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라 찾아왔다, 한국 농구 판 바꿀 '키'
“며칠 전 엄마·아빠·할머니랑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광장시장에도 다녀왔는데 미국 LA의 외곽 시장과 비슷했어요.”
14일 경기도 용인시에서 만난 키아나 스미스(23)가 웃으며 말했다. 지난 5일 생애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스미스는 한국 여자 프로농구 판도를 뒤흔들 것으로 기대되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스미스는 16일 열리는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신입선수 선발회에 참가 신청했다. 1순위 지명권을 가진 용인 삼성생명이 뽑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스미스는 2022~23시즌부터 한국 무대를 누빌 예정이다. 부모 중 1명이 현재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과거에 보유했던 동포 선수는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다.
스미스는 199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7세 때 미국에 이민 간 한국 출신 최원선(51·미국명 켈리 스미스)씨, 아버지는 미국 농구선수 출신인 존 스미스(53)다. 스미스는 “어릴 땐 배구를 좋아했는데, ‘농구 패밀리’ 의 영향을 받아 고교에 진학하면서 농구를 택했다”며 “아빠는 미국 대학농구 코치다. 할아버지(프레드 ‘럭키’ 스미스)는 1968년 미국프로농구(NBA) 밀워키 벅스에 지명돼 3년간 뛰었다. 오빠도 아르메니아에서 농구 선수로 뛰었고, 삼촌도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코치였다. 엄마도 고교 때까지 농구를 했는데 아무래도 엄마의 스킬을 물려받은 것 같다”며 웃었다.
스미스는 3점슛을 투핸드가 아닌 원핸드로 쏜다. 사진 속 부녀의 슛폼이 비슷하다는 말에 아버지 존 스미스는 “딸의 슛폼이 훨씬 낫다”며 웃었다.
스미스는 동포 출신 가운데 경력이 가장 뛰어나다. 2017년 미국 전국 고등학생 톱 24명을 꼽는 ‘맥도날드 올 아메리칸’에 선정됐는데, 앞서 르브론 제임스(LA레이커스)도 뽑힌 적이 있다. 미국 루이빌대학 소속으로 지난 시즌 전미 대학체육협회(NCAA) 디비전1에서 평균 12점을 올리며 올해 3월 ‘파이널 포(4강)’ 진출을 이끌었다. 올해 WNBA 신인 드래프트 전체 16순위로 로스앤젤레스(LA) 스팍스에 지명돼 11경기에서 평균 2.6점을 기록했다.
여름에만 열리는 WNBA 시즌이 끝난 뒤 스페인 등 유럽 팀에서 영입 제의를 받았지만 한국 행을 택했다. 스미스는 “오래전부터 ‘엄마의 나라’ 한국을 배우고 한국에서 뛰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빅 할머니(외증조 할머니)’가 (6.25 전쟁 때) 북한에서 내려와 한국에 정착한 이야기를 들었다. 외할머니 품에서 자랄 때 한국 TV쇼를 많이 봤다. 최근엔 오징어 게임도 재미있었다”고 했다.
스미스는 옆에 있던 엄마에게 “한국에서 뛸 줄 알았다면 어릴 때 한국어를 좀 더 가르쳐주지”라고 농담을 던졌다. 스미스는 서툰 한국어로 “넥스트는 다음““스위치는 반대” “예뻐” “배고파” 라고 말했다. “김, 단무지, 갈비, 불고기 같은 한국 음식도 좋아한다”며 웃었다.
유튜브 영상을 보면 스미스는 슛 템포가 빠르고 정확한 공격형 가드다. 프로필 상 키는 1m82㎝지만, 실제로는 1m79㎝ 정도로 보였다. 강점을 묻자 스미스는 “난 득점을 올릴 수 있는 가드다. 어느 지점에서도 슛을 쏠 수 있는 데미안 릴라드(포틀랜드)와 스테판 커리(골든스테이트)를 좋아한다. 농구 지능(BQ)도 좋다. 아빠와 할아버지가 포인트 가드 출신인데, 나는 한국에서 1번(포인트가드), 2번(슈팅가드), 3번(스몰포워드)로 뛰고 싶다”고 했다.
명문 UC 버클리를 다니던 스미스는 농구를 더 잘하고 싶어 루이빌대로 편입 했다. 올해는 경영학 석사(MBA) 학위도 받았다. 스미스는 “토요일과 야간 수업을 받았다. WNBA 원정 경기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학위를 땄다”고 했다. 코트 밖 패션센스가 돋보이는 스미스는 “때로는 귀엽게, 때로는 스타일리시하게 입는다. 박지현(우리은행) 선수가 한국 패션잡지 보그 모델로 나선 걸 봤는데, 나도 농구를 잘해서 한 번 쯤 나와보고 싶다”며 웃었다.
한국 여자 프로농구는 1m96㎝의 장신 센터 박지수가 이끄는 청주 KB의 독주 체제다. 스미스는 “지수 선수처럼 좋은 선수와 경쟁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나도 성장할 기회”라고 했다.
스미스는 미국 3대3 농구 대표팀 선발전에서 우승하고 MVP(최우수선수)도 받았지만 공식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스미스는 “미국 대표로 뛰면 한국 대표로 뛰지 못한다. 아버지 나라에서 농구를 배웠고, 언젠가 어머니 나라를 대표해 뛰고 싶다”고 했다.
2024년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특별귀화 가능성도 열려있다. 물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스미스는 “한국 무대에서 적응하고 팀 승리를 이끄는 선수가 되는 게 먼저”라고 선을 그은 뒤 “만약 파리올림픽에 엄마 나라를 대표해 뛰게 된다면 꿈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별명은 키아나란 이름 앞 글자를 딴 ‘키’다. 스미스는 “한국여자농구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키 플레이어’가 된다면 엄청난 영광일 것이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아버지 존 스미스는 “‘키’가 미국과 한국 모두 자랑스럽게 여기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용인=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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