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앞둔 할머니입니다, 매월 27만 원을 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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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자 기자]
내년이면 팔순이 되는 할머니다. 딸들은 진즉에 결혼을 했고 지금은 남편과 나 부부만 살고 있는 노인세대다. 하지만 나는 노인이란 말이 아직 낯설다. 그만큼 왕성하게 활동하며 바쁘게 살고 있다. 딸 친구의 소개로 2년 전부터 시니어 클럽에 나가 그림을 그리면서 소일을 한다.
예술단이란 이름으로 붓글씨를 쓰거나 작은 그림을 그린다. 금요일 하루는 철길 마을에 가서 작업하고 원하는 관광객에게는 붓글씨로 가훈을 써 주거나 그림 엽서를 그려 주는 일을 한다. 한 달이면 10일, 하루에 3시간만 하는 일이라 전혀 무리가 가지 않고 힘들지 않다.
▲ 글 쓰기 컴퓨터로 글쓰기 |
ⓒ 이숙자 |
시니어 클럽에 나가 놀이 삼아 작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 재미있다. 지난해는 꽃 그림 한 권을 다 그렸다. 꽃 그림을 그리면서 꽃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마치 내가 꽃 속에 사는 것 같은 착각에 "사는 게 참 꽃 같아야" 하면서 딸들에게 자랑도 한다.
자식들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않는다. 저희들도 바쁘고 나도 바쁘다. 외롭다고 투정할 겨늘도 없다. 각자의 삶을 살면 되는 거다.
지금은 풀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시니어 클럽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하는 일도 아니고 나보다 다섯 살이 많으신 어르신과 둘이서만 하고 있는 작업이라서 불편함이 전혀 없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자칫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아 불펀한 사항이 있을 수도 있는데, 두 사람만이 하는 일은 서로가 자기 일만 알아서 하면 된다. 자기 일에 몰두하다가도 때때로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보내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다.
▲ 우산 나물 우산 나물 풀 그림 |
ⓒ 이숙자 |
처음에는 얼마나 신기했는지 자식들을 만나면 엄마가 돈 번다고 밥도 사고 집에서 필요하면 생활비에도 쓰고 때론 집에서 입는 비싸지 않은 옷도 사 입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돈을 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목표를 두고 쓰고 싶었다.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꼭 필요한 곳에 잘 쓰고 싶었다. 내가 이 나이에 옷을 사 입을 일도 없고 물건 사는 걸 멈추어야 한다. 아무것도 사고 싶은 것도 없다. 더욱이 살림을 살 일도 없다. 통장에 돈을 차곡차곡 쌓아 모아만 놓으면 뭐 할 건가?
어제 통장을 꺼내여 보니 몇백만 원이 모였다. 그런데 돈을 써야 할 곳이 생겼다. 며칠이면 손자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오로지 자기 실력으로 공부를 해서 미국에서도 좋은 대학교에 합격을 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
중국에 살던 손자는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 외가와 큰댁을 오가면서 힘들게 혼자 공부했다. 어느 시인이 말했다.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 온 결과라서 마음으로 오는 감동이 더 크다.
남을 위해서도 장학금을 주는 세상인데 손자에게 작은 정성이라도 보일 수 있어 기쁘다. 손자는 아마도 본인이 꿈꾸는 일을 해 낼 것이다. 은행에 가서 딸에게 송금을 했다. "손자 출국하는데 필요한 곳에 쓰거라." 송금을 하고 생각이 많아진다. 아파트 안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전화를 했다. 정말 내가 꼭 쓰고 싶은 곳에 돈을 쓸 수 있어 기분이 좋고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사람이 힘들게 돈 버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써야 할 곳에 돈을 쓰는 기분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손자는 알 것이다. 할머니의 수고로운 돈의 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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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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