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강석훈 산은 회장, 부산이전·구조조정 속도 낸다
[아시아경제 송화정 기자] 취임 100일을 맞은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앞으로 산업은행 각종 현안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직원들의 반발이 거센 부산 이전 문제에 대해 국정과제로 돌이킬 수 없다고 못박은 만큼 준비작업에 본격 착수할 것으로 보이며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구조조정 기업들의 매각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또한 경제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대한 지원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강 회장은 지난 14일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갖고 산은의 주요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향후 산은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최근 산은의 최대 현안인 부산 이전 문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강 회장은 부산 이전 문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산은의 부산 이전은 국정과제로 선정된 사안이었기 때문에 이 국정과제를 어떻게 잘 수행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 책임"이라며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산은의 부산 이전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국회 예결위 현안 질의에서 국무총리와 부총리도 확약한 사안으로, 국가의 최고 책임자들이 정한 것을 제가 뒤집을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산은 부산 이전의 의미에 대해서는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의 부흥을 이끄는 역할이 부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과거 부울경 지역은 제조업 중심으로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첨병 역할을 했으나 4차산업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심지가 수도권으로 옮겨지고 상대적으로 부울경 지역은 뒤쳐졌다"면서 "수도권 뿐 아니라 부울경 지역도 새로운 4차산업 전초기지로 탈바꿈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수도권과 부울경 두 축으로 경제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 산은의 부산 이전은 그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의 부산 이전을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한데 강 회장은 법 개정 이전이라도 영업자산이나 기반 확대 등의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혀 부산 이전을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할 것임을 내비쳤다. 그는 "법 개정 이전이라도 부울경 지역에 영업자산, 영업기반 등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부울경 영업조직 확대는 해양산업부문을 확대하고 영업점 인원을 키우는 쪽으로 빨리 진행하려고 하고 있으며 내년 초쯤에는 가시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향후 법률이 개정되는 때를 대비해 부산 이전 계획을 짜는 조직도 신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직원들의 반발에 대해서는 설득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다. 강 회장은 산은 회장 임명 직후 첫 출근부터 노동조합의 출근 저지 투쟁에 가로막혔다. 임명 2주만에 출근해서 취임식을 가졌지만 직원들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철야 농성에 회장 집무실 앞 집회 등에 나서며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강 회장은 "산은 직원들이 마음을 열지 못하고 정부가 지시하는대로 이전해야하는 상황이 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법 개정까지 시간이 있으니 많은 직원들과 깊이 토론하고 서로의 생각을 진솔하게 나누는 기회를 많이 갖는 등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이전에도 산은의 거취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이었던 2013년에 통합산은법을 발의했다. 이는 민영화로 분리된 정책금융공사와 산은을 다시 통합하는 법안이다. 당시 부산 지역 의원들이 정책금융공사를 부산으로 이전하는 법을 발의한 상태였으나 금융당국 요청으로 강 회장이 통합산은법을 발의하면서 이듬해 산은이 통합됐고 정책금융공사의 부산 이전은 무산됐다. 그러나 현재는 산은의 회장으로 부산 이전을 진두지휘하는 입장이 됐다.
산은 회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강 회장은 국회의원, 경제수석 등 거쳤고 박근혜 전 대통령 인수위에 참여한 데 이어 이어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에서도 정책특보 맡는 등 정책금융 전문가로 꼽힌다. 교수 출신으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정치인으로 발을 내딛었다. 2016년에는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으로 선임됐다. 박근혜 정부 마지막 경제수석이었던 강 회장은 당시 공석이었던 정책수석도 겸임했다. 두 정부에서 경제 브레인 역할을 했던 강 회장은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무엇보다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봤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도입하고 뒤이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을 내놓은 것을 보면서 현재 미국이 가지고 있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읽을 수 있었다"면서 "급변하는 세계 경제 상황에서 우리는 미국보다 10배 이상으로 더 큰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경제의 기반을 이뤘던 두 축 자유무역과 정경분리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자유무역은 보호무역으로 대체되고 안보와 경제가 통합되는 경제안보시대가 탄생하면서 각국이 자국의 산업을 육성하고 글로벌 공급망과 안전성 확보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회장은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는 디지털과 녹색 전환이라는 거대한 도전, 초저성장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고 "산업은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높여서 다가올 초저성장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앞으로 산업은행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1%포인트를 책임지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향후 5개 내외의 산업을 선정해 지원할 계획이다. 강 회장은 "1호 프로젝트로 반도체 산업을 집중 지원할 것"이라며 "팹리스 파운드리 10조원, 소부장 육성 10조원, 메모리 반도체 10조원 등 향후 5년간 30조원 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당면한 저성장 고리를 끊고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첨병이 되는 것이 산업은행의 미래상"이라고 제시했다.
대우조선해양 등 기업 구조조정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강 회장은 "대우조선해양이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빠른 매각이 필요하다"면서 "연구개발(R&D)을 강화하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경영 주체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대우조선을 구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HMM의 경우 정상기업이 됐기 때문에 빠르게 매각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다. KDB생명도 금리가 과거보다 오른 상황에서 매각 여건이 좋아진 것으로 보고 준비과정 거쳐 곧 매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강 회장은 한계기업 구조조정에 있어서 속도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대주주 책임 우선, 이해관계자 고통분담, 지속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이 그동안 산은의 구조조정 원칙이었는데 여기에 추가로 바로 매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매각가격 문제로 시간 끄는 것보다 유연하게 해서 빨리 진행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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