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칼럼] 공감을 잃은 사회의 '누칼협'과 '악깡버'

2022. 9. 1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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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년 세대 사이에서 쓰이고 있는 신조어로 '누칼협'과 '악깡버'가 있다.

누칼협은 '누가 칼로 협박했냐'의 줄임말이고, 악깡버는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의 줄임말이다.

마찬가지로, "네가 선택한 공무원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라는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

나아가 내가 택한 직업의 부조리나 사회나 조직에 저항하려는 행위도 그냥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라는 이야기로 일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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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잘못된 선택할 수 있어
서로에 대한 공감 폭 넓혀갈때
나 자신도 이해받는 길 열려

[아시아경제 ] 최근 청년 세대 사이에서 쓰이고 있는 신조어로 ‘누칼협’과 ‘악깡버’가 있다. 누칼협은 ‘누가 칼로 협박했냐’의 줄임말이고, 악깡버는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의 줄임말이다. 이러한 신조어를 처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떤 맥락에서 쓰이는지 의아할 법하다. 두 용어가 주로 쓰이는 맥락은 "네가 한 선택이니 네가 책임지고 감당하라"고 이야기할 때이다.

이를테면, 누가 공무원 월급이 적어서 힘들다고 토로하는 글에 ‘누가 공무원 하라고 협박했냐’라고 댓글을 다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네가 선택한 공무원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라는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유행어가 널리 퍼지면서, 최근 유명 공무원 유튜버도 이러한 신조어를 활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두 가지 용어는 모두 우리 시대가 개인의 ‘선택’을 절대적 기준에 놓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누가 협박한 것도 아니고 당신이 선택한 것이면, 그에 따르는 어려움이나 불합리함도 모두 스스로 책임지고 수용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용어가 쓰일 때 타인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보다, 타인과의 거리두기가 먼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용어들에는 ‘나는 당신에게 공감하지 않겠다. 당신을 이해해주거나 위로해주지도 않겠다. 그냥 당신이 알아서 하라’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개개인의 선택과 책임만을 강조할 때, 필연적으로 구성원 간의 거리가 ‘벌어진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모든 건 당신의 선택이므로, 당신을 대하는 나는 ‘공감과 이해’로부터 면제받는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 전반에서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이상 모든 것은 오로지 내 탓이라는 관점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이에 대해, 타인에게 공감이나 이해를 구하면 "그것은 너의 선택이니 알아서 감당하라"라는 이야기만을 듣게 된다. 나아가 내가 택한 직업의 부조리나 사회나 조직에 저항하려는 행위도 그냥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라는 이야기로 일축된다.

최근 이와 관련된 풍경이 하나 있었다. 비행기에서 아이가 울자, 한 중년 남성이 나타나 "누가 애 낳으라고 했냐"면서 그 부모에게 욕설과 협박을 한 사건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끊임없이 멀어지고, 거리를 두고, 공감과 이해의 가능성을 제거하면서,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배려조차 사라지고 있는 한 풍경인 셈이다.

철학자 레나타 살레츨은 ‘선택이라는 이데올리기’라는 책에서 "개인적 선택에 집착하는 동안 우리는 선택이 결코 개인적이지 않으며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을 놓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선택은 상당한 경우 사회적이고 환경적이다. 우리의 수많은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주변의 압박,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이나 불안 속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누구도 완벽한 선택만 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 탓으로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선택이 삶을 파괴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 것이 필요하다. 서로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혀나갈 때, 나 자신도 이해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삶에서 반드시 이해받아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있고, 어려움에 처할 때도 반드시 있다. 그럴 때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서로에게 눈과 귀를 닫은 서로밖에 없다면, 우리는 잘못된 사회를 만들었다고 그제서야 통렬히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정지우 문화평론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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