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에게 쫓기는 울산, 팬들에게 쫓기는 전북
[이준목 기자]
▲ 울산 황재환 '제발 좀 비켜' 14일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와 울산 현대축구단의 경기 전반전. 울산 황재환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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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1을 대표하는 '양강'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가 시즌 후반기 치열한 순위경쟁 속에서 각기 다른 고민에 빠져있다. 우승이 유력해보이던 울산은 전북의 추격에 쫓기면서 항상 시즌 후반기에 무너졌던 지난 역사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면, 항상 1등에만 익숙했던 전북은 전북대로 눈높이가 높아진 팬들의 거센 질타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울산은 지난 9월 14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원정에서 졸전 끝에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승점 1점 추가에 그친 울산은 여전히 1위를 유지했지만 승점 63점으로 2위 전북 현대(승점 58)에게 어느덧 5점차까지 추격을 허용했다. 약 1주일 전만해도 10점차였던 리드가 순식간에 반토막으로 줄어들었다.
울산은 최근 5경기에서 단 1승(2무 2패)밖에 거두지 못했다. 지난 4일에는 최하위 성남에게 원정에서 0-2로 충격패를 당했고, 11일에는 라이벌전인 '동해안 더비' 포항과의 홈경기에서 노경호에게 극장골을 얻어맞으며 1-2로 무너졌다.
울산이 주춤하는 사이 경쟁자 전북은 대구를 5-0, 성남을 1-0으로 각각 제압하며 2연승으로 울산과의 격차를 좁혔다. 아직 6경기가 남아있고 파이널라운드에서 양팀의 맞대결이 한 차례 포함되어있는 것을 감안하면 5점차는 언제든 따라잡힐 수 있는 격차다. 울산의 독주로 싱겁게 끝나는 듯하던 우승경쟁이 다시 접전 양상으로 바뀐 것이다.
▲ 작전 지시하는 홍명보 울산 감독 14일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와 울산 현대축구단의 경기 전반전. 홍명보 울산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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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하락세는 주전들의 체력부담과 부상 악재가 맞물려있다. 인천전에서는 김영권-설영우-엄원상-이청용 등 핵심자원들 다수가 부상과 경고누적, 컨디션 난조 등으로 결장했고, 골키퍼 조현우까지 경기중 부상으로 후반에 교체됐다. 전력누수는 득점력 하락으로 이어지며, 리그 최다득점(46골, 포항과 동률)팀이던 울산은 최근 5경기에서는 단 3골에 그쳤다.
울산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지난 역사가 주는 심리적 트라우마다. 울산은 2005년 이후 지난 16년간 리그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전력은 우승권이었지만 정상 문턱에서 막판 고비를 넘지 못하고 아쉽게 무너진 경우가 유독 많았다.
2013년에는 리그 최종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포항에 극장골을 헌납하며 역전 우승을 내줬다. 지난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3시즌 연속 전북에게 밀려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모두 우승경쟁에서 앞서가던 유리한 상황에서, 막바지 들어 중요한 맞대결에서 지거나, 알 수 없는 슬럼프에 빠지며 '뒷심 부족', '새가슴'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했다.
홍명보 감독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시즌부터 울산의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 감독은 첫 시즌이었던 2021년 한때 트레블(3관왕)까지 도전했으나 빅매치들을 잇달아 놓치며 결과적으로 무관에 그쳤다. 작년에도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선수 로테이션과 체력관리, 밀집수비를 공략할 수 있는 세밀한 공격전술의 부재 등은 올해도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울산이 K리그를 넘어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정상급 스쿼드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일부 주전들의 부상이 ACL에서의 조기탈락이나, 최근 리그에서의 갑작스러운 부진에 핑계가 되기는 어렵다. 홍 감독은 인천전 이후 "선수들도 팬들도 불안감이 있다"고 징크스를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우리 스스로 용기를 가지는 것 외에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결과는 모두 감독의 책임"이라며 분발을 다짐했다.
▲ 기자회견하는 김상식 감독 전북 현대 김상식 감독이 8월 22일 일본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스타디움2002에서 열린 일본 빗셀 고베와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3-1로 승리를 거둔 뒤 기자회견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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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울산을 추격하고 있는 전북은 최근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팀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팬들의 비난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전북팬들은 지난 7일 서울전(0-0) 무승부 이후 울산과의 승점차가 벌어지자 무기력한 경기내용에 실망하여 구단 버스를 막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특히 비난의 초점은 김상식 감독과 허병길 대표에게 쏟아지고 있다.
다행히 전북은 서울전 이후 심기일전하여 대구와 성남을 상대로 2연승을 거두며 울산과의 우승경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하지만 지난 성남전에서도 또다시 전북 팬들은 홈에서 다시 한 번 비난의 현수막을 꺼내들었다. 평범하게 전북을 응원하는 걸개도 있었지만 '김상식 OUT, 허병길 OUT', '병든 길로 향하는 비상식적 운영', 'RUN DEVIL RUN' 등의 자극적인 문구가 가득했다. 심지어 경기중에도 코칭스태프를 향해서 욕설이 쏟아지기도 했다.
물론 전북 팬들의 항의는 최근의 일시적인 성적만 놓고 벌어진 것은 아니다. 최근 8시즌간 7회의 우승을 쓸어담았던 전북은 올시즌에는 라이벌 울산에게 선두를 내주고 시즌 내내 끌려다니는 모양새였다. 경기 내용도 전북다운 화끈한 공격축구가 사라졌고, 팀운영 과정에서 팬들과의 소통을 무시한다는 데 불만이 누적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경기에서 홈팬들이 이런 식으로 응원하는 팀에 대한 비난을 이어가는 게, 과연 팀을 위해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우승 경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고, 전북은 지난 몇 년간도 고비는 있었지만 항상 뒷심을 발휘하여 흐름을 뒤집었던 저력이 있다. 더구나 아무리 팬들의 의사표현이 자유라고 할지라도 타이밍과 장소는 가려야하는 법인데, 최소한 경기중에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는 경기 시작 전과 경기 도중에도 팬들이 외치는 비난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어야 했다. 물론 응원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선수들 입장에선 영 홈경기답지 않은 분위기에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성남전에서 연승 행진을 이어갔음에도 경기 후 선수단의 표정과 분위기는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울산과 전북 모두 끝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치열한 우승경쟁을 벌이고 있다. 나란히 2년차를 맞이한 감독들(홍명보-김상식)의 리더십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는 것도 비슷하다. 우승은 단순히 선수나 감독 개인의 힘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며, 위기는 바깥보다 항상 내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더 많다. 어려운 때일수록 구단-선수-팬들이 합심하고 때로는 한 발씩 양보하며 한마음으로 뭉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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