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부산 칠성파와 신20세기파
35년 전. 부산의 한 중학교 하교 시간 때 교문 밖 풍경은 아프리카 초원을 닮았었다. 까까머리 학생들이 누우떼처럼 교문 밖으로 몰려나오면 학교 밖에 있던 장발머리 ‘깡패’들이 사자처럼 가장자리에서 그 대열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거나 대열에서 삐져나온 학생들을 손짓으로 부르거나 팔짱을 껴 어디론가 끌고 가 돈을 빼앗았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그때는 대낮에 그것도 교문 앞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 학교가 있던 동네가 칠성파 추종세력이 많았던 곳이라는 것은 어른이 된 후에야 알게 됐다.
최근 부산 도심가에서 패싸움 등을 벌인 혐의로 부산의 양대 폭력조직인 ‘칠성파’와 ‘신20세기파’ 조직원 74명이 무더기로 검거된 사건을 보면서 그때 일이 떠올랐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30~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산에서 버젓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칠성파와 신20세기파는 부산에서 뿌리 깊은 폭력 조직이다. 칠성파는 한국전쟁 때 조직원 7명으로 시작해 1970년대 세력을 확장했고, 1988년 일본 야쿠자 방계 조직과 의형제 결연식도 맺었다. 영화 ‘친구’의 모티브가 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신20세기파는 1980년대 부산 중구 남포동과 중앙동 일대 유흥가를 기반 삼아 조직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대 조직은 30년가량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조직원간 상호 폭행 등 이른바 ‘전쟁’을 해왔다. 2006년 1월 신20세기파가 흉기를 들고 장례식장인 부산 영락공원에 들이닥쳐 칠성파 조직원들과 난투극을 벌인 이른바 ‘영락공원 조폭 난입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5월 7일에는 해운대에서 신20세기파 조직원들이 생일파티를 하다 시비가 붙어 칠성파 조직원을 공격했다. 이후 칠성파 조직원이 다시 몰려와 신20세기파 조직원을 붙잡아 폭행했고, 5월 15일에는 부산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신20세기파 조직원 8명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들이닥쳐 칠성파 조직원 2명을 폭행하는 등 양측의 폭력이 이어졌다.
결국 지난해 10월 17일에는 양대 조직원들이 부산 최대 번화가인 서면에서 패싸움까지 벌였다. 신20세기파 8명과 칠성파 5명이 맞붙은 이 싸움에서 칠성파 조직원 2명이 크게 다쳤다. 이런 폭행에 연루된 양대 조직원 등 74명이 이번에 무더기로 검거돼 이 중 24명이 구속된 것이다.
경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앞으로 폭력 조직 관리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이번에는 폭력조직을 뿌리 뽑겠다는 각오로 조폭과 그 추종세력을 끈질기게 추적·검거해 더는 부산에서 ‘정글의 법칙’이 활개 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조폭들이 아프리카 맹수들처럼 서로 흉기를 들고 싸우는 모습은 이제 영화에서만 보고 싶다.
위성욱 부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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