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억 찾는 동화같은 추리극.. '작은 아씨들' 흥행 왜

김정연 2022. 9. 1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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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작은 아씨들'은 미국 소설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동화 '작은 아씨들' 캐릭터를 바탕으로 창조한 세 자매의 이야기다. 갑자기 등장하는 돈과 사건에 휘말린 첫째 오인주 역 김고은의 1화 엔딩은 SNS 상에서 '김고은 오열씬'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진 tvN


수학여행비도 못 낼 정도로 가난한 세 자매 앞에 갑자기 700억원이 떨어진다면?

미국 소설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동화 '작은 아씨들'이 한국의 현실 속으로 들어왔다.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이야기다. '메그의 현실감과 허영심, 조의 정의감과 공명심, 에이미의 예술감각과 야심은 가난을 어떻게 뚫고, 어떻게 성장해 나갈까?'라는 게 드라마 공식 소개 문구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오인주(김고은)·인경(남지현)·인혜(박지후) 세 자매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가난과 돈을 대하며, 거대한 세력과 얽히고, 맞서 싸운다.

첫회 6.4%로 시작한 시청률이 7.2%(4회)로 오르며 상승세를 타고 있는 '작은 아씨들'은 SNS상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으며, 한 조사에서 화제성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동화 이미지와 정반대의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으며, 반전의 묘미도 빼어나다. 영화 ‘헤어질 결심’ ‘아가씨’ ‘박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친절한 금자씨’ 시나리오를 쓴 정서경 작가의 작품이다.


①모두 다 뒤집었다. 모성애, 가족애… 설명 필요없는 여성서사


'작은 아씨들'에서 두 언니가 막내의 수학여행비를 애써 마련했지만, 철없는 엄마가 그걸 훔쳐 필리핀으로 떠나버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엄마 역을 맡은 배우 박지영이 물김치를 담그는 광경에 '이제 엄마보단 한 인간으로 살아보고 싶다'고 진지한 말을 남긴 편지가 비장한 음악과 함께 흐르는 장면은 실소가 나오게 한다. '빈센조'를 연출한 김희원 감독의 블랙코미디가 묻어있는 연출이다. 사진 tvN

영화 '아가씨'에서 엄마 없는 두 여성이 연대하고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썼던 정 작가는 '작은 아씨들'에선 '차라리 없는 게 나은' 엄마를 등장시켰다. 딸의 수학여행비를 빼앗아 필리핀으로 도망가는 세 자매의 엄마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난다는 점에서는 '주체적'이지만, 세 자매에게는 "엄마가 되지 않는 게 더 나은" 철 없는 엄마다.

통속적인 '모성애'를 뒤집은 정 작가는 '무조건적 사랑'으로 표상되는 '가족'의 의미도 뒤집는다. 극 중에서 가족의 연락처를 차단하는 장면이 세 번이나 나온다. 셋째가 둘째를, 둘째가 첫째를, 첫째가 엄마를 차단한다. 첫째는 "무능한데 착한 게 어딨어, 무능한 게 나쁜 건데"라 말하고, 둘째는 125만원을 빌리기 위해 연을 끊었던 할머니를 찾아가 꾹 참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미술에 재능 있는 셋째는 재능을 인정해주지 않는 엄마, 유학을 꼭 지금 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말하는 언니보다는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주는 돈 많은 가족과 함께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손녀(남지현)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돈을 쓰는 할머니는 남지현과 멀찍이 거리를 두고 앉고, 식사가 끝나자 마자 용건이 끝났으니 자리를 뜬다. 언니인 김고은과는 용건이 없어도 가까이 누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장면과 대조된다. tvN 작은아씨들


서로 간의 갈등 속에서도 결국 세 자매는 연대한다. 공희정 평론가는 "'WWW:검색어를입력하세요', '마인' 등의 드라마는 힘 있는 여성들이 뭉쳐서 남성 상대역을 이겨내는 구도였지만, '작은 아씨들'은 힘 없는 여성들끼리 돕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각자도생하며 '성별론'이 아니라 '계급론'을 얘기한다"며 "여성연대 자체가 꽤 익숙해진 환경이라, 이제는 그 위에 다른 주제를 얹어 확장할 수 있게 된 사회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②모두의 관심사 '돈', 비튼 판타지, 또렷한 힌트로 유혹


'작은 아씨들'은 모두의 관심사, '돈'을 큰 소재로 끌고간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모두의 관심사인 부동산도 '한강뷰 아파트'로 그려진다. tvN

한 TV 프로그램에서 "공감을 부르는 이야기는 그 시대에 가장 고민하는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는 정 작가는 세 자매 앞에 700억원을 갖다 놨다. 돈이 최대 관심사인 사회를 반영하듯, 돈과 관련한 판타지가 곳곳에 나타난다. '부의 세습'을 '서민 버전'으로 변형시켜 넣었고, 갑자기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주는 돈 많은 왕자님 판타지도 극 중 부자 할머니가 충족시켜 준다.

