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핵관도 울고간다?..정권교체 칼날도 비껴간 '기재부 싹쓸이'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자들의 잇따른 낙마로 공석이던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에 조규홍 후보자를 내정하자 여당이 크게 술렁댔다.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 출신의 조 후보자가 4월 복지부 1차관에 기용됐을 때만 해도 관가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는데, 넉 달 만에 복지부 수장의 문턱에 섰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예산·재정 전문가인 조 후보자가 국민연금 개혁이나 건강보험 재정 안정 등 국정 과제를 추진할 적임자라는 평이 없지 않았지만, 보건·의료 분야 경력이 전무한 점을 들어 “코로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부정적 시선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당 인사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것은 “또 기재부 출신이냐”는 푸념이었다. 친윤계 성향으로 알려진 국민의힘 의원은 “요즘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관계자)이니 검핵관(검찰 출신 핵심관계자)이니 논란이 많은데, 알짜는 기재부 출신이 다 한다”고 말했다. 비교적 대중에 잘 알려진 윤핵관이나 검찰 출신 인사들이 정권 실세로 지목돼 공격받고 있지만, 정작 윤 정부 핵심 포스트는 기재부 출신 인사들이 많이 챙겼다는 취지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핵심 보직에서 기재부 출신 인사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당장 정권 ‘투톱’격인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 모두 기재부 출신이다. 한덕수 총리는 재정경제부 장관, 김대기 실장은 기획예산처 재정운용실장을 지냈다. 총리실 ‘넘버2’인 국무조정실장은 6월부터 기재부 차관 출신 방문규 실장이 맡았다. 윤 정부 경제팀 핵심 라인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최상목 경제수석,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기재부와 큰 관련 없어 보이는 정부 부처의 요직도 그렇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대표적이고, 조용만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도 기재부 기조실장을 지낸 경제 관료 출신이다. 이외에도 류광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획조정실장은 기재부 과장, 강완구 국방부 기조실장은 기재부 재정관리국장 출신이다. 기조실장이 예산을 총괄하는 자리라고는 하지만, 해당 부처 공무원 사이에서는 “자기 부처에서 수십년간 잔뼈가 굵은 ‘박힌 돌’도 ‘굴러온 돌’인 기재부 출신 앞에선 물 먹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정치권에는 “‘모피아’는 정권 교체 칼바람도 피해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모피아(MoFia)란 옛 재무부를 뜻하는 MoF(Ministry of Finance)와 ‘마피아’를 합성한 단어다. 강완구 국방부 기조실장만 해도 문재인 정부 ‘최장수 경제부총리’인 홍남기 전 부총리의 비서실장과 정책보좌관을 지냈는데, 윤 정부에서 국방부 요직을 꿰찼다. 이 때문에 현직 국방부 인사들 사이에서는 부글부글해 하는 기류가 상당하다는 후문이다.
기재부 경제정책국장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경제수석을 지낸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5월 윤 정부 초대 국무조정실장 물망에 올랐을 때는, 윤핵관마저 대놓고 얼굴을 붉혔다. 당시 한 총리가 윤 행장을 내정하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 정부의 망가진 경제 정책의 주역”이라며 “한 총리가 왜 계속 기용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윤 행장 기용이 무산됐지만, 여당 내부에서는 “기재부 선·후배의 끈끈함 앞에는 여야도 없다”(재선 의원)는 뒷말이 나왔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에도 모피아 전성시대가 활짝 열렸다는 평가다. 7월 취임한 이종화 대구 경제부시장은 6월까지만 해도 기재부 대외경제국장이었다. 전형식 충남 정무부지사는 기재부 재정정산국장, 김명규 충북 부지사는 종합정책과장 출신이다. 부산시 경제특별보좌관에는 송복철 전 기획재정부 단장이 7월 임명됐다. 경제특보는 경제부시장과 함께 경제라인 투톱으로 불리는 요직이다.
경기도는 술자리만 아니었다면 김동연 지사는 물론 부지사까지 기재부 출신으로 채워질 뻔했다. 김용진 전 부지사는 7월 28일 취임했는데, 술자리에서 국민의힘 도의원과 말다툼 끝에 술잔을 던진 것이 논란이 돼 사흘 만에 사퇴했다. 김 지사는 기재부 장관, 김 전 부지사는 기재부 2차관 출신이다.
기재부 출신이 중앙 부처 및 지방 정부 요직에 중용되는 것은 결국 ‘돈줄’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지방자치단체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기재부를 상대하는 담당자가 같은 기재부 출신이냐 아니냐에 따라 확보하는 예산 규모가 달라진다”며 “특히 기재부 출신 중에서도 예산·국비 분야에 정통한 ‘선수’들은 영입 경쟁이 벌어질 정도”라고 덧붙였다. 예산편성권을 틀어쥔 기재부 앞에서는 웬만한 부처나 지방정부 고위직도 한 수 접는다는 의미다.
이처럼 기재부 출신이 끼지 않으면 국가 예산이 좀처럼 돌지 않는 구조가 ‘모피아 카르텔’을 더 막강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예산을 고리로 기재부 출신끼리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정부, 정치권, 지방정부, 금융권 등을 망라한 ‘파워 그룹’을 형성하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관예우의 틀이 조성된다는 논리다.
민간 주도 경제와 규제 개혁을 앞세운 윤석열 정부에서 기재부 출신이 득세해 관치 성향이 짙어지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여당 관계자는 “부처나 지방정부 모두 기재부 출신을 앞세워 한정된 예산을 끌어오는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양상”이라며 “이 과정에서 정작 조직을 혁신하거나 파이를 키우는 비전 전략이 외면받으면 윤석열 정부에도 독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기재부 전성시대를 단순히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일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과거 ‘경제통’으로 불린 여권 관계자는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기재부 출신이라서 뽑은 게 아니라, 뽑아 놓고 보니 기재부 출신’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기재부 출신만큼 실무는 물론 정무·기획 능력까지 두루 갖춘 인재를 찾기 쉽지 않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출신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기재부 업무상 특정 부처나 지역 논리에 국한되지 않는 거시적 안목이 필수”라며 “일종의 ‘공적 마인드’를 갖춘 인재들이 많기 때문에 정부는 물론 각종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손국희ㆍ윤성민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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