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동맹보다 '표심'..한·미 '포괄적 동맹' 무색해졌다

임선영, 정진우 2022. 9. 1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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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이창양 산업부 장관과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이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뉴스1]

“미국에서 만든 전기차를 구매하는 사람에겐 7500달러(약 104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입법 기념행사에서 미국산 전기차를 사는 자국민의 혜택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미국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IRA가 현대자동차그룹 등 타국 기업에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일성으로 ‘미국이 돌아왔다’고 외쳤다. 국제사회의 리더로 규범과 질서를 지키고,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 당시 서먹해진 동맹 및 우방과의 관계 복원에 나서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 상승과 지지율 하락이 맞물린 정치·경제적 위기 상황에 처하자 바이든 역시 과거 트럼프가 내세웠던 ‘미국 우선주의’를 꺼내 들었다.

실제 바이든은 이날 입법 기념행사 연설에서 “이 법으로 미국산 전기차의 세계 시장 비중이 3배로 확대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등 최근 들어 연일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백악관 차원에서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공감하고 있다”(지난 6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특파원 간담회)는 한국 정부의 설명과는 사뭇 다른 언행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중 공급망 경쟁 상황에서 자국 경제안보와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올해 들어 IRA와 반도체·과학법 등의 입법을 밀어붙여왔다. 특히 반도체·과학법은 미 반도체 산업에 총 527억 달러(약 69조원)를 투자하는 동시에 세액 공제 등의 형태로 보조금을 지원받은 기업은 앞으로 10년간 제조시설 확충 등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에 투자를 할 수 없도록 가드레일 조항을 뒀다. 이 법은 의회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았다. 지난 12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도 경제안보 시대에 미 바이오 기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한 조치다.

‘프렌드 쇼어링’ 외치더니 한국 잇단 타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제는 행정부와 의회가 손잡고 추진해 온 미국 우선주의적 법안과 행정명령이 동맹국인 한국 기업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현대자동차그룹은 미 조지아주에 짓기로 한 전기차 공장의 가동 전까진 보조금 제외로 피해를 볼 처지다.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은 미 제약사의 의약품을 위탁생산해 온 SK바이오사이언스·삼성바이오로직스 등에 직격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가 미·중 공급망 경쟁에서 ‘프렌드 쇼어링’(동맹·우방 중심 공급망 재편)을 강조해 왔고, 한국이 그 핵심 파트너로 여겨졌다는 점이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한 것도 공급망 재편 시대에 한·미 협력을 강화하자는 취지였다. 당시 양국의 협력 의지는 공동성명에 “안전하고 지속가능하며 회복력 있는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위해 파트너십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는 문구로 남았다. 그런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미국 우선주의적 입법은 한국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도 국익 보호 차원서 전략 고심해야”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에선 ‘지금이 중국의 부상을 막을 마지막 기회’라는 다급함과 시급함이 있는 만큼 미·중 공급망 경쟁에 대처하는 ‘미국 우선주의’ 전략에 대해 행정부와 의회가 사실상 한 몸처럼 지지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익 보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피해 최소화 전략을 고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연이은 미국 우선주의적 정책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보호무역을 앞세웠던 트럼프주의의 향수에 젖은 노동자층을 비롯한 일부 유권자의 표심을 달래기 위한 정치공학적 전술로 풀이된다.

주목할 점은 중간선거 이후에도 ‘메이드 인 아메리카’ 기조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은 11월 중간선거 이후 본격적인 2024년 대선 경쟁이 시작돼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표심과 직결되는 미국 우선주의 전략에 무게를 실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IRA 등을 내세운 바이든 행정부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을 두고 미국 내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3일 오피니언란에 “IRA가 ‘중국 배제’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결국 미 자체 공급망 확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 ‘미국의 중국식 산업 정책의 구멍’이란 제목의 지적을 게재했다. 규제를 강화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중국식 산업 정책’이라고 비판한 제목이다.

이 글은 “IRA는 부주의하게도 미국 내 전기차 판매 2위에 오를 만큼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를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IRA는 미국에서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구축에 도움이 될 기술과 능력이 있는 회사에 이익을 주는 대신 전 세계적인 전기차 속도전에서 뒤처진 도요타와 미국 대형 자동차 회사를 띄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임선영·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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