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마 막은 이웃 8명.. 결정적이었던 단서들
[양형석 기자]
대한민국 웹툰 1세대 강풀 작가는 2000년대 초반 D포털사이트에서 소소한 웃음을 주는 일상만화를 그리다가 2003년 장편웹툰 <순정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생소했던 스토리 형식의 웹툰이 독자들에게 통할까 걱정하는 시선도 많았지만 <순정만화>는 3000만 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그리고 이는 <아파트> <바보> <타이밍> <그대를 사랑합니다> < 26년 > <어게인> <무빙> <브릿지> 등 후속작의 인기로 이어졌다.
강풀 작가의 웹툰이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자 영화계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06년 고소영 주연의 <아파트>를 시작으로 <순정만화> <바보> 등 강풀 작가 원작의 웹툰들이 차례로 영화로 제작돼 개봉했다. 하지만 웹툰으로 수 많은 독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강풀 작가의 이야기들은 극장가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실제로 <아파트>와 <순정만화> <바보> 중 전국관객 100만을 넘긴 작품은 한 편도 없었다.
▲ <이웃사람>은 강풀작가원작의 영화 중 처음으로 200만 관객을 넘긴 작품이다.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선역과 악역, 진지와 코믹 사이를 오가는 배우
2001년 연극배우로 데뷔해 오랜 기간 무대연기를 하던 김성균은 2012년 2월에 개봉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최형배의 오른팔 박창우 역을 맡으며 영화에 데뷔했다. 당시 김성균은 단발머리와 은갈치 정장으로 1980년대 조직폭력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실제로 윤종빈 감독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아무리 시대고증을 철저히 한다 해도 그렇지, 진짜 조폭을 섭외하면 어쩌나?"라는 항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김성균은 같은 해 여름 김휘 감독의 <이웃사람>에서 연쇄살인마 류승혁을 연기하면서 <범죄와의 전쟁>으로 만들었던 악역이미지에 쐐기를 박았다.<이웃사람>은 주인공이 8명이나 등장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각자 분량을 나눌 수밖에 없었지만 연쇄살인마 김성균은 한정된 분량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김성균은 <이웃사람>을 통해 대종상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영화계에 정착했다.
하지만 김성균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작품은 따로 있었다. 바로 악역전문 이미지를 한 방에 깨버린 드라마 <응답하라 1994>였다. 김성균은 <응답하라 1994>에서 또래 친구들보다 2살이나 어린 삼천포 역을 맡아 민도희와 달달한 멜로연기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응사>에서 18세 대학생을 연기했던 김성균은 2년 후 <응답하라 1988>에서는 6수생(안재홍 분)과 고등학생 아들(류준열 분)을 둔 40대 가장을 연기하기도 했다.
두 편의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가 부쩍 상승한 김성균은 2016년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과 <프리즌> <보안관>,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등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7년 영화 <채비>에서는 일곱살 지능을 가진 서른 살 아들 역을 맡아 고두심 배우와 모자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2019년 <열혈사제>에서 맡았던 겁 많은 형사 구대영 역시 김성균의 대표작 중 하나.
<응답하라> 시리즈를 계기로 가벼운 캐릭터를 많이 맡았던 김성균은 작년 넷플릭스 드라마 < D.P >에서 헌병대수사과 군무이탈담당관 박범구 중사를 연기하며 오랜만에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올해 <한산: 용의 출현>에서 일본의 무장 가토 요시아키, <서울대작전>에서 중간보스 이현균을 연기한 김성균은 지난 7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서울의 봄> 촬영을 마쳤고 6월부터 < D.P. 시즌2 > 촬영을 시작하며 바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딸 여선을 지키지 못했던 송경희는 딸과 닮은 수연의 '안전한 귀가'를 책임진다.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영화 <이웃사람>은 당초 여름방학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7월 중순에 개봉할 예정이었다가 8월 말로 개봉날짜가 미뤄졌다.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같은 날 개봉하는 할리우드 대작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의 맞대결을 피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과적으로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전국 640만 관객을 동원했고 개봉을 미룬 <이웃사람> 역시 강풀 원작 영화로는 처음으로 200만 관객을 돌파했으니 두 영화는 '윈윈'을 한 셈이다.
