각광받는 EDM 계열 여성 디제이들이 실력보다는 노출 의상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데 활용되는 현실 풍경에 반발하듯 이나는 세련된 의상을 착용하긴 해도 노출과는 거리가 먼 복장을 선보인다.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런 면모는 또한 이나의 자주적 면모와 연결되어 캐릭터의 개성을 강화한다.

그렇게 영화는 굵직한 몇 군데 정류장을 거치며 험난한 감정소모 여정을 경유한다. 그런 전개를 지켜보며 관객은 과연 주인공인 이나의 결단이 어떻게 정해질지 기다리게 된다.

3_이미지와 사운드가 조화를 이룬 인상적인 만듦새
 
 영화 <둠둠>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둠둠>은 전자음악의 특징인 반복과 변주의 조화를 영화 구성 자체에 구현하는 듯 보인다. 제목의 '둠둠'은 전자음악 특유의 드럼&베이스 사운드가 내는 의성어 표현에서 따왔다. 즉 소리의 진동이 영화 시작부터 점점 거세지며 카타르시스에 이르러야 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를 위해 영화 내내 등장하는 휴대전화 장면은 의도적으로 전화가 걸려오건 메시지가 도착하건 소리가 아닌 진동으로 처리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철저하게 목적의식에 따른 연출구성인 셈이다.

또한 이나는 직장에서건 길에서건 집에서건 클럽에서건 언제나 헤드폰을 착용한다. 하지만 똑같아 보이는 헤드폰 낀 상황에서도 그 사용법은 크게 나뉜다. 직장에선 일을 위해 강제적으로 소리를 들어야 한다. 즉 외부의 영향에 종속되는 주인공의 삶을 상징하는 기제로 활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반대로 어머니 신애가 자신에게 가하는 간섭과 참견을 배제하고 그녀의 기행이 불러오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서 헤드폰을 쓴다. 그리고 클럽에선 지속 가능한 디제이 활동을 위해 귀를 보호하고자, 그리고 온전히 작업에 집중하고자 착용한다.

또한 이나는 자신을 드러내길 부담스러워하는 묘사가 종종 등장한다. 아이를 낳던 순간 난산 때문에 제왕절개를 한 흉터는 마음의 흠집처럼 그녀의 몸에 각인되어 있고,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티를 내지 않으려 하지만 노출된 손가락을 자꾸만 소매 안으로 숨기려는 버릇이 확인된다. 자기주장을 단호하게 결단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던 지난 시간의 자신과의 대항을 상상케 하는 표현들이다. 그런 소소한 장치들이 하나하나 효과적으로 작품의 인상을 쌓아올린다.

<둠둠>의 주인공들은 흔히 독립영화에선 보기 힘든 얼굴들이다. 개성파 연기자이자 모델로 활동하던 김용지가 눈에 확 띄는 이국적인 이미지를 살려 재기와 자립을 위해 도전하는 이나 역을 맡았다. 그리고 지상파 탤런트로 눈에 익숙한 윤유선이 주인공의 장래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 같은 어머니 신애 역으로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 여기에 유사 가족 관계로는 위탁모 역 안민영 배우와 카니타 역 베스티가, 그리고 음악적 방향성을 놓고는 선배 준석 역 박종환과 동료이지만 세속적 성공노선을 추구하며 시류를 잘 타는 민기 역 김진엽이 부딪히며 주인공을 각자의 입장으로 견인하려 시도하는 구도다.

주인공이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지 <둠둠>은 영화 막판까지 호기심과 궁금증의 밀도를 적절히 유지한다. 하지만 두 개의 주제 축이 교차하며 궤도를 굴러가던 이야기 흐름은 막바지에 들어서는 순간 급격하게 화해 모드로 치닫는다. 흥미롭던 대립 항이 너무 수월하게 정리되는 게 좀 아쉽긴 하다. 하지만 여성 주인공의 자립 과정을 최고 중심으로 놓고 본다면 납득은 가는 결말이다. 최후반까지 긴박감을 영화 속 하드한 전자음악 사운드의 쿵쿵거림처럼 지속해내는 선 굵은 전개와 생소하고 인상적인 소재를 교차해내는 도전이 돋보이는 <둠둠>이다.
 
<작품정보>
둠둠 Doom Doom
2021|한국|드라마
2022.09.15. 개봉|101분|15세 관람가
감독 정원희
주연 김용지(이나 역), 윤유선(신애 역)
출연 박종환(준석 역), 김진엽(민기 역), 안민영(위탁모 역),
베스티(카니타 역), 김승비(엠마 역)
PD 김이다
음악감독 Haihm(하임), 신범호
제작 이스트게이트 컴퍼니
공동제작 레브시네마
배급 영화사 진진
제공 이스트게이트 컴퍼니
공동제공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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