주요 주제인 돈은 처음에 수학여행비 125만원으로 등장했다가, 갑자기 오인주에게 남겨진 20억원, 이후 등장하는 미스터리의 700억원으로 규모가 빠르게 커진다. 1,2화에 사람이 여럿 죽는 사건이 발생한 뒤, 이후 전개는 퍼즐 맞추기로 흘러간다. 거대하고 부유한 '악'을, 약하고 가난한 '선'이 압박해가는 익숙한 이야기지만, 초반부터 빠른 전개로 시청자의 눈을 붙든다.


③동화 속 세 자매, 가난과 돈 앞에 갖다 놓으면? 잔혹동화


세 자매는 가난을 받아들이는 방식, 극복하기 위한 방식이 각각 다르다. 포스터에서도 각기 다른 곳을 보는 세 자매의 시선은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다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tvN 작은아씨들

세 자매가 가난과 돈을 대하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다.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가장 높고 밝은 곳으로’ 라는 카피가 들어간 드라마 포스터에 담긴 세 자매의 시선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다. 인주는 카피 문구처럼 위를 올려다보고 있고, 인경은 약간 위쪽을 쳐다보면서 주변을 살피고, 인혜는 자신의 눈높이에서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극 중 돈을 위해 인터뷰하는 상황에서도 세 자매의 특성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주는 필요에 의해 하겠다고 나서고, 그런 인주를 인경이 말린다. 인혜는 실랑이 하는 언니들을 제치고 "(돈을 지원해준 사람들을 만난 게) 살면서 제일 큰 행운인 것 같다"고 인터뷰에 응한다.

'작은 아씨들' 원작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돈과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극이 누아르로 흐르지 않고 잔혹동화 같은 느낌이 나는 건 원작의 동화적 이미지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④현실과 맞붙은 디테일. 공감 가는 대사들


"돈을 벌면 섀시가 잘 된 집에 살고싶어"라고 말했던 첫째가 아파트를 보면서 가장 먼저 창을 매끄럽게 여는 장면 바로 뒤에, '한 번 열면 닫히지 않기 때문에 열면 안되는' 세 자매 집의 창이 그려진다. tvN 작은아씨들

"우리는 TV에 나오는 사람들과 다르구나"라고 말한 자매가 사는 공간은 현실적인 가난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첫 장면부터 복잡한 거실, 개수대, 세면대 등 평범한 집안의 모습을 그리고, 열리지 않는 창문으로 가난을 묘사하는 디테일은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정서경 작가와 '헤어질 결심'을 함께한 류성희 미술감독의 작품이다.

"돈이 있으면 섀시가 잘 된 아파트를 사고 싶어" "두려움은 인간의 감정 중 가장 속도가 빨라"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사도 돋보인다. 공희정 평론가는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큰 줄기 안에서 인물들의 심리를 짚어주는 디테일이 기존의 장르물과 차별화된 점"이라고 짚었다.


⑤'어벤져스'급 제작진, 스타 배우들의 특별출연


송중기는 '빈센조'를 연출했던 김희원 감독과의 인연으로 특별출연했다. 사진 tvN

'작은 아씨들'은 '빈센조' 김희원 감독과 정서경 작가는 물론 류성희 미술감독, 박세준 음악감독 등 각 분야 톱들이 모인 '어벤져스'급 제작진으로 공개 전부터 화제가 됐다. 송중기·추자현·오정세 등 무게감 있는 배우들의 특별출연도 화제성을 높였다.

김성수 평론가는 "유명 원작 동화의 캐릭터를 한국적으로 해석한 뒤 현재의 공간에 집어넣어 '동화 속 인물이 지금 이 곳에 온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라는 궁금증을 낳게 한다"며 "친숙함과 낯섦이 섞인 가운데 새로운 걸 찾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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