<이웃사람>은 강풀의 동명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역시 각색과정에서 원작과 달라진 부분이 적지 않다. 일단 원작에서 고3이었던 유수연과 원여선(이상 김새론 분)의 나이가 중학교 1학년으로 어려졌고 다시 도망자 생활을 시작한 표종록(천호진 분)이 류승혁(김성균 분)의 영혼과 만나는 에필로그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원작의 에필로그는 강풀 작가가 후기에서 따로 해설을 했을 정도로 작품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이처럼 <이웃사람>은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많은 부분이 삭제 및 각색됐지만 무관심하던 8명의 이웃사람이 연쇄살인마의 다음 범죄를 막아낸다는 결론은 원작과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강풀 작가가 <이웃사람>을 그리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수연이의 안전한 귀가'라는 최종목표(?)는 영화판에서도 무사히 달성됐다. 그렇게 주인공들이 거주하는 강산맨션은 추가적인 불행 없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지난 5월 <이웃사람>에 출연한 배우 김새론이 음주운전사고로 면허취소가 되면서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유수연과 원서연은 <이웃사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캐릭터다. MBTI가 'E'로 시작할 확률이 매우 높은 수연은 안혁모(마동석 분)의 문신을 보고도 겁을 먹기는커녕 손으로 만져보며 신기해한다. 류승혁의 피해자였던 서연도 새엄마 송경희(김윤진 분)와 화해하면서 길었던 오해의 골을 풀어냈다.
<해운대>와 < 심야의 FM > < 7광구 > 등의 각본작업에 참여했던 김휘 감독은 2012년 첫 장편 연출작 <이웃사람>을 통해 240만 관객을 모으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2013년 옴니버스 호러영화 <무서운 이야기2>에 참여했던 김휘 감독은 2015년 김성균, 천호진 등 <이웃사람>의 배우들을 캐스팅해 <퇴마:무녀굴>을 연출했지만 전국 12만 관객에 그쳤다. 김휘 감독은 2017년 35만 관객에 그친 <석조저택 살인사건>을 끝으로 긴 공백기를 갖고 있다.
▲ 전작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김성균에게 구타를 당했던 마동석은 <이웃사람>에서 화풀이(?)를 제대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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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 류승혁의 악행들을 보면서 분노한 관객들은 류승혁이 강한 캐릭터에게 '정의구현'을 당하는 장면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깡패 출신의 사채업자로 '정의'와는 한참 거리가 있지만 마동석이 연기한 안혁모가 영화 내내 연쇄살인마 류승혁을 시원하게 구타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묘한 쾌감을 선사했다. 마동석은 <이웃사람>으로 백상예술대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부모가 없는 안혁모에게는 누나의 동생이자 외삼촌(정인기 분)이 유일한 혈육인데 사실 외삼촌 역시 안혁모에게는 가족이 아닌 자신에게 돈을 빌려간 후 갚지 않는 '악성 채무자'일 뿐이다. 안혁모는 엄마의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았던 원망을 더해 더욱 심하게 외삼촌을 구타한다. 하지만 외삼촌은 안혁모가 살해 용의자로 몰렸을 때 경찰서로 찾아와 안혁모의 알리바이를 증명하고 안혁모의 탈출을 돕는다.
2017년과 2020년 <황금빛 내 인생>과 <한 번 다녀왔습니다>로 KBS 연기대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던 천호진 배우는 <이웃사람>에서 살인을 저지른 후 공소시효가 지날 때까지 도망자 생활을 하고 있는 강산 맨션의 경비원 표종록을 연기했다. 공소시효가 6개월 밖에 남지 않아 경찰과 연루되는 것을 매우 경계하지만 지하실 구석에 걸린 교복을 보고 수연이 당했다고 착각해 이성을 잃고 류승혁을 살해한다.
피자집 배달 직원이자 피자집 사장 아들로 출연하는 안상윤은 일정주기에 피자를 시켜먹는 류승혁을 의심한다. 그러던 중 뉴스에서 본 연쇄살인의 날짜와 류승혁이 피자를 시켜 먹는 날짜가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류승혁과 집 주변을 살펴 본다. 안상윤 역의 도지한은 <이웃사람> 이후 드라마 <빠스켓 볼>과 <화랑> <백일의 낭군님> 등에 출연했고 작년에는 <분장실>을 통해 연극